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규<북가주 ROTC 동지회장)
서기 668年 보장왕 27年 9月21日은 한반도 북부 한수(한강) 이북부터 북만주 일대를 지배했던 大高句麗 帝國이 당나라 군사와 신라군들에 의해 최후의 날을 맞게된 멸망의 날이다.
북만주와 요동까지 그 세력을 넓혔던 광대한 帝國. 고구려는 이렇게 우리들의 역사앞에서 사라져 갔다. 그당시 고구려 인구는 약 350만명에 가옥의 수는 70만호. 176개 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中國은 벌써 이때 인구 7천만에 육박했다고 한다. 요사히 한국과 중국에서 고구려 역사를 놓고 힘 겨루기가 한참이다. 중국 정부에서는 1980년대부터 꾸준히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라며 학자들 사이에 연구를 시작하게 했었다. 그들은 중국의 고대 변방민족이 썼던 高句麗라는 명칭을 신라 정권의 계승자인 高麗 왕건(王建)이 이를 도용했다고 하며 중국 정부는 사회 과학원안에 중국 변강사지 연구중심이라는 연구 팀을 구성해 동북공정사업을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이공정에 투입된 예산만 5년간 2백억위엔(한국돈 3조)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들은 지금으로부터 1336년전에 멸망한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 환인(桓仁) 졸본성과 두 번째 수도 집안(國內城)을 대대적으로 文化財 발굴 및 보수정비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중국정부는 집안에서 올해에 2000年 천도 기념행사를 용이주도하게 정부에서 주도하며, 2004년 6월에 있을 제 28차 소주(蘇州) 유네스코 회의에서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길 철저한 보안속에 준비하고 있다.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많은 고구려 문화중에 16개 정도가 고분 벽화와 강서대묘, 강서중묘, 안악 3호고분등 많은 문화재가 보존 상태가 양호한 상황인대도 유네스코는 여러 가지 트집을 잡아 부정적인 견해와 중국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만약 북한이 유네스코에 등록이 되면 고구려 역사가 ‘KOREA’의 역사로 세계적 공증을 받게 되므로 中國은 우선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이것만은 철저히 막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지금 중국측에서는 인구 20만 밖에 안되는 집안(集安, 국내성)이라는 도시 전체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자 혼신을 다하고 있다. 원래 文化財란 두나라가 함께 신청해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例가 없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은 삼국사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고구려의 첫 도읍을 비류스 유역 졸본(桓仁 BC 37-AD3년)이고 두 번째 도읍은 2대 유리왕(22년) 서기 3년 국내성의 위나암성으로 옮겼다고 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위나암성은 集安으로 이야기한다. 이때부터 20대 장수왕까지 427년간을 바로 압록강 넘어서에서 동북 아시아를 호령했던 대제국의 중심지였다. 이제 한국과 중국이 개방하여 국교가 수립되고 자유롭게 왕래가 있지만 현재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의해 이 집안지역은 철저히 중국정부로부터 Seal이 되고 특히 한국의 역사학자나 언론에게조차 그곳을 촬영할 수 없게 보안조치하고 있다. 도대체 중국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우리들의 역사를 감추고 한갓 자기들의 변방국가로 낮추려고 하는가? 그들도 역사학자가 있고 누구보다도 우리들의 역사를 손금보듯 연구하고 있다. 그랬기에 국립 집안 박물관에는 1대 東明聖王부터 19代 廣開土大王까지 19명의 皇帝들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마치 이 분들이 자기들의 祖上인양 받들고 있다.
또 그들은 철저히 高句麗에 대한 역사 자료들을 은익하고 남에게(한국인) 보이기조차 꺼려한다. 중국의 청조는 바로 만주족 추장 누루하치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이다. 그 후손 건륭제는 서기 1740년 청나라 발원지에 한족들이 만주로 이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적령(回籍令)을 내리고 그것도 모자라 10년후 다시 봉금령(封禁令)을 내려 압록강 유역을 아예 무인지대로 만들어 버렸다. 이 때문에 그나마 많은 고구려 유적들이 남아있게 되었지만 그 유명한 광개토대왕비석이 19세기(1880년)에 들어서야 한 농부가 우연히 밭을 개간하다 발견하게 되었다. 이 비석은 광개토대왕(중국에서는 好太王이라고함)의 아들 장수왕 2년에 세워졌고 글자의 수는 1775자의 웅혼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이 비석은 발견후부터 여러 가지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고구려 건국초기의 역사를 시작으로 동명성황부터 19대 광개토대왕까지 고구려사를 바로 이 비문에 적어 놓았던 것이다. 이 얼마나 역사적 중요한 자료인가. 허나 당시 중국(淸)은 이 비문의 탁본을 떠서 북경 금석학계에 소개하게 되었다. 이 비석이 고구려 시대 것으로 판명이 나자 중국과 일본은 선명하게 탁본하기 위해 석회칠을 했다가 그만 그 비문의 일부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당시 만주 침략을 노리던 日本이 의도적으로 비문의 일부를 마멸시켰다는 말이 있다.
