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글을 써오시고 또 신문사에서 오랫동안 논설을 정규적으로 쓰시는 글 잘 쓰기로 유명한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필자가 늘 읽는 그 분의 글을 칭찬했더니 그 분 말씀이 ‘세상에서 제일 힘드는 일이 글 쓰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매일 글 쓸 일이 있건 없건 글을 쓴다고 했다. 글 쓰는 습관을 들인다는 말이다. 그렇게 어려운 글 쓰기를 할 때 무엇이 가장 힘든 부분이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무엇을 쓰겠다는 개념’이라고 하셨다. 일단 이 개념이 서면 그 이후부터는 그리 어렵지는 않다는 것이다.
’무엇을 쓰겠다는 개념(concept)’은 한 마디로 우리가 생각을 할 때 생기는 ideas라고 볼 수 있다. 글을 쓸 때는 idea를 갖고 생각의 정리정돈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런 정돈은 경험에 의하여 여러 카테고리, 분야, 혹은 여러 방면으로 갈라지기도 한다. 이런 모든 분야는 어떻게 일이 벌어지는가, 그 일에 연결되는 인물, 사건, 배경, 우선순위 등이 머리 속에서 그려져야 한다. 예를 들어 ‘개’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그저 ‘동물’이라고 하자. 동물이란, 자신의 권리도, 감정도 있을 수가 없다. 그저 우리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개념을 갖고 있다면 이것은 도덕성의 문제가 될 수가 있다. 그러나 반면에 같은 ‘개’라도 ‘애완동물’이라는 개념이라면 우리가 그것에 대한 어떤 개념을 가질 수 있겠는가? 또 어떤 것을 예측할 수가 있겠는가? 같은 ‘개’를 놓고 단순히 동물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을 때와 애완동물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을 때와 비교해 보면 이 개념의 중요성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개념에는 크게 보아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간단한 개념 파악이고 둘째는 복잡한 개념 파악이다. 예를 든다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by Margaret Mitchell)의 배경이 무엇이냐?에 대해 글을 쓴다면 우선 간단한 배경, 즉 남북 전쟁에 관하여 쓸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남북전쟁이 무엇인가를 아는 정도로 개념파악은 끝날 수 있다. 주입식 교육에서 주로 사용되며 특별한 고차원의 생각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사실을 그저 알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제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그 질문 자체가 critical thinking(고차원의 생각)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주제도 겉 내용(external plot)만 보고 그저 스칼렛과 애슐리의 사랑, 그리고 스칼렛에 대한 레트의 열정적 사랑도 결국 깨지고 마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라고 한다면 이것은 연속극 같이 흥미본위의 사랑이야기에 불과하다. critical thinking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겉 내용 아닌, 속내용(internal plot)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인간의 자유, 혹은 해방’이라고 볼 수 있다. 타라 농장이 다 불에 타 황폐된 후 스칼렛이 멀리 황혼의 아름다운 빛이 비추이는 저녁 무렵(이것은 그의 인생의 나이를 상징함) 황폐한 밭에서 당근을 하나 캐어 들고 하늘을 향하여 스스로에게, 또 하나님께 맹세를 하는 장면이 있다. 나는 다시는 배고프지 않으리라… 그때까지 스칼렛은 아버지의 돈으로, 그의 부유한 땅에서 나오는 재산으로, 또 자신의 아름다운 미모로,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살아온 백인 상류층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아버지의 재산도 자기가 벌어서 자신의 힘, 자신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자기가 잘나서 부자 아버지를 두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니다. 미모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잘나서, 자신의 능력으로 미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흑인 노예도 자기들이 어디가 부족하여 가난하고 새까만,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또 왜 누가 흰 얼굴색이 까만 얼굴색보다 더 좋고, 아름답다고 했나? 정말로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참혹한 경험을 하기 전 까지는 스칼렛은 상류층의 세계에서 그 우물안 개구리처럼 세상을 살아간다. 자기가 아는 세계에 안주하며 자신의 미모로 이 세상의 남자들을 마음대로 농락한다(백인들이 흑인을 착취하는 것의 상징). 스칼렛은 일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일을 할 줄을 모르는 인간 기생충이었다. 한편 일을 하고 또 해도 그 일의 대가가 자기 몫으로 찾아오지 못하는 것이 노예들의 삶이었다. 그들은 일의 대가는커녕 자신의 가치, 존엄성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감수하며 인간 쓰레기로 취급받았다. 스칼렛, 즉 상류층의 세계와 노예의 세계는 무엇이 다른가? 하나는 무엇이나 극단으로 갖고 있는 세계의 사람, 또 하나는 극단으로 아무 것도 못 갖고 있는 세계의 사람, 이렇게 양극의 사람들이지만 둘은 또한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패러독스(paradox)를 접하게 된다.
