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본보 편집국 부국장>
북핵 문제로 국제사회가 시끌벅적하다. 그거야 늘 그랬지 언제는 조용했냐고 되묻는다면 할말이 궁해지는 게 사실이다. 귀가 닳도록 듣고 또 들은 나머지 북핵의 ‘북’자만 들어도 또 그 소린가보다 하고 지레 흘겨듣기 십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시시각각 전해지는 북핵 뉴스는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뜯어볼수록 어둡고 무섭고 소름끼치는 내용들이다.
묵은 얘기들은 접어두고 지난 20일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의회에서 행한 국정연설부터 더듬어보자. 특유의 단정적인 어조로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이라며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라고 촉구한 그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들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또 지난해 12월 중순 이라크 주둔 미군이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생포한 직후 무하마르 가다피 리바아 국가원수가 자진해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예로 들며 (미국) 외교정책의 성과라고 규정했다. 이는 북한 지도부에, 보다 구체적으로는 최고실권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후세인처럼 고집을 피우다 피를 보든지, 가다피처럼 무릎을 꿇어 목숨만은 챙기든지 알아서 하라’는 통첩이나 다름없다.
다음날 나온 리처드 루가 미 상원 외교위원장의 발언은 한술 더 떴다. 얼마전 민간인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 영변 핵시설을 둘러보고 귀국한 핵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로스알라모스 핵실험실 수석연구원)의 증언을 듣기 위한 청문회 인사말을 통해 그는 우리 목표는 북한의 생물 및 화학무기 프로그램은 물론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지시키고 궁극적으로 해체하는 것이 돼야 하며 위험한 물질이나 무기·기술을 다른 단체나 국가로 이전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이를 위해 우리는 최후의 수단으로 무력사용을 포함한 그 어떤 선택 방안도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일갈했다. 숫제 결전을 앞둔 장수의 연설이나 선전포고처럼 들린다.
이어 증언에 나선 헤커 연구원은 북한의 핵무기 제조능력에 대하서는 다소 의문을 표하면서도 (북한이 핵무기 제조에 쓰이는) 플루토늄을 직접 보여줬다고 말해 북한의 핵개발 엄포가 장난이 아님을 재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세계적 귄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국제문제연구소(IISS)는 즉각 ‘북핵에 관한 최종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1992년까지 1∼2개의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확보했고, 2003년에 기존의 8000개 폐연료봉에서 2∼5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북한은 내년에 핵무기 4∼8개용 플루토늄을 갖게 되고 1∼2년내 50MW 원자로와 우라늄 농축공장을 완공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될 경우 2005∼2010년쯤 연간 핵무기 생산능력이 8∼10개로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쯤 해서 우리는 그게 아니라도 바쁜 마당에 ‘왜 북핵인가’에 대해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필(?) ‘미국 내 한인’이라서 하는 말만은 아니다. 북핵 사태가 끝내 엇나갈 경우 펼쳐질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면 그것은 초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한번 불이 붙으면 몇시간 안에 ‘애꿎은 서울’에서만 100만명 이상 죽게 되디란 전문가들의 전망도 그 뒤에 닥칠 가공할 시나리오의 서막일 뿐이다. 지어낸 말도 부풀린 말도 아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하루가 멀다하고 토해내는 경고들은 북핵 사태의 불행한 결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최근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제34차 연례회의(다보스포럼)에서 지금까지 각국의 대북 전략은 실수의 연속이었다고 비판한 뒤 지금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확신하며 조속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모두가 패자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모두가 패자라니?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최신호(26일자)와의 인터뷰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 북한이 가장 골치아픈 나라이며…과거 어느 때보다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고조돼 있다.
핵전쟁에 이은 인류의 종말까지 내다본 엘바라데이가 ‘오버’하는 것일까. 이달 초 인도의 저명 핵전문 칼럼니스트가 쓴 3차대전 시나리오에 비하면 엘바라데이의 표현은 차라리 점잖은 편이다. 북핵 사태가 꼬여버린 상황에서 재선가능성마저 희박해진 부시 대통령이 오는 8월 북한 때리기에 나서는 것으로 시작되는 문제의 시나리오는 의외로 강한 북한의 저항에 다급해진 미국이 무차별 핵공격을 퍼붓게 되고 ‘곁불’에 데여 죽게 생긴 중국과 러시아가 역시 핵무기로 맞불을 놓으면서 한반도 국지전은 핵무기가 난무하는 세계대전으로 비화돼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인류의 멸망과 영원한 침묵의 세계 핵겨울로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아직은 시나리오에 불과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느냐, 개전 초기 몇시간만에 혹은 며칠만에 몇백만명이 죽고 어디까지 불바다에 휩싸일 것인가 따위를 헤아리는 것은 부질없는 공상일 따름이다. 김정일이 밉다고 까짓것 한방 때려버리지 뭘 꾸물대냐는 식의 말을 함부로 뱉을 일도 아니다.
결국 북핵 위기는 인류의 위기다. 북한과 잘지내도 그만 못지내도 그만인 ‘그밖의 나라들’ ‘그밖의 사람들’까지 나서 북핵 위기에 대해 한마디씩 거드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소름끼치는 경고음들을 뚫고 전해진 제2차 북핵 6자회담 임박소식이 더욱 반가운 것 또한 그 때문이다. 난항끝에 재개되는 2차 회담에서 비록 대타협은 아니라도 저 불길한 시나리오가 한낱 시나리오에 그치리란 최소한의 위안거리나마 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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