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미국 개척사는 해방 이전인 19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7월 하와이 호놀루루에서 열린 범태평양 청년불교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도진호 스님이 불교 포교의 목적으로 미국에 온 최초의 불교인이다. 그는 송광사 출신 승려로, 김법린, 백성욱, 최남선, 한용운 등과 독립운동 단체를 만들어 활약한 분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한국 불교를 미국에 알린 제일 선두주자는 서경보 스님이다. 그는 64년 필라델피아 템플대학에서 한국 선(Zen)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샌프란시스코와 필라 등지에서 최초의 참선법회를 연 분이다. 지구촌을 행각하고 다닌 최초의 한국승려인 서경보 스님의 미국인 제자는 1971년 6백 명쯤 되었다. 서 스님의 제자 혜성은 1984년 디트로이트 선국사를 도만에게 물려주고 뉴욕으로 이주했다.
이렇게 볼 때 도진호 스님이 하와이에 오면서 발원한 불교동점은 서경보로 시작이 되어 혜성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서경보 스님 다음으로 미국에 온 스님은 시카고 선련사의 김삼우 스님이다. 경상남도 진주 출신인 삼우 스님은 부산 범어사 하동산 스님의 출가제자로 장설봉 스님에게서 선을 배웠다. 그는 1966년 11월 일본에 가서 임제종 선수행전문도량 평림사에서 용맹정진장좌불와 하고 동경 광덕선사에서 지내다가 1967년 8월 샌프란시스코 경유, 뉴욕에 도착했다. 삼우 스님 다음으로 1972년 미국에 온 한국의 달마 이숭산 대선사가 서부와 동부 곳곳에 절을 세우고 맹활약을 했다. 따라서 한국 불교의 미국 개척사의 큰 줄기는 세계화에 큰 공헌을 한 서경보 스님, 프로비덴스에 재미홍법원을 세운 이숭산 스님, 민중불교운동가로 선불교 전파에 앞장선 김삼우 스님을 꼽을 수 있겠다. 특별히 김삼우 스님은 60년대말 뉴욕에서 UPS 배달회사에 들어가 밤일을 하면서 미국인들에게 참선을 가르쳤고, 미국 비자 문제로 캐나다에 간 그는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 식당 접시 닦기, 우체국 파크타임, 결핵요양소 격리수용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 선 불교 연구에 몰두했다. 그후 그는 토론토, 미시간, 시카고, 멕시코 등지에 선련사를 개원하고, 참선 공동체를 만들어 젊은이들과 함께 불교 사회운동에 주력하고있다. “선련사는 한국불교 세계화의 첨병입니다. 현대 자동차 LG 가전제품 수출만이 애국이 아닙니다. 한국불교를 세계 종교 시장에 소개한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공헌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각 지역 선련사 활동으로 분주한 삼우스님을 신문사 회의실에서 만나 장시간 인터뷰를 했다. (편집자주)
어머니의 죽음이 출가 이유
삼우 스님은 1941년 진주 시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진주사범 출신이고 어머니는 일신여학교(진주여고)를 나왔다. 가사 선생이었던 어머니는 윤심덕의 ‘사의 찬가’를 좋아했던 신여성이었다. 일제때 아버지는 만주로 가고, 어머니는 학교를 그만두고 농사를 지으면서 숱한 고생을 했다. 6,25때 북한 인민군이 진주까지 밀려 내려왔는데, 어머니는 실성해서 돌아가셨다. 결국은 가정을 등진 아버지의 방랑과 동족상잔의 비극, 어머니의 죽음이 그를 출가하게 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쓸쓸히 있는 시간이 많았으며, 어른들에 대한 불신감, 죽음에 대한 의문과 악몽이 복합적 심리작용을 일으켜 중이 되게 했다.
어려서 서울로 가출
진주에서 부산을 거쳐 서울로 가출한 그는 인생의 밑바닥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했다. 책을 많이 읽고 싶은 욕심에 책방에 취직하려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종로 1가에서부터 동대문까지 책방이라는 책방은 모조리 들러 구직 구걸을 했으나, 아무도 써주지 않았다. 그래서 취 식은 무학여고 뒷산 구두 닦기 직업학교에서 해결했다. 10대 불량배들과 합숙을 한 것이다.
하루는 종로를 걸어가는데, 길가에 큰 기와집이 보였다. 저런집에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생각하고 들어가 보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안국동 조계사였다. 수위실에 들어가 무슨 일을 시켜도 할 테니 여기에 있을 수 없겠느냐고 졸랐다. 수위가 “너 여기가 어디인줄 아느냐? 절이라는 곳이다”라고 하자, “그러면 중이 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58년, 상주서 처음 삭발
수위가 시킨 대로 삼각산 문수암을 찾아갔다. 안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한 낮인데, 여승이 마당을 쓸고 있었다. “마음씨 좋은 여승이 바가지에 나무 잎을 넣어서 물을 떠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회심곡(불교 찬송가)에는 지나가는 길손에게 물 한 모금 주었느냐? 타인에게 자비를 베푼 적이 있느냐? 라는 노래가 있다며, 물 한 모금의 인연을 스님은 설명했다. 그는 문수암에는 자리가 없어 머물지 못하고, 청담 스님이 계신 김천 직지사를 거쳐 58년 상주 남장사에서 삭발하고, 부산 범어사에서 정식 스님이 되었다. 조계종 2대 정종을 지낸 하동산 스님 밑에서 수계를 받고, 선불교의 대가 설봉 스님한테서 선을 배웠다. 카리스마를 지닌 하동산 스님 한테는 일화가 많다. 6,25 때 전몰장병 위문제가 있었는데, 이승만 박사가 모자를 쓴 채 법당에 들어오자 하동산 스님이 야단을 쳤다는 것이다.
