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안된 솔직함 ‘전성시대’…다시 음악으로 돌아가야죠
“아침이라서 술이 덜 깬 듯한 제 목소리가 부담스러우실지도 모르겠네요. 싫으면 채널 돌리세요. 다른 거 들으시면 되죠.”
“한일 대중문화를 전면 개방한다는데… 우리 대중 문화가 일본에 비해 나을게 뭐 있나.”
“우리 나라에 제대로 된 비평가가 어디 있습니까. 신조어나 만들죠. 밥줄 끊어지면 안될 테니까.”
연일 파격이다. 매일 오전 9시 MBC FM 91.9㎒에 다이얼을 맞추면 걸죽한 막걸리 같은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지난해 11월부터 ‘김C의 음악살롱’ 진행을 맡은 가수 김C(33ㆍ본명 김대원)다.
아침 프로그램인 만큼 매끄럽고 부드럽게 진행하려는 다른 방송인들과 달리 그는 탁한 목소리로 거침 없이 말을 뱉는다. 지나치게 솔직하다 싶을 정도로 거리낌 없는 말이 그의 매력이자 프로그램의 특징이 됐다.
처음에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어서 호기심에 귀를 기울였던 청취자들은 어느덧 팬이 돼버렸다. 출근길, 또는 집이나 일터에서 그의 어눌하면서도 솔직한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사람들이 봤을 때 기행에 가까운 그의 돌출 발언은 라디오 뿐만 아니라 TV에서도 마찬가지다. MBC 오락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밤에’ 코너인 ‘브레인 서바이버’ 에 출연했을 때 그는 녹화 도중 느닷없이 손을 올리고 화장실에 다녀 왔다.
다른 출연자는 물론이고 진행자인 개그맨 김용만도 황당해서 말을 못했다. 코너 녹화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택림 아저씨가 어떻게나 말을 많이 하는지. 끊지를 않더라구요. 화장실은 급하고 도저히 못 참아 다녀왔죠.”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러면 안돼요?” 되려 묻는다. “공산당도 아니고 모두가 좋아하는 방송을 할 수는 없잖아요. 방송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뭐를 이뤄 보려는 것도 아니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편하게 해요. 오히려 저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얌전하게 하느냐, 너 하고 싶은 대로 더 하라고 주문해요.”
실제로 그는 방송을 하면서 많이 얌전해 졌다. “사람이 얼굴 팔리기 시작하면 모든 게 불편해져요. 그대로 말하면 일파만파 커지니까, 조심스러워지죠. 돌이 다듬어지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그는 많이 자제한다지만 사람들이 보기에는 서커스의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하다. “방송 들으며 불안하다는 사람도 있어요. 저러다가 대통령 욕이나 하지 않을까 싶은가 봐요. 요즘 정치판 돌아가는 거 보면 정치인들 욕하고 싶을 때가 많죠.”
혹시 그게 계산된 것은 아닐까? 잘 생기지도 않았고 현란한 말솜씨를 구사할 수도 없으니 다르게 튀려는 것은 아닌지. “그랬으면 제 수명은 벌써 끝났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방송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 솔직히 TV 오락프로그램에서는 그만 불렀으면 좋겠어요. 재미없어요. 사람이 바보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TV에 나온다고 팬이 더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불쌍해 보일 것 같아요.”
그의 방송 활동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시작한 야구를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10년 동안 했다. “우익수를 했는데, 대학에서 안 불러 주더군요.”
그래서 “거지처럼” 여기저기 떠돌며 2년을 보냈다. 집에 돌아와 마음을 잡고 기타 학원에 등록했는데 여자 수강생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강사가 꼴 보기 싫어서 이틀 만에 그만두고 독학으로 음악 공부를 했다. 그 바람에 아직도 악보를 볼 줄 모른다.
1996년 경기도 백마의 ‘화사랑’에서 웨이터 겸 주차관리원으로 일할 때 가수 강산에와 윤도현을 만났다. 강산에는 그에게 음악인의 길을 알려줬고 윤도현은 이름을 줬다. 윤도현은 한 살 많은 그를 이름대신 ‘김씨’라고 불렀다. 호칭이 그냥 굳어서 예명이 됐다.
97년,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음악을 시작했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록그룹 ‘뜨거운 감자’를 만들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곡을 써서 2000년 첫 음반을 냈으나 바로 망했다. 지난해 낸 2집도 빛을 보지 못했다. 이때 MBC FM에서 ‘2시의 데이트’를 진행하던 윤도현이 그를 고정 출연자로 부른 것이 계기가 돼 轢邦?하게 됐다.
음악인의 외도를 안 좋게 바라봤던 그였으나 먹고 살기 위해 방송을 했고 지금은 인기인이 돼서 눈 코 뜰새 없이 바쁘다. 최근에는 인터넷 업체의 TV CF까지 촬영했다.
“그래도 제 지향점은 음악이에요. 이 모든 ‘짓거리’가 음악을 하기 위해서죠. 언제든 여건만 되면 음악으로 돌아갈 생각이지만 방송하는 동안은 하고 싶은 얘기를 솔직히 하는, 자기 색깔이 분명한 방송을 하겠어요.”
요즘은 가을을 겨냥한 3집 음반을 준비중이다. “머리 속에서 노랫말을 만들고 있어요.” 작업 틈틈이 피로가 쌓이면 한 달 전 태어난 아기를 안는다. “딸이에요. 이름요? 우주요. 정말 지구를 덮은 우주 같은 느낌이에요.”
인터뷰 전날 밤을 새워 CF촬영을 하고 오후 늦게까지 아무 것도 못 먹었다며 힘들어 하길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올해 소망요? 세계 평화요. 그러면 사람들이 꼭 웃대요. 늘 누구나 추구하는 것일 텐데 웃긴가 보죠.”
그래서 그는 ‘이매진’(Imagine)을 만든 존 레논이 위대해 보인다며 그가 남긴 말로 끝맺음을 대신했다. “혼자서 꾸는 꿈은 자기 혼자만의 꿈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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