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한국역사 서술은 너무 민족사, 정치사 중심의 거대 담론에 치중해 왔어요. 그러나 사회가 다양화되고 민주적 가치가 정착하는 현실에서 역사 서술의 시각과 방법이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난 95년부터 10년 계획으로 이야기 한국사(총 22권)를 펴내고 있는 사학자 이인화(66) 씨의 말이다. 이 씨는 과거의 역사를 지배자 내지 주도세력들에 치중된 역사라고 지적하고 민중의 숨결이 묻어나는 생활사가 좀더 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역사 서술에 있어서의 거대 담론 일변도의 문제점은 한국사학계 뿐 아니라 과거 서구나 미국의 사학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랑케(Leopold Von Ranker. 1795-1886)) 식의 문서 없이 역사 없다는 문헌 중심주의 즉 실증주의 역사서술방법이 근래까지 동서양의 사학계를 지배해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미주 한인사는 어떤가. 한국과 미국 사학계의 최근 동향의 일부를 간단히 살펴보고 미주 한인사의 방향 등에 대한 견해를 피력해 보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근래 들어 민주주의의 발달과 생활여건 향상으로 명망가 위주의 전기물 보다는 민중의 생활사 즉 그 동안 그늘에 가려졌던 지방사, 일제시대의 정신대, 제주 4.3사건,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사, 개인 생애사 등이 구술사(Oral History)라는 형식을 빌어 각광을 받고있는 것이 작금의 한국 사학계의 현실이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만열)도 최근 구술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금까지 역사 자료의 지위에서 소홀히 대접 받아왔던 경험과 기억의 역사화를 위해 구술자료 수집을 위한 기초연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역사는 지배자 위주의 소수의 역사이며 다수인 민중들의 삶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다수의 역사가 전면에 나와야 한다는 것이 구술사가 들의 주장이다.
한편 미국의 경우, 지배 엘리트와 건국 영웅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미국역사 서술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이 1907년 미시시피 계곡 역사학회(Mississippi Valley Historical Association)의 창립이었다. 이 학회의 창립은 위(지배자)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역사와 민주적 역사를 주창하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미국 구술사학계는 세계의 구술사 연구를 선도해오고 있는데 이들은 역사연구의 방법론으로 구술사 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 이들은 주로 생애사를 통해 지방, 빈민, 범죄, 이민, 소수민족 등의 역사를 서술하려 했다.
현재 미국에서 출판되고 있는 대부분의 한인사도 한국의 영향으로 문헌중심의 서술이 지배적이나 향후에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주장하는 구술사에도 관심을 가져야할 것 같다. 보완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현재 나와있는 한인들의 구술사중 샌프란시스코의 도라 염 김(진수영 편)과 매리 백 리(수쳉찬 편)의 것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들의 구술을 통해 2차대전 전의 한국인들을 포함한 아시안들이 어떤 차별을 받았고 굶주림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는가에 대해 소상히 알 수가 있다. 기존의 역사서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당시 한인들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이 구술서는 우리에게 100년 전의 시대와 상황으로 안내하고 있다.
필자도 얼마 전부터 이러한 미시사 분야에 관심은 가져 왔었으나 지난 12월 13일 서울에서 열렸던 재외 한인학회 연례 학술대회에 참석하고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국기독교 역사연구소의 방문을 계기로 학계의 동향과 연구방법 등에 대해 새로이 눈을 뜨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임영상 교수(외국어대학교 사학과)등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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