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사회에서 ‘갑부 아들’을 둔 아버지들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다. 아무개 아들은 파산한 아버지 사업 자금을 대줘 재기하게 해줬고 아무개 아들은 부모한테 100만달러짜리 저택을 사줬고 등등…
하이텍 붐이 절정이던 시절 20대 한인 1.5세와 2세 가운데도 인터넷 업계에 뛰어들어 백만장자가 된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이런 자식들을 둔 부모들은 주위의 선망의 대상이 됐고 그렇지 못한 집은 일찍이 아이들에게 컴퓨터 관련 공부를 못시킨 것을 탄식하곤 했다. 불과 4년 전 이야기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영 달라졌다. 공대나 자연대에 진학했다 그만두고 법대나 의대로 다시 들어가는 것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이제 컴퓨터 관련 학과 학생들은 찬밥 신세다. 졸업을 해도 취직이 안되기 때문이다.
하이텍의 본산 실리콘 밸리 일대는 지금 미국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지역의 하나다. 특히 초보단계의 하이텍 일자리는 씨가 말랐다. 이제는 학생들도 이를 알고 처음부터 금융, 의료, 광고, 공무원 등 취직이 잘 되는 분야를 복수 전공하거나 아예 학과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세상이 바뀐 것은 불경기 탓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너도나도 외국으로 일감을 빼돌리고 있다. 취업 동향 조사기관인 포리스터 리서치 발표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330만개의 하이텍 일자리가 미국에서 사라질 전망이다.
미국 인건비의 10분의1만 줘도 하겠다는 사람이 줄 서 있는 인도 같은 곳에서는 하이텍과 서비스 산업 종사자들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신 중산층’이 형성되고 있다. 온갖 물건을 팔겠다고 걸려 오는 전화의 상당수는 인도의 콜 센터가 근원지다.
외국의 값싼 노동력과의 경쟁을 걱정해야 하던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블루 칼러 생산직 근로자들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통신혁명과 함께 하이텍을 포함, 화이트 칼러들도 ‘아웃소싱’(outsourcing)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인텔의 총수 크레이그 베렛은 “인구 30억에 달하는 인도와 중국, 러시아는 고급 인력 자원을 갖고 있다. 이들의 90%가 농부라 하더라도 나머지 10%는 교육받은 사람들이며 이는 미국 전체 노동력보다 많은 숫자”라며 “이제 하수도 수리공이나 신문 기자를 제외하고는 외국에 맡겨 하지 못할 일이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리콘 밸리에 계속 기업은 생기겠지만 일자리를 창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이처럼 사라지는 일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기업의 외국 수주를 법으로 막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다. 어떤 기술이든 이를 먼저 개발한 나라와 그 나라 근로자는 당분간 이익을 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 노하우는 다른 나라에 퍼지고 싼 인건비를 무기로 한 후발주자에 넘어가게 마련이다.
계속 선두를 지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산업혁명과 함께 일어난 방직섬유 산업이 그랬고 기계철강 산업이 그랬다. 모두 영국에서 시작돼 미국을 거쳐, 일본, 한국 이제 중국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이텍 산업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이처럼 기술과 일자리를 다른 나라에 이전해 주는 것은 언뜻 손해일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이익이다. 낮은 인건비는 낮은 상품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오며 세계화와 함께 뜨고 있는 인도와 중국의 중산층은 여유 돈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와 할리웃 영화 등 미국 상품을 사게 마련이다.
세계화는 모두로 하여금 남다른 기술, 보다 높은 효율 등 끊임없는 자기 개선을 요구한다. 기술혁신이 계속되는 한 새로운 일자리는 창출된다. 한 때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반 세계화 열풍은 이 과정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노력이었지만 세계사의 대세에 어긋나며 올바른 처방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것이 점점 더 통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민 경 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