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엔 어소시에이츠’(Gruen Associates)는 미 주류사회에서도 명성이 높은 건축 및 설계 전문회사이다. 그루엔사는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커뮤니티 플랜, 도시계획, 조경, 환경 및 교통계획 등의 분야를 골고루 취급하는 연간 매출액 1,370만달러, 직원 80명 규모의 회사이다. LA카운티에서 20위 안에 드는 이 회사 대표가 박기서 한미박물관 이사장이라는 것을 아는 한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입사 20년만에 이 회사의 대표가 된 데 이어 지난 43년 동안 이 회사를 성공적으로 키웠다.
입사 20년만에 회사 대표로
그는 지난 1953년 LA로 유학 왔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가 6.25전쟁을 맞은 그는 LA타임스에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스폰서를 원한다는 기고를 했다. 이 기사를 접한 작가 제임스 미치너가 후원해 당시 단돈 80달러를 갖고 도미한 그는 이스트 LA칼리지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곧 UC버클리 건축학과에 편입해 졸업한 후 MIT 공대 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했다.
그루엔사의 직원으로 입사한 것은 1961년. 그루엔은 1948년 오스트리아인 빅터 그루엔이 창업한 건축, 설계 전문회사이다. 동양인이 극소수에 그쳤던 당시, 입사 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느낀 그는 자신이 회사의 파트너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다. 초창기에는 주로 도시계획에 중점을 두고 일했다. 1969년 LA 공항에서 놀웍을 연결하는 105번 프리웨이 프로젝트를 시작해 25년 동안 성공적으로 끝냈다. 17마일 구간의 이 도로를 완성하면서 무려 2만1,000명의 주민이 이사를 했을 정도로 큰 규모이다. 이 프로젝트로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미 전역에서 컨설팅 의뢰가 들어왔고 그는 회사에서 부사장, 파트너 등을 거쳐 1981년 이 회사의 대표(CEO)가 됐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20년만에 회사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회사가 이익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신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기보다는 자신이 하는 일을 즐겼다고 강조했다. 지난 94년 6월26일 LA타임스는 7년 동안 LA 컨벤션센터 증축을 성공리에 마친 그의 경영철학과 인생역정을 ‘라이프&스타일’ 섹션에서 커버 스토리로 상세하게 다루었다.
전세계에 수많은 건축물
그가 설계하고 고안한 건축물과 도시계획, 환경 프로젝트는 LA는 물론 전 세계 곳곳에 있다. 대표적인 건축물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코리아타운 플라자, 서울정을 비롯해 오렌지카운티 퍼포밍 아츠 센터, 사우스코스트 플라자, 샌타아니타 패션팍, 베벌리힐스 로데오 드라이브의 라드로 스토어, 서울의 대한교육 생명빌딩, 자카르타의 센추리 플라자 등 30여개가 넘는 건축물이 있다. 또한 대표적인 도시계획물로 105번 프리웨이, 메트로 골드라인 등 40여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있다.
향후 목표
그는 입사한 회사에서 43년을 일하면서 회사의 성장을 도왔고 CEO를 거쳐 이제는 회사의 실질적인 오너가 됐다. 회사의 규모를 크게 늘리기보다는 내실 있는 경영을 하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사실 건축회사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데는 마케팅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러 단체에서 커뮤니티 봉사 활동을 하다보니까 신용도가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프로젝트를 맡기는 경우도 있다. 그는 기업이 매출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사회이슈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며 이제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력을 신장하는 데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박물관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일미박물관처럼 버젓한 전시공간을 갖춘 한미박물관을 꼭 지을 계획이다. 또한 일본 사회처럼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 센터를 한인타운에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그는 한인들이 미 주류사회에 동화해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뿌리의식을 잃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강조하며 앞으로 박물관, 커뮤니티 센터 건립 등을 통해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1세와 2세를 연결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영철학과 스타일
그가 미 주류사회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인정받은 데는 나름대로의 비결이 있다. 첫째, 남들보다 두배 이상 노력을 기울였다. 언어와 피부색에 따른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두배 이상 일하고 노력했다. 둘째, 누가 봐도 빈틈없이 일을 처리했다. 셋째,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능숙하게 업무를 처리했다. 넷째, 회사가 이익을 낼 수 있도록 힘썼다.
건축 일이 너무 재미있어 싫증을 느끼지 못했다는 그는 지금도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 7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은퇴할 마음이 없다고 한다.
왕성한 커뮤니티 봉사활동도 벌여 LA 재건위윈회 고문위원, 한미연합회 이사장, 코리아타운 스퍼시픽 플랜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UCLA 재단이사, 나라은행 지주회사의 이사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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