게이트가 있어 안심이 되는 이 주택단지에 이사를 오니 옆집이 아는 한국사람 집이었다. 참으로 반가웠다.
어느 날 TV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화면이 꺼지는 통에 우리 집만 탈이 났는지 옆집 송 집사에게 물어보았다. 송집사 내외는 청년부 우리 시어머니가 가르쳤던 성경반 학생이었다. 송집사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에는 내가 그 댁 딸을 학교에 데려다 준적도 있고 해서 일만 생기면 서로 도와주는 좋은 관계의 이웃이다.
동네가 다 정전인가 싶어 밖에 나왔다가 송집사를 만났다. TV를 켜 작동이 되는지 알아봐 달라는 나의 부탁에 “TV가 없는데요”라고 하길래 “네?” 반문하면서 내 귀를 의심하였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TV 없이 살다니... ‘TV 부재’의 사실이 강도 약한 충격으로 다가와 가슴을 흔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첨단을 달리는 정보화 시대에 집안에 텔리비전 한 대 없다니 뒷걸음질 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TV를 보지않는 이유는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나누는데 있었고 가족이란 작은 공동체의 목표를 나름대로 좋은 곳에다 둔 부모의 선택이었다. 자기 희생이 따르는 선택의 열매는 단 법이다. 슬하에 남매를 둔 옆집 학부모에게는 자녀 교육이 우선순위고 자녀들도 잘 따라와 주어 바르게 잘 자라고 있었다.
우리만 보면 반갑게 인사하는 통에 귀여워 하지 않을수 없었고 마당도 쓸고 쓰레기통도 치우고 부재중인 우리집 신문처리를 두 남매가 번갈아 하는 것만 보아도 이웃돕기 봉사 행동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요즘 TV 프로그램 중에는 해로운 것들도 없잖아 많지만 얼마나 교육적이며 유익한 내용들도 많은가? 놓치는 게 많지 않느냐 또 뉴스를 보지 않으면 답답하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전혀 불편없다고 대답했다. 패밀리 룸에 있는 컴퓨터는 시간을 정해 돌아가면서 숙제하는 가족공용이라 했다. 직업이 엔지니어니까 인터넷으로도 다 정보 수집이 가능하겠거니 혼자 짐작하며 내 자신을 되돌아 보기에 이르렀다.
가족 팀웍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이들 젊은 부부는 맞벌이 커플이다. 자녀들의 운동경기와 학교 행사에 꼭 참여한다. 주일에는 교회, 더러는 주말 캠핑도 함께 떠나며 학교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자연으로 자녀 교육을 연장시키면서 ‘함께’ 그리고 ‘더불어’ 작은 공동체 삶을 나누며 온가족이 한 팀이 되어 화목 가운데 있음을 방학때는 특히 나는 눈여겨 보아 왔다.
18세까지 미국 청소년이 살인폭행 장면을 보는 건수가 1만6,000건이고 일주일간 TV시청 시간은 거의 20시간에 가깝다는 보고가 있다. 깨진 가정으로 인하여 TV 의존도가 높아 학업에도, 건강에도 지장이 있고 무엇보다도 정서불안이 문제라는 보고는 가슴 아픈 현실의 단면을 파헤친 생생한 기록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Children learn what they live” 란 말이 있다. 말을 바꾸면 부모는 자식들의 거울이라는 얘기다. 거울은 말로 떠들지는 않지만 무엇이 잘못 묻었으면 있는 그대로 반영해준다. 이것보다 더 무서운 지적이 또 있을까? 그게 바로 거울의 속성이 아닌가.
지난 날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TV 프로그램 재미있는 날은 잠도 설치면서 채널 있는대로 다 돌려 보면서 애들은 ‘TV 보면 안된다’ 또 ‘숙제 빨리 하라’고 재촉하는데만 목소리를 높였던게 생각이 났다. 생활이, 행동이, 대화가 본이 되지 않으면서 부모라는 권위로 명령할 줄만 알았다. 하루가 통째로 고단하여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핑계로 TV에 매달리던 나의 어제가 가시처럼 가슴에 와 박힌다.
반듯한 거울이 되지 못한 나를 직시하게 된 이 시점, 옆집 송집사 내외를 볼 때 마다 가슴 속 회한의 무게가 나를 짓 누르는 것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의 이 되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젊은 세대에게 정직하게 고백하며 나에게는 믿음이 돈독하신 시어머님이 계셔 어려울때 마다 많은 도움이 되고 빈 곳을 채워주셨던 것은 여간 축복이 아니었나 싶다.
머리로만 믿어 온 지난 세월의 나의 신앙에 비해 기도넝쿨을 뿌리 깊게 내리신 할머니 인도로 바로 자라준 두 아들이 무척 기특할 뿐이다. 물주고 흙을 다둑이는 일은 부모의 몫이라 해도 키우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이심을 깨달게 해준 실증 케이스였다.
여리고 여린 잔 가지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되는 포도 나무의 비유가 감사의 산들바람이 되어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준다.
잎을 다 내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오늘따라 금이라도 갈 듯 찡한 파란색이 기쁨을 더한다. 자식들은 그들의 꿈을 따라 삶의 육지로 가고 나는 젊음의 해변에서 멀리 밀려나 있는 작은 섬에 자리 매김하고 남아있다.
이제는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는 확신의 파도가 나를 씻어댄다. 참을성도 생겼고 경험도 많이 쌓았다. 줄지어 행진해 오는 손주들에게나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기를 소망 해 본다.


김영교

약 력

▲한국 <자유문학> 시 등단.
▲< 창조문학> 수필 당선.
▲재미 시인협회,
미주 한국문인협회 이사
▲제5회 해외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