이제 우리는 왜 고구려의 20대 장수왕이 국내성에서 平壤으로 천도하게 되었나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장수왕 즉위 15년 고구려는 400여년간 국내성을 기반으로 지배하고 있는 귀족 집단 세력을 약화시키고 강력한 중앙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천도가 계획되었고 그 보다 더 분명한 천도 이유는 선왕(광개토대왕)의 유지를 받들기 위함이었다. 광개토대왕은 고국원(고국원왕의 능)에서 사냥도중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가 죽자 그의 아들 장수왕이 20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長壽라는 말답게 약 78년간 제위 기간을 갖고 그의 아들은 왕위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죽어 그의 손자인 문자명왕이 그 뒤를 잊게 된다. 광개토대왕은 항상 할아버지 16대 고국원왕(故國原王)이 백제와의 싸움에서 근구수왕(백제)의 한 장수가 쏜 화살에 전사하는 비운의 국상을 잊을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광개토대왕은 남쪽의 백제를 ‘승냥이’라 부르며 백잔(百殘)이라 이름까지 고쳐부르게 했다. 대왕이 북만주 일대를 장악하고 독자적인 연호 영락(永樂)을 사용함으로써 고구려가 중국과 대등한 자주국가임을 과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가 그토록 원수(백제)를 갚고저 하는 고국원왕능에서 세상을 떠나며 유언으로 자기 자식에게 복수의 남진(南進)을 命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복수전쟁을 위한 고구려의 천도는 평시대와 함께 시작되었다.
지금 中國에서 행하여지는 동북공정은 학문적인 발굴사업보다 정치적인 공정이며 직접적인 목표는 전인민의 단결과 안정이며 자기네들이 대만을 제외한 대륙통일에 성공하여 경제적으로 최고의 성장을 이룩한 대 있다고 본다. 즉 먹고 살만하니까 이제 울타리 보수를 확실히 해두고 훗날 걱겅꺼리는 미리 제거해 두자는 속셈인 것이다. 중국은 전 인구의 94%가 한족(漢族)이며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현재 연변 조선족자치주는 전 인구의 40%가 조선족 즉(고구려)인이다. 이들은 조선족에게 사상교육을 실시 조선족의 祖國은 中國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고구려 역사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속셈은 먼 훗날 統一된 한반도에서 혹시나 연변에 있는 조선족과 손이라도 잡고 故土수복운동이라도 전개할 것을 염려하는 것 같다. 만주에는 한족들의 특별한 연고권이 없다. 발해(震國의 역사는 고구려를 계승했고 길림성(吉林城)과 연해주, 동만주 일대를 장악하고 15대왕 220년 동안 만주를 지배했던 帝國이었다. 통일신라의 5배가 넘는 영토. 중국은 이런 나라를 발해(渤海)라고 했다. 한나라의 국호를 어떻게 바다이름에 붙여 불렀던가. 발해의 원래 국호는 진국(震國)이며 또다른 이름은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리여져야 한다.
중국은 자기들 역사를 기술할 때 3가지 원칙이 있다. 그 첫째가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 수치스런 중국사는 숨긴다. 둘째, 긍초이누이적(矜 而陋夷狄) 중국은 높이고, 다른나라는 낮추어 내린다. 셋째, 상내약외(祥內略外) 자기네 역사는 자세히 기록하고 다른나라 역사는 간략하게 적는다. 여기에서 중국사에 적혀있는 고구려와 수나라 전쟁사를 보며 수양제가 113만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로 진격할 때 그 행렬이 장장 480km에 달했으며 출발하는데만 40일이 걸렸다고 적고 있다. 중국이 끝까지 고구려가 한 변방지방국가였다면 어떻게 113만 대군으로 고구려에 패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이제부터 중국의 역사를 공부하며 우리의 역사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또 찾아내어야 한다. 이제부터 중국과 역사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우선 지나친 감정적면을 자제하고 북한과 힘을 합쳐 지금까지 미 발굴된 고구려 文化財를 선진화된 발굴기술로 하나하나 찾아내어야 한다. 역사찾기에는 남북이 다를 수 없고 하나된 마음으로 임해야한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계획되고 준비된 동북공정 project을 정부의 주도아래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은 지금이라도 우리나라 정부에서 민족의 역사 찾기에 앞장을 서야한다. 왜 우리라고 이스라엘처럼 천년 전에 잃었던 故土를 수복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지금 우리 民族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는 이제 온 국민을 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이제 우리에게는 어떠한 제도나 물질보다는 더 넓고, 미래에 희망과 용기를 갖게하는 진정한 참 정치인을 고대하고 있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미래도 잃을 수 가 있다고 했다. 단제 신체호 선생은 정신없는 역사는 정신없는 민족을 만든다고 했다. 이제 우리도 東北工程에 맞서 우리 고구려 역사 찾기에 온 국민이 앞장서야 할 때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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