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 휘 (소설가)
진태야, 너 어떻게 할거니?
글쎄. 본전 생각은 나고 돈은 없고....
우린 자러갈까 해.
더 안하고?
기름 값 나왔으니 잠이나 자고 가야지.
한기야, 그럼 너 딴 돈 좀 빌려줘.
그만해라, 너 오늘 크게 깨졌지?
씨팔, 첫판에 패가 너무 좋았는데.....
그럴 때는 빨리 접는 것이 좋아, 노름의 원칙도 모르나? 한참 들어 올 때 일어나고, 끗발 안 날 때 일어날줄 알아야 된다고 네가 항상 말했잖아.
그렇지만 파장 끗발이 있지 않아. 영호, 너한테 좀 빌리자.
한기가 많아, 난 없어.
다들 그만둬.
진태는 호주머니에 손을 꾹 집어넣고 어깨를 움츠리면서 친구들 앞에서 돌아섰다. 그 동안 꼬불쳐놓은 돈과 마누라한테 사정한 돈 이천 불을 찾을 수 없는 은행에 저금을 하고 말았다. 그냥 돌아가기는 아쉽다. 호주머니엔 땡전한푼 없다. 가끔 진태가 재미본 돈으로 아침도 먹고 자동차에 기름도 넉넉히 넣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손을 뻗어 칩을 한번도 거두어 보지 못했다. 진태는 쌀쌀한 밤 기온 속으로 걷는다.
한기야, 저 친구 카드도 안 가져왔지?
마누라가 안 주잖아.
그럼 완전 빈털터리가 되었겠네.
저렇게 걷다 올 거야. 우리 먼저 가자.
저 친구 어제 밤에 마누라 곁에서 잤나?
야, 그럼 넌.
두 친구는 숙소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 진태는 포커판 테이블에 앉았다. 오백 불 어치 칩을 바꿔었다. 딜러는 날랜 손가락으로 카드를 두 단으로 나누어서 그 끝이 기관총 같은 소리를 내면서 서로 엇갈려 섞이게 하는 것을 완벽하게 하고 있다. 여러 번 되풀이하면서 카드가 골고루 섞이게 한다. 그렇게 주무르던 카드를 진태 옆에 있는 백인 노인한테 떼라고 한다. 딜러는 그 카드를 손아귀에 넣고 느긋하게 카드를 돌린다. 카드는 앉아있는 사람 앞에 정확하게 던져졌다. 진태는 앞에 떨어진 카드를 슬며시 들여다본다. 스페이드(spade)에이스와 킹이 들어왔다. 진태는 첫판에 좋은 숫자가 들어와 오늘 괜찮겠다는 생각에서 칩을 던졌다. 진태는 감정을 안 나타내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노름판에서 얼굴표정은 금물이다. 다음 카드가 들어왔다. 이번엔 스페이드 10이 들어왔다. 처음 사람이 베트(bet)를 했다. 그 다음 사람은 그냥 받아만 주었다. 진태는 스트레이트 플러스가 될 가능성이 엿 보였다. 물론 그렇게 될 확률은 적었지만 기대를 해 본다. 이럴 때는 몇 사람의 카드를 덮게 하므로 나에게 유리하게 된다. 진태는 더 불로 베트를 했다. 세 사람이 카드를 던지고 말았다. 딜러는 다시 카드를 주었다. 진태 앞에 떨어진 카드는 하드 5였다. 진태는 옆 사람이 느낄 수 없는 긴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되면 원 페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진태는 앞에서 베트하는 대로 그냥 따라만 갔다. 먼저 카드를 던진 사람들이 수군수군 그린다. 그 다음 카드, 마지막 카드 한 장까지 기대를 가지고 따라 갔지만 카드는 완전 뒤죽박죽이 되었다. 진태의 패가 그런 식으로 되었다.
저 가시나가 내 돈맛을 봤나, 왜 더럽게 카드를 주나.
진태는 한국말로 중얼거리면서 딜러를 쳐다본다.
마지막에 가서 삼천포로 빠지는 꼴이 되다보니 돈이 다 나가고 말았다. 노름하는 사람들은 돈이 자꾸 나가면 자리를 옮기기도 하는데 진태는 그렇지가 않았다. 우물을 파도 한곳에서 파는 성질이다. 그래서 가끔 마누라한테서 늘 푼수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몇 번 딜러가 바뀌어도 오늘 따라 진태한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진태는 넓은 파킹 장을 나와 타오 브로바드 길을 따라 걷는다. 노름판에서 돈 잃은 사람들 대부분은 우그렁 바가지 같은 얼굴을 하고 노름판을 기웃거린다. 진태는 우거지상을 하고 있지만 미련 없이 노름 장을 떠나고 있다. 그래도 노름판 돈 때문에 마누라까지 팔지 않을 정도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진태 눈에 아스팔트 길 위에서 번쩍 하는 빛이 있었다. 진태는 몇 걸음 걸어가 허리를 굽혀 그 빛이 있는 물체를 집어 보았다. 쿼터(quarter)동전 하나였다. 진태는 동전을 호주머니에 넣고 그냥 걷는다. 동전을 만지작거리던 진태는 숙소를 향하던 발걸음을 뒤돌아 서서 네바다 쪽으로 급히 걷는다. 포카 테이블에 무엇을 두고 온 사람처럼 걸음이 빨라진다. 급히 노름장 안에 들어선 진태는 느긋하게 스러트 머신 앞을 걷는다. 박물관 미술전시품을 보는 사람같이 걷고 있다.
사람이 없는 머신을 몇 개 지나온 진태는 한 머신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진태는 호주머니에서 조금 전 주언 동전을 머신에 넣고 힘껏 잡아 당겼다. 숫자와 과일 그림들이 돌아가다 멈추면서 툭툭 툭 하면서 동전이 쏟아져 나왔다. 진태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돌았다. 진태는 동전을 집어 다시 머신에 넣었다. 그렇게 동전을 넣으면 돈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진태 앞에는 동전이 점점 쌓여갔다. 진태는 포커 판에서 잃어버린 돈을 여기서 찾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계속 동전을 머신에 넣었다. 그렇게 잘 나온 던 돈이 이젠 나오지 않고 계속 집어삼키고 있었다. 진태 앞에 동전이 몇 개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오늘은 빈털터리로 돌아가는가 하면서 두 개 남은 동전 하나를 집어넣고 힘껏 당겼다. 숫자와 그림이 돌아가다 멈추어서면서 머신 앞에 7의 숫자가 4개 나란히 나타났다. 진태는 그 숫자를 확인하느라 눈을 가까이 가져갔을 때 벨소리가 요란하게 귀청을 울리고 있었다. 진태는 잭 팟이 터졌다고 고함을 질렀다.
여보, 여보- 오.
하고 누가 흔들어 보니 마누라가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전화 받아 봐요.
누구야?
받아 봐요.
전화 바꾸었습니다.
한기다. 오늘 너 갈 거지?
아, 글쎄. 정신 좀 차리고 내 전화할게.
당신. 오늘 어디 못 가요. 저녁에 큰집에 가야해요.
여보, 나 지금 잭 팟 터졌단 말이요.
꿈은 꿈이에요. 정신 차려요.
아니야, 돼지꿈이야.
돼지 같은 소리 그만해요.
마누라는 방문을 닫고 나갔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했는데.
진태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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