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등산사고는 조그만 부주의에서부터 시작된다
에베레스트옆 로체봉을 오르다 떨어진 알피니스트의 사체. 상체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도 않아 처참함을 더해주고 있다. (자료사진)
히말라야를 등산 하노라면 곳곳에 돌이 쌓여 있는것을 발견할수 있다. 바로 등산하다 목숨을 잃은 알피니스트들의 무덤이다. 산사나이의 소원은 죽어서도 산에 묻히는 것이다. 96년 대만 알피니스트 첸유난은 밤에 텐트밖에서 소변을 보다 바람에 날려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어처구니 없는 비극을 당했다.<자료사진>
1980년 처음으로 산소통없이 무산소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라인홀트 메스너.<자료사진>
지난해 7월 남미에서 가장 험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페루의 와스카랑 북봉에 오른 박진혁씨. 60세가 넘은 그는 김기환씨와 함께 아직도 세계고산을 찾아다닌다. 북미주 산악회 소속.<박진혁씨 제공>
지난 1월1일 LA근교 마운틴 발디에서 조난당한 마이클 고씨를 찾기 위해 모였던 남가주 한인 산악인들. 미국인 자원봉사자도 눈에 띤다.
바람이 너무 강하면 텐트도 다 찢어져 버린다. 96년 에베레스트 제3캠프에서 일어난 대형사고때의 광경.<자료사진>
등산사고를 막으려면
몇 년 전 히말라야에 등산 갔을 때의 일이다. 일본 관광단 20여명이 셀파의 안내를 받으며 산에 오르고 있었는데 그 중에 50세가 넘어 보이는 여성 2명이 끼어 있었다. 이들은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히말라야에서 장거리 등산(트랙킹)할 때는 초보자는 하루 300미터 이상 오르면 안 된다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고산증 때문이다. 그리고 산소 적응을 위해 이틀 오르고 하루 쉬는 것이 모범답안이다. 우리 등산팀장은 이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이참에 속도를 내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만난 것이다. 그들을 보니 우리가 너무 소심한 것 같기도 하고 필요 이상으로 산을 겁내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더구나 일본 아줌마(?)들도 쉬지 않고 올라가는데 우리는 하루 모텔에 묵고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팀장이 이같은 분위기를 눈치 챘음인지 “등산은 남의 페이스에 말려들면 안돼요.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한마디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틀 후 해발 3,000미터(약 1만피트)를 넘어섰는데 산 위에서 셀파들이 왼 여자들을 들쳐업고 정신 없이 뛰어 내려온다. 자세히 보니까 자랑스런 얼굴로 우리를 추월하던 바로 그 일본 여성들이다. 고산증으로 쓰러져 얼굴이 퉁퉁 부었다. 고산증에 걸리면 우선 산을 급히 내려와야 한다. 다른 약이 없다. 우리 팀장이 대원들을 힐긋 쳐다보며 “봤죠? 등산에서 룰을 안 지키면 어떻게 되는지…” 내가 뭐랬어 하는 표정이다. “알아모시겠습니다.” 모두 웃으며 팀장의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을 칭찬했다.
등산에서 리더가 있어야 하는 것은 산행에서는 원칙과 룰을 엄하게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도 사고가 나면 일행이 모두 하산해야 하거나 몇 사람이 사고 뒷수습을 해야 하는데 이때 누가 부상자를 데리고 내려가느냐를 둘러싸고 신경이 예민해진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히말라야 하이킹에서 사고를 당한 것도 숙박비를 아끼느라 관광회사측이 무리하게 스케줄을 짰기 때문이며 가이드만 있고 원칙을 강조하는 엄한 대장이 없었던 까닭이다. 이렇게 되면 여행 분위기도 엉망이 되게 마련이다.
3년 전 미주 한인 산악계의 베테런인 김기환씨와 박진혁씨(전 동국대 산악회장)가 히말라야 푸모리봉에 도전한 적이 있다. 이때 한국에서 여성 한 명이 현지에서 이들과 합류하려고 혼자서 무리하게 산을 올라오다 고산증과 피로가 겹쳐 미주팀 캠프 근처에서 쓰러진 후 숨졌다. 김씨와 박씨는 히말라야 산중에서 숨진 한국 여성의 사체를 모른 척하고 갈 수가 없어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결국 원정을 중도 포기하는 불운을 겪었다. 운이 없으려면 이렇게 되는 법이다. 남가주 산악회와 재미 산악연맹 회장을 지낸 김기환씨(LA 거주)는 65세가 넘었는데도 지금도 세계 고봉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려고 노력한다. 지난해에는 남미에서 험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페루의 와스카랑(7,000미터)을 박진혁씨와 다녀왔을 정도며 등산 인생 50년에 아직 사고가 없는 원칙주의자다. 그는 등산 사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등산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요. 산에 오르는 테크닉만이 아닙니다. 서바이벌을 할 줄 알아야 알피니스트입니다. 원칙 지키는 것을 철저히 배워야 해요. 산에 오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죠. 불행을 피할 수도 있었는데 목숨을 잃는 등산객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는 등산에서는 험한 코스를 오르는 용기보다 무리라고 생각되면 중도에서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진짜 용기라고 강조한다.
이철 주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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