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너리 여행
지난 주 목금토 사흘동안 나파밸리와 소노마카운티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신문에 와인칼럼을 쓰는 최선명 객원기자와 단둘이 떠난 여행. 특별한 계획 없이 갑자기 이루어진 스케줄이라 망설임도 있었고, 분주한 연말에 한가하게 여행이나 다녀올 게재도 사실은 아니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떠나고 보니 몸과 마음이 모두 상쾌한 바람을 한껏 쏘이고 돌아온 기분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와인과 여행과 쇼핑이므로 이 세가지를 모두 합쳐놓은 와이너리 여행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한다. 특별히 와인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경험, 미각을 두루 갖춘 최선명 기자와의 동행은 모든 것을 즐겁고 의미있게 만들어주었다.
나파에는 이번이 세 번째, 파소로블스에도 2박3일 다녀온 적이 있고 산타바바라도 돌아보았으니 유명한 캘리포니아의 와인생산 지역은 어지간히 돌아본 셈이다. 더 바램이 있다면 피노누아가 맛있는 워싱턴과 오레곤의 와이너리들을 한번 가보는 것, 그리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언젠가 프랑스의 보르도와 부르고뉴 지방을 다녀오는 일이다.
여행 첫날은 샴페인으로 유명한 코벨(Korbel) 와이너리의 초청으로 하룻밤 포도원 내에서 유숙했다. 언덕 위에 지어진 아름다운 별장에서 보낸 밤도 특별했지만 엄청난 양의 샴페인 제조과정을 둘러본 것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경험이었다.
이번 여행이 특별 좋았던 것은 예약이 쉽지 않은 와이너리들의 투어를 모두 할 수 있었다는 점. 한인들이 좋아하는 조던(Jordan)에는 작년에 갔다가 허탕 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미리 예약해 하루 한번밖에 없는 두시간짜리 투어를 할 수 있었다. 또한 여름 성수기엔 예약이 넉달까지 밀린다는 오퍼스 원(Opus One) 투어도 했으니 진짜 괜찮았던 것 같다. 그 외에 켄달 잭슨, 마티넬리, 도메인 카네로스 태팅어, 플로라 스프링스에 들러 테이스팅을 했다.
투어를 해보면 와이너리마다 각자 고유한 방법의 와인 제조기술을 자랑하는 것도 인상깊지만 모두들 매우 대단하게 지어놓은 건물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특히 어마어마하게 호화로운 오퍼스 원, 아테사, 조던, 도메인 카네로스, 조셉 펠프스 등에 가보면 돈 따위는 얼마가 들어도 상관 않는다는 듯 각자 원하는 만큼 최고급만을 사용해 맘껏 예술적으로 지어놓은 건물과 실내장식들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그러나 이런 곳들외에 일년에 수만 케이스만 생산하는 자그마한 와이너리들을 방문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 자신들만의 개성을 갖춘 예쁜 테이스팅 룸을 마련하고 방문객들을 맞는데, 그런데서 의외로 훌륭한 와인을 발견하는 것도 아기자기한 기쁨이다.
와인 테이스팅은 조던처럼 무료인 곳에서부터 오퍼스 원처럼 딱 한 잔에 25달러나 받는 못된 곳까지 여러 층이 있지만 대개 5~10달러정도에 4~5 종류의 와인을 조금씩 따라 맛보게 해준다. 생산하는 와인 종류가 많은 곳에서는 대중적인 것과 고급 와인의 시음을 두가지로 정해놓기도 하는데 거기까지 간 바에야 대개는 10달러가 넘는 프리미엄 와인 테이스팅을 택하게 된다. 주의할 것은 주는 대로 다 마시다가는 금방 취한다는 것. 혀에 조금 넣고 굴려서 맛만 음미한 다음 나머지는 과감히 따라버리는 것이 시음의 지혜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흐뭇했던 수확은 조던의 91년산 카버네소비뇽을 한병 사온 것. 이 와인은 91년에 태어난 나의 아들이 21세 되는 생일날 함께 따서 마실 계획이다. 조던의 카버네가 21년의 숙성을 어떻게 기다려줄지 자못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지만 맛이 좀 간들 어떠하랴, 자신과 같은 해에 태어난 와인을 마시는 기분만으로도 충분히 축하할 만 할 것이다.
또 하나 감동스러웠던 것은 여행중 들른 식당들의 훌륭한 음식 맛과 친절한 서비스였다. 특별히 산타로사에 있는 ‘존 애시’(John Ash & Co.) 레스토랑은 깜짝 놀랄 정도로 대단히 업스케일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고 인상깊은 식당이었다. 또한 유럽처럼 아름다운 힐즈버그(Healsburg) 도시를 발견한 것도 놀라웠고, 그곳의 ‘진’(Zin) 식당에서 먹었던 런치, 관광객보다 로컬들이 많이 찾는다는 ‘나파 그릴’과 ‘러더포드 그릴’에서의 정말 흡족한 식사들이 풍성한 추억거리를 남겨주었다.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포도밭 풍경, 예쁜 건물들, 감미로운 와인맛…
와이너리 여행을 할 때면 이렇게 한없이 우아하게만 살수는 없을까 꿈꾸곤 한다. 하지만 다음 순간 무거운 짐을 싸들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지지고 볶는 생활을 꾸려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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