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이 두 사람 중 누가 한국의 평화에 더 위협적일까.
사담 후세인을 체포해 기세 등등한 부시대통령을 보면서 최근 이런 주제를 놓고 한국에서 실시됐던 한 여론조사를 떠올렸다. 이 여론 조사를 접한 첫 감회는 한국이 참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곧바로 뭔가 이성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걱정으로 이어졌다.
한국 평화를 위협하는 대상으로 북한의 김정일위원장과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동렬에 올라 평가받는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다. 한국의 오랜 맹방 미국의 대통령이 어쩌다 그런 여론조사의 주제가 될 정도로 한국사람들로부터 평가절하를 받게 됐는지. 그 사실의 진위여부를 떠나 한국사회의 변화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 여론조사의 결과는 그 충격을 확인까지 시켜준다.
한국갤럽이 전국의 성인 844명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그 질문의 결과는 김정일 42%, 부시 36%, 모름·무응답 20%였다. 응답자의 36%나 부시대통령을 김정일위원장보다 한국평화에 더 위협적인 인물로 생각한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모름·모응답도 따지고 보면 부시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심각성은 더해진다. 비록 김정일위원장이 부시대통령보다 조금 더 많게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건 별로 의미가 없는 최다득표다.
그나마 김정일위원장보다 조금 적게 결과가 나온 것은 40대와 50대가 김정일을 더 위협적인 인물로 꼽은 탓이다. 20대와 30대에서는 부시대통령을 김정일 위원장보다 더 위협적인 인물이라고 답했다. 부시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에 대한 이같은 시각은 ‘미국과 북한 중 어느 나라에 더 호감이 가느냐’는 질문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왕 나온 질문이니 한번 따져보자.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보다 한국 평화에 정말 더 위협적인가. 북한이 미국보다 진짜 더 호감 가는 나라인가. 어쩌면 그런 질문은 한국사람들에게는 매우 곤혹스러운 물음인지도 모른다. 미국은 오랫동안 한국을 도와온 우방이고, 북한은 언젠가 통일되어야 할 동족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하는 질문과 비슷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한국사람들은 미국은 아무리 잘해도 ‘타 민족’이고, 북한은 아무리 못해도 ‘동족’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 마음까지 탓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북한 핵문제로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너무 낭만적으로 보고 있는 한국내 여론이 안타까울 뿐이다.
북한과 미국에 대한 정확한 현실인식이 전제되어야 해법도 정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여론조사는 질문자체가 너무 비현실적이고 의도적이다. 미국이 한반도 평화에 위협적이라는 전제를 미리 깔고 있다. 동족임에도 지금까지 북한이 남한에 한 일은 전쟁위협밖에 없다. 현재까지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나라가 북한이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이 비극적인 현실을 막무가내로 외면하고 있다.
미국은 어떤가. 동족은 아니지만 미국이 남한에 한 기여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물론 자국이익을 위해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경우가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북한과 비교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실재관계마저 거부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젊은 세대다.
남한의 20대와 30대는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해 부시행정부가 보이는 강경 자세를 한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그 실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체포된 사담 후세인의 초라한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욱 굳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혀 틀린 생각은 아닐 것이다. 9.11이라는 전대미문의 테러가 계기였다고는 하지만 부시행정부는 호전적이고 일방적인 외교자세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인들 조차도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한반도 평화에 북한보다 미국이 더 위협적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 북한의 비민주적인 정치 체제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북한주민들의 참상, 그것만으로도 미국과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부시의 이라크전쟁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독재자 후세인의 말로에 대한 동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같은 논리로 부시의 북한 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북한정권에 대한 무비판적인 동조는 없어야 한다..
안병선칼럼<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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