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반년 이상 숨어지내던 이라크의 통치자는 덥수룩한 수염에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마엔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다. 미군에 체포된 사담 후세인을 TV로 볼 때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했다.
머리는 며칠동안 감지 않아 부스스하고, 미군 의료진이 머리털을 후비고 입을 벌려 건강검진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저 사람이 이라크를 24년간 철권통치하던 독재자였던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눈가엔 보일 듯 말 듯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듯 했다. 패장에게도 예의를 갖춰 대우하는 게 동양의 전쟁 철학인데, 미국이 너무 잔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화면이 있었을 터인데, 저항세력의 기를 꺾고, 미국인들에게 통쾌감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화면을 골랐던 것 같다. 이 장면을 두고 바티칸 교황청은 후세인이 소처럼 취급당했다고 비난했다.
체포된 후세인의 모습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체포된 모습을 TV로 본 주변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싸우다가 죽든가, 아니면 자결한 게 낫지 않았는가라는 것이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맞서 싸우던 그가 초라한 늙은이로 생포된 것을 보고 독재자에 대한 적개심은커녕 목숨이 얼마나 질기기에 저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가라는 측은함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꽃은 열흘 이상 피지 않고, 권력은 10년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花無十日紅 權不十年) 10년도 모자라 20년 이상 권력을 휘두른 사람이 얼마나 삶에 연연했기에 공기도 제대로 통하지 않은 좁디좁은 땅속에 생쥐처럼 숨어 목숨을 구걸해야 했을까. 장총을 들어 공중을 향해 쏘아대던 그 기개는 어디로 간 것일까.
후세인을 조금도 동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가 통치하던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었는지 여부를 차치하고,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 독재자였다. 80년부터 8년간 이란과 전쟁을 치렀고, 91년에는 쿠웨이트를 침공, 점령하다가 미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의 반격에 정권만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친척들을 요직에 배치하고, 아들을 친위대 대장으로 임명, 국내를 철권통치했다.
쿠르드족을 화학무기로 대량학살하고, 반대종파와 사위들까지 무차별하게 학살한 그였다. 유엔의 무기사찰단을 추방하고, 국가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미국은 이라크 공격을 정당화하고 있다.
후세인이 도피해 있던 농가 옷장 위에 몇권의 책이 있었다. 아마 그가 도피중에 읽었던 책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었다고 한다. 죄와 징벌에 관한 아랍 저술도 있었다. 그가 도피중에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반성을 했던 것일까. 잡혔을 때 어떤 벌을 받을 것인지를 마음 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던 것일까.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있었지만, 그의 모습은 어쩐지 편안해 보이는 측면도 있었다. 더 이상 도피생활을 포기하고, 미국의 처분에 맡기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지금의 아들 부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두 번의 미국-이라크 전쟁 한가운데 후세인이 있었다. 부자에 걸쳐 미국의 두 대통령은 후세인에 대해 악연 관계를 유지했다.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에게 극형을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전범 재판이 열린다. 그 자리에서 후세인은 자신을 정당화할지 모른다. 반역자를 소탕한 것이지 학살은 아니며, 대량살상무기를 만든 적이 없는데, 미국이 선제 공격을 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쿠웨이트는 역사적으로 이라크 땅이므로 침공한 적이 없다고 우길 것이다.
추한 모습으로 전세계에 얼굴을 드러낸 그는 죽음을 두려워했을수도 있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시간을 얻으려고 했을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의 일방적인 전쟁과 점령을 문제삼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행동으로 세계인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삶은 고귀한 것이며, 죽음의 선택을 강요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후세인에 있어서는 어쩐지 차라리 장열하게 죽었더라면 그를 미워하던 사람들에게서 조그마한 동정을 얻지 않았을까.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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