선 불교 영어로 체계화
삼우 스님은 범어사에 오래 있지 않고, 광덕 스님과의 인연으로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 하면서 종단 사상 처음으로 국제국을 신설하여 해외업무를 맡기도 했다. 그 후 코리아 타임스에 칼럼니스트로 글을 썼다. 이렇게 영어 실력이 뛰어난 삼우 스님은 후에 하버드대학 세계종교 연구소의 권유로 한국 불교를 학문적으로 연구, 서양에 소개하고 선 불교를 체계화했다. “절은 틈나는 대로 공부하기 좋은 곳이지요. 옛날 선비들이 다 절에서 나왔습니다. 신석정, 조지훈, 고은, 법정 스님도 학교 다닌 분 아니고 절에서 공부한 분들이지요.”
집도 절도 없이 시작
인연 없는 중생부터 돕고 구제하라는 무연중생 사랑에 깨달은 바 있어 국제사회에 나와 불교활동을 할 마음을 먹은 삼우 스님은 1966년 일본 홍콩 등을 거쳐 67년 8월 뉴욕에 온다. 그는 밤일을 하면서 42가에 아파트를 얻어 미국인들에게 참선을 가르쳤다. 그는 캐나다로 이주, 68년 몬트리얼, 72년 토론토에서 식당 접시 닦기를 하면서 우체국 수하물을 나르다가 눈 속에 쓰러지기도 했다. 결핵으로 요양원에 격리 수용 된 후, 그는 3년 결사에 들어갔다. 7년 동안 서양 사람 참선 가르치고 한국 동포 불자 위로하며 지하실 법당 시대에 만족했다. 그러나 지하실 법당 시대는 더 이상 오래가지 않았다. 참선 공동체를 만들어 불교사회운동을 하자는 젊은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문화활동과 함께 사찰 건립이 시작됐다. 79년 토론토시 우범지대에 헌 집을 사서 절을 만들었다. 82년 미시간 앤아버에, 84년 멕시코시티에 선원사를 개원했다. 그는 87년 7월 북미 선 불교대회를 앤아버 선련사에서 주최했고 매년 열리고있다. 시카고 선련사는 뒤늦게 92년 낡은 교회 건물을 구입하여 마련했다. 현재 시카고 시내 링컨 가에 있는 선련사는 등록신자 1천 8백 명, 출석 신자는 3백 명쯤 된다. 토론토 선련사가 역사나 규모면에서 제일 크다. 그곳은 엑티브한 신자가 4백 명된다고 한다. 그래서 삼우 스님은 전에는 토론토 보다 시카고에 머무는 기간이 길었으나, 요새는 토론토에 더 오래 머문다. 시카고 선련사는 작년부터 초파일에 제등행렬 행사를 하기시작 했다. 경찰 차가 에스콧을 하는 가운데, 프랑카드를 들고 시카고 예술대학 밴드와 함께 아이들, 스님, 일반인 순으로 1시간 반 동안 행진을 한다. 9월에는 기금 모금 행사가 있고,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신도들이 수공예품 등 물건을 가져와 바자회 옥션도 한다. 선련사 재정은 기부, 특별헌금, 비즈니스(세미나) 등으로 충당한다. 삼우스님은 “늘 가난하지요, 집도 절도 없던 때를 생각하고 근검 절약으로 꾸려나갑니다.”라고 말했다. 선련사는 미국인 주류사회 중산층을 상대로 한 포교인데, 시카고의 경우 선련사가 남쪽으로 옮길 경우, 앞으로 흑인상대 포교도 생각하고 있다.
종교 지도자 달라이라마 존경
삼우 스님은 세계 종교간의 대화 모임이나 순회법회에 자주 나간다. 93년 시카고 팔머 하우스에서 열린 세계대회 후 3년 간 국제 자문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티베트 출신 불교 지도자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라마와는 개인적으로 여러 번 만났다. “제가 달라이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중국 치하 티베트서 비폭력 평화운동을 전개한 점입니다. 또 서양 지식인 사회에 티베트 불교운동을 전한 그의 열정에 존경심을 갖고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누구한테나 친근하고 겸손합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그렇게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책도 많이 쓰고, 강론도 쉽게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는 서양의 과학문화와 동양의 정신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수행하고있는 큰 인물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이고, 불교는 지혜의 종교인데, 지혜와 과학의 접목을 중요시 한 것은 비전을 갈망하는 시대에 좋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미주에는 한국 불교사원 100개, 주류사회 절 2천 개가 있다. 불교는 미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종교이다. 지난 10년 간 300% 이상 성장했다. 그러나 아직도 신자 수는 미국 인구의 1%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은 기독교인이라도 모국의 불교 문화 전통을 존중하고 자존심을 갖는데 비해 한국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된 것처럼 ‘우리 것’을 다 버립니다. 우리 후손들의 성공을 위해서도 정체성과 뿌리의식은 꼭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삼우 스님은 세모에 멕시코에 가 있다. 그곳 선련사 개원 2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고있다. 삼우 스님과의 심오한 인터뷰를 한 장의 지면에 담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무거웠다. 스님은 긴 대담을 끝내고 일어나면서 지리산서 가져 온 작설차를 선물로 주고 가셨다.
<육길원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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