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편집국 부국장>
가장 중요한 것은 재정에 관한 투명성입니다. 그런데 너무 불투명하고 회장님이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추진하고…
지난 16일 낮12시 샌프란시스코의 한 음식점.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럽게 이어지던 최원 상항 한인 축구협회장의 말은 이 즈음에 이르러 상당히 높아지고 빨라졌다. 나기봉 상항 한인 체육회장의 ‘불투명하고 독단적인’ 협회 운영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자리였다. 그의 발언을 묵묵히 듣고 있던 배석 이사들도 하나둘 말문을 열고 구체적인 증거들을 쏟아냈다.
올해 초 (월드컵 4강신화의 주역) 김태영·이운재 선수를 초청했을 때 두 선수에게 준다고 5,000달러씩 현금으로 가져갔는데…곧장 전달을 안한 것도 문제지만 안주고도 줬다고 한 거짓말이 더 문제 아닙니까…작년 여름에 이사진 등 협회 임원들을 상대로 거둔 수재의연금 처리문제도 그렇고…올해 달라스 미주한인체전 출전때 항공권문제도 그렇고…
그로부터 2시간 뒤 한인회관에서 반박 기자회견을 가진 나기봉 회장 역시 할말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뵙게 돼서 단체장으로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허리를 낮추며 회견을 시작한 그는 몇달동안에 불신임인가 뭔가 협박을 몇번이나 당하고 이거 정말…이라며 서서히 톤을 높이더니 돈 문제에 이르자 두툼한 자료뭉치를 한장한장 넘겨가며 한껏 목청을 높였다.
자 보십시오. (돈을 유용했다고 의심하지만) 실은 제가 쓴 돈(개인적으로 출연한 돈)만 2만달러가 넘습니다. 그것도 영수증이나 기타 증거가 있는 것만 해서 그렇다는 것이고 영수증 처리 안된 것까지 합치면 훨씬 더 썼습니다…두 선수에게 돈이 갔네 안갔네 그러는데 여기 영수증(제3의 협조자를 포함해 3명에게 도합 8,000달러 상당) 보시면 아시겠지만…두세시간 행사에만 참석해도 몇백만원 몇천만원 받는 선수들을 이리 쑤시고 저리 쑤시고 해서 거의 무료로 초청했는데 찬사는 못들을망정…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이 평검사와의 대화때 내뱉으면서 유행어가 된 말마따나 이쯤 되면 막하자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의 감투싸움이나 파벌싸움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이번 체육회 분규는 잘만 하면 곪은 상처를 도려내고 깔끔하게 새 출발하는 희망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양측이 벼랑끝 드잡이처럼 보이는 팽팽한 대치를 계속하면서도 그런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양측이 어느정도 흥분을 가라앉힌 뒤 상대방을 지칭하는 용어부터가 여느 이전투구와는 사뭇 다르다. 정말 ‘막하자는 것’이라면 우리 이사님들 회장님과 같이 예를 갖춘 호칭이 나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사진이 각종 의혹을 거론하면서 회장님이 열심히 하셨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우리는 회장님을 몰아내자는 게 아니고 앞으로를 위해 협회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것일 뿐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도, 나기봉 회장이 잘못된 관행 때문에 제게 불찰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우리 이사님들의 충정을 십분 이해한다고 자세를 낮춘 뒤 그분들을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면서 체육회 발전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하는 자세도 흔히 보아온 진흙탕 힘겨루기와는 다른 양상이다. 희망의 근거는 바로 그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실천이다. 양측은 그동안 서너차례 전화를 주고받으며 대화에 의한 타협을 모색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만사 제쳐두고 직접 만나야 한다. 거기서 시시비비를 가릴 것은 가리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며 대타협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무슨 데드라인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올해를 넘기지 말았으면 하는 희망사항도 곁들이고 싶다. 새로운 이민100년이 시작되는 2004년까지 묵은 100년의 숙제를 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2003년이 고작 이틀밖에 안남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달리 보면 올해는 아직도 이틀이나 남아있다. 양측의 대화의지가 진실이라면, 진정 열린 마음으로 대화한다면, 얽힌 것을 풀고 막힌 것을 뚫는 데 전혀 부족하지 않을 넉넉한 시간이다. 상항 한인 체육회발 세밑낭보를 다시한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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