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어디에고 있었다. 어디로나 가고 있다. 길은 언제부터 생겨나서 지금도 길이 되고 있다. 나는 큰길 아래 일본 적산 가옥에서 태어났다. 그 아래 비가 오기만 하면 없어져서 논이 돼버리는 골목길 그 곁에 곽 주부라는 한약을 짓는 용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늘 사람들의 앞일을 예견해 준다고 해서 존경을 받고, 모두가 그의 말을 따랐다. 그는 내가 훌륭한 관리가 되어 벼슬을 한다고 점쳐서, 하마터면 정치로 나가 가장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이 될 뻔했다.
큰길에서 샛길로 언덕을 오르면 첫 모퉁이에 금은방 집이 있었고 이 집은 우리 가정과 형제처럼 지냈다. 제일 큰 사람은 5.16 군사혁명 재판을 하는 판사로서 명성을 날렸다. 나보다 한 살 위인 누나는 마음씨가 곱고 총명할 뿐 아니라 키가 훌쩍 커서 내가 버스에서 만날 때면 항상 발굽을 들고 서야 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 누나를 그렇게 좋아했나 보다. 바로 아래는 머리가 그렇게 좋고 명문학교를 다녔는데 이웃 혼혈아와 사랑에 빠져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자살했다. 골목길을 아카시아와 목련이 담을 만들고 그림처럼 아기자기한 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나의 앞집에는 목사님 가정이 살고 있었는데 아들 목사는 동네 아이들에게 영감을 키워주는 재미난 이야기를 정성껏 들려주어서 동심을 크게 자라게 했어도 본인은 아내를 확대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그는 로스케 동생을 두고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러시안 인에게 당해서 얻은 아들인데, 아무도 그 내력을 아는 사람이 없듯이 베일로 지켜졌다. 그는 파란 눈을 하고 있었다.
그 옆집에는 나와 동갑내기가 있는 남자형제가 수두룩한 가정이 있었는데 그는 늘상 나와 경합하는 아이여서 늘 경쟁을 해야했다. 땅따먹기를 해서 나는 이겼어도 그의 머리는 돌 같아서 나의 앞니를 깨서 나는 지금도 그 빈자리가 남아 있다.
길은 어디에서나 변화고 있었다. 우리집을 오는 다음 샛길에는 목탄차가 소리를 내고 오르며, 군인 트럭이 빠르게 목탄차를 재치고 지나면 우리는 손뼉을 쳤다. 언젠가 길은 흙을 나르는 트럭들이 오고 가더니 넓직한 포장도로가 됐고 주위에 살던 이웃들이 하나둘씩 어디론가 그 길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윗동네 돌담집에는 혁명정부 때 이름을 날리던 장군이 와서 살았다. 나의 또래 친구들은 일찍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 나의 조수처럼 따르던 친구는 이 골목길을 떠나서 어느 시골 교회 목사가 됐다고 들려온다.
길은 언젠가 막히고 샛길이 트이고 집과 건물이 들어서서 사라져 버린다. 미국에 온 첫 해에 나는 폭스바겐으로 미국을 뉴욕서부터 샌프란시스코까지 횡단했다. 누나 주소 하나만 들고, 길은 끝이 없이 길었고, 길은 이야기를 만들고 추억을 남겼다. 길에는 항상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 길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3년이 지나서 나는 샌프란시스코로부터 텍사스로 갔다. 휴스턴이다. 나는 이 길에서 미국의 남쪽 이야기를 듣고 길속의 인생을 생각해 봤다. 캄캄한 사막의 길을 걸어서 말을 타고 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검불이 귀신처럼 떼굴떼굴 구르고 사막모래가 차 앞 유리를 완전히 갉아먹는 그 길을 나는 갔다. 미시간에서 수련의를 하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주말마다 길을 달렸다. 길들은 끝없이 길고 지루하기만 했다. 사람들을 길에서는 거의 만날 수 없듯이 길들은 그렇게 오래도록 이어져 갔던 것이다.
지금도 정처없이 길을 간다. 이제는 옛 동네나 친근한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 그길을, 새해 새날이 오면 말하지 길은 곧 끝나고 잊혀진 사람들이 길에서 기다릴 것이라고.
길은 어디로나 통하지만 목적지는 한 곳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또 자기의 길을 떠난다. 엇갈리고, 헤메기도 하며, 쉬기도 하면서, 지루해하면서 기약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고 또 잃어버리면서, 길은 끝없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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