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세도나
크리스마스 다음날 하루를 놀면서 며칠 연휴가 생긴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세밑 여행을 다녀왔다. 날보고 맨날 놀러 다닌다고 오해할 사람이 있을까봐 미리 말해두는데, 올해 우리 가족이 함께 간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여름에 아들이 보이스카웃 캠핑을 두 번이나 다녀오면서 어쩌다보니 가족여행을 건너뛴 것이다.
올해는 그냥 넘어가자 했는데 얼마전 아들이 패밀리 트립을 가고 싶다고 투덜대었다. 이 아이가 부모와 함께 여행하고 싶어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 것인가. 그래서 조금 무리를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우리끼리 간단하게 라스베가스에 들러 데스밸리를 돌아보고 오는 계획을 세웠으나 막판에 이웃집 제리네와 함께 가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 집은 두 아들 제리와 제임스가 우리 아들과 함께 보이스카웃에 다니는 친구들이고, 그로 인해 아빠들도 친해진 이웃이다. 제리네 미니밴으로 움직이기로 하고 좀 멀더라도 세도나와 그랜드캐년까지 뛰자는 데 의견을 모아 2박3일로는 다소 무리인 강행군을 하게 되었다.
첫날은 하루종일 가기만 하고 이튿날 세도나로 들어갔다. 과연 말로 듣던 대로 기기묘묘한 모습의 붉은 산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세도나 마을은 이제껏 가본 관광지중 가장 주변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도록 아름답게 조성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세도나에서 나는 일생에 잊지 못할 가장 끔찍한 일을 겪었다.
세도나에 가면 오픈 지프차를 타고 몇시간씩 계곡과 들판, 바위산을 달리는 어드벤처 투어들이 많이 있다. 우리 일곱명은 일인당 55달러인 ‘핑크 지프 투어’를 예약하여 아침 10시에 출발하였다. 그런데 거의 영하에 해당되는 날씨를 계산하지 않은 것이 큰 실수였다. 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찬바람이 몰아치고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날리면서 나는 앞으로 두시간동안 내게 닥칠 일에 대해 공포와 함께 추위에 떨기 시작했다.
나는 좀 심하게 추위를 타는 편이다. 계절이나 시간에 관계없이 연중 거의 어느때나 와들거리는데다 회사에서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책상 밑에 늘 난로 켜놓고 일을 하기 때문에 동료들은 나를 ‘상태가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또한 나는 절대로 롤러코스터 같은 것을 못 타는 사람으로서, 매직마운틴에는 가본 적도 없고 가볼 일도 없으며 오래전 디즈니랜드에서 한 친구가 나를 속여 무서운 라이드에 태운 후 며칠동안 말도 안하고 놀지 않았던 사건이 있었을 정도다.
그런 내가 두시간동안 쌩으로 칼바람을 맞으며 로데오 경기하듯 광포하게 날뛰는 전륜구동 지프차를 탔으니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상상해보라. 사람이 왠만큼 당해야 악 소리도 지르고 욕도 나오는 법이다. 나는 완전히 죽은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스키 파카를 입고 있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내 일생에 절대로, 단 한번도 쓰고 싶지 않았던 쫄쫄이 털모자를 뒤집어썼으며, 그런 처참한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남편에게 반항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모든 신체적 기능이 마비되었다.
일행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동정을 금치 못하였지만 차가 튀어오를 때마다 이~햐!를 외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 나를 더욱 서럽게 했다.
세도나의 기를 받기는커녕, 기를 쓰고 이를 악물며 온몸을 오그린 채 남은 진마저 다 뽑아내었던 두시간, 차에서 내릴 때 나는 지옥훈련에서 살아남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것 하나 빼고는 즐거웠던 여행, 다음날 그랜드 캐년까지 올라가 서너시간 돌아보고 나온 것은 정말 잘 한 일이었다. 눈이 하얗게 내린 설경과 아이들이 신나게 눈싸움하던 모습, 흰눈 쌓인 피크닉 애리어에서 언 발을 구르며 꽁꽁 언 손으로 끓여먹던 컵라면 맛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들에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 눈치를 슬슬 보면서 하는 말이 지프차란다. 자식 키워봐야 다 헛일이고, 모자간에도 이렇게 코드가 안 맞으니 한나라의 대통령과 국민들이랴. 좋은 기억도 많았건만 앞으로 나는 세도나 하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 지프차와 칼바람밖에는 생각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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