스칼렛은 자기의 사랑에 대해 반응을 안 보이는 애슐리를 거의 집념에 가까울 정도로 사랑한다(여기서는 Scarlet의 집념은 안락했던 상류층 세계를 포기 못 하는 자신의 불안, insecurity를 상징함). 애슐리는 여기서 스칼렛 자신이 걸어온 상류층의 세계를 상징한다. 애슐리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품위 이외엔 생활력도 없으며 가끔 우유부단한 인간으로 등장한다. 그러기에 그는 자기와 똑같은 멜라니와 결혼을 한다. 멜라니 역시 좋은 가문에서 왔다는 것 이외에 생활력도 없으며 애슐리와 마찬가지로 그저 착하다는 것 밖에는 없다. 결국 스칼렛에게 짐이 되며 자신의 생활을 개척해 나가지 못한다. 끝에 가서야 스칼렛은 자기가 애슐리를 사랑했던 것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상류층 세계의 허상을 깨닫는 것이다.
아직 홀로 설 수 없던지, 혹은 독립은 했는데도 홀로 설 수 없다고 생각하는 스칼렛에게는 레트 버틀러는 편안한 안식처이다. 왜냐하면 그는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류층의 세계를 상징하는 ‘부’를 한 손에 다 쥐고 있는 또 하나의 상징! 그러나 레트는 당시 남부의 귀족적 상류층의 일원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레트는 새로운 세대를 이끄는 new riches를 말해 준다. 작가가 나중에 이 레트가 스칼렛을 떠나게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즉 스칼렛이 정말 홀로 서 있을 수 있는 것을 상징한다(몇년 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후편이 다른 작가에 의해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이것은 원작의 속내용(internal plot)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을 못한 독자에게는 가능할 지 모르나 속내용을 파악한 독자들에게는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반면에 속내용, 즉 ‘인간의 자유, 혹은 해방’이라는 개념에 대해 쓴다고 하면 critical thinking이 우선되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써본다면: The art of questioning에서 1. 첫 질문: 이미 설정된 범위(시스팀) 내에서만 답을 하여야 한다. ‘무엇을? 어디서?’라는 질문엔 답을 하나 쓰고 나면 사실 쓸 내용물이 없어진다. 주로 이렇게 가르치는 주입식 교육을 받으면 글을 쓰려고 해도 사실 쓸 내용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2. 둘째 질문: ‘어떻게?’ 라는 질문도 다시 두 가지로 구별된다.
a) 이런 질문은 개인의 취미와 성향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 즉 이것은 open-ended question이라고 하여 답이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즉 쓸 일도 많고 쓸 내용도 많다.
b)이것은 개인이나 사회의 판단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1. 이런 질문의 중요 목적은?
2. 이 문제에 답을 하려면 우선 나 자신이 어떤 많은 질문을 해야 하나?
3. 이 문제에 답을 하려면 우선 나 자신이 어떤 정보 수집을 해야 하나?
4.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제의 근본적인 개념은? 이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가?
5.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제의 근본적 배경의 이해와 앞으로의 대책은(assumption)?
6.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제의 근본적 암시는 있는지(inferences)?
7. 필자의 견해는 과연 어떠한가?
8.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제의 여파는?
논술은 이 소크라틱 질문(Socratic questioning)의 근본 바탕을 두어야 한다.
하나의 답을 외우기만 하는 교육으로 잔뼈가 굵어진 학생들은 위에서 보여준 critical thinking 없이는 글을 쓰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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