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나라라고 모순과 부조리가 없겠는가만 한국을 더욱 그렇다는 인상과 함께 4개월이 넘는 서울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수출과 무역수지 흑자는 한국의 잠재력을 계속 과시하는 듯하다. 또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와 액정 표시장치(LCD)등의 대형 고화질TV 생산 수출국으로 일본을 앞선다는 보도 또한 고무적인 듯하다. 그러나 한편 택시기사의 월급이 70여 만원인데다가 그나마 택시 잡기가 수월할 정도로 이용객들이 적다는 사실은 체감 경기가 말이 아니라는 모순을 드러낸다. 한국의 기업들이 하도 잦은 노동쟁의에 신물을 내어 외국에 공장 세우는데 앞을 다투는 현상은 한국산업의 공동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직 언론사 사장의 한탄이 실감난다.
서울역 주변의 노숙자들이 강추위에 몸을 떠는가 하면 강남의 백화점과 식당가는 소위 명품을 휘감은 때깔 좋은 사람들로 붐빈다. 10월중 월남과 캄보디아에 갔더니 한국 기업들과 인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국산 휴대 전화기의 인기가 있다. 삼성이나 LG 등의 최첨담 전화기들이 세계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중요한 부속품들은 외제 아니면 엄청난 로얄티를 지불해야 되는 부품들이라는 보도니까 이 또한 ‘외화 내빈’의 현상이다.
또 정치는 어떤가? 대학 교수들이 금년의 한문의 4자성어로 ‘우왕좌왕’을 골랐단다. 노무현 정권의 출범 후 수없이 뒤바뀌는 말과 정책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500억원이 넘는 대선 불법자금 수수과정은 가위 제임스 본드 첩보활동 수준이다. 현대 등 재벌기업이 100억 이상이 담긴 트럭을 고속도로 휴게소에 세우고 한나라당 간부나 이회창씨 측근이었다는 서정우 변호사(구속)에게 열쇠를 건네주면 그 이튿날 빈 트럭이 다시 그곳에 세워지는 소위 ‘차 떼기’ 수법이었다니까 이회창씨가 감옥에 갈 각오를 한다는 것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에 대한 노대통령의 대응은 또 한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자기쪽 “불법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지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항상 돌출적인 그의 말들을 둘러싸고 그의 지지자들은 화끈한 승부사적 요소를 한국 정계의 정화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보는 입장인가 하면 대통령으로서 입에 담아서는 안될 너무나도 경박스러운 언사였다는 게 소위 조 중 동 등 보수 언론의 질타다. 검찰수사가 진행중인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주자는 책략이지 않겠는가 라는 혹평도 나오는 가운데 강금실 법무장관 자신이 대통령의 그와 같은 말이 부적절하다고 국회 한 상임위에서의 증언에서 지적하기까지 했다.
사실 자기 쪽은 일반 국민들의 돼지저금통의 헌금 등 깨끗하고 투명한 돈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라고 선전해왔던 대선 때의 공언들을 생각해보면 노 대통령 측근들의 잇따른 구속기소는 모순의 극치다. 그런 가운데서도 ‘리멤버 1219’라는 노사모 등 친위조직의 대선 당선 일주년 행사에 참가한 노 대통령은 “우리는 승리했지만 대통령 선거가 끝나지 않았던 모양”이라면서 “그들(야당과 보수언론)은 승복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나를 흔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시민혁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노 대통령이 자기 지지자들 앞에서 야당을 비난한 것은 내년(4월) 총선을 겨냥한 사전 선거운동”이기 때문에 “이는 분명히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고 따라서 국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노 대통령의 당선기지였던 민주당의 부대변인도 “외환위기 때보다 경제가 더 어렵다고 국민이 아우성인데 사사로운 모임에 참석해 선동하고 사전선거운동까지 한 것은 심각한 사태”라고 비난했다.
노 대통령의 당선 이후의 1년이 이미 몇 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너무 엄청난 발언과 사태가 속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홍위병이라고 자칭하는 명계남 씨 등 노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노사모 다시 뛰어달라”는 그의 주문을 어떻게 실천에 옮길는지, 또 그에 대한 야당들의 대응이 무엇일지 한국 정계는 점점 깊은 진흙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한국은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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