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모 - 언론인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야심과 야당의 저항이 어떻든, 저 더럽고 구역질나는 권력형 비리와 검은 정치자금의 사슬을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나라가 뒤숭숭하고, 경제가 얼마간 뒷걸음질친다 해도, 입만 벙긋하면 애국애족하면서 음험한 막후에서 돈 다발을 챙겨 이 곳간 저 곳간에 은밀히 숨겨 온 저 정상배들의 덜미를 가차없이 낚아채야 한다.
나는 지금 무슨 혁명논리를 전개하려는 게 아니다. 정치판을 뒤엎어 얄궂은 이념으로 무장한 극좌파에 나라를 넘겨주자 거나, 무늬는 민족주의로 포장하고 속내는 딴판인 반미-친북파들의 세상이 된들 알 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분명히 말하건대 현 집권 세력이든, 이들에 저항하는 비집권 세력이든, 그 배속이 검은 돈 다발로 가득 찬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솎아내고, 우리가 절대 가치로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존중하는 장래가 촉망되는 깨끗한 얼굴들로 새 판을 짜자는 것이다.
나는 지난 칼럼에서 불법 선거자금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거취가 달렸건 말건, 야당이 뿌리 채 뽑히건 말건, 밭을 갈아엎을 수밖에 다른 길이 없음을 주장했다. 그리고 두 가지 방법론을 제시했다. 대통령 쪽은 특별검사가, 야당 쪽은 비록 편파수사 소리를 들을지언정 검찰이 파헤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나의 당초 예언대로 노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동원해 특별검사를 거부했지만 국회가 다시 못을 쳐 꼼짝없이 특검을 받게 된 상태고, 검찰의 한나라당 대선 자금 수사도 신명나게 돌아가고 있음은 일단 잘된 일이다.
이 두 갈래 수사로 드러날 결과에 대해 직접 범법자들이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함은 물론이려니와 그들 뒤에 몸을 감춘 배후 세력들도 응징을 받아야함 또한 당연하다. 검은 돈을 전달한 조무래기 심부름꾼이나 잡아 가두고, 그 배후에 버티고 있는 진짜 거물도둑을 그냥 지나친다면 말짱 정치 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기왕지사 여기까지 왔다면, 다시 말해서 ‘돈 배’로 빵빵해진 그 기름진 복부에 칼을 대기로 했다면, 철저하게 그리고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썩은 고름을 뽑아내고 득실거리는 균에 오염된 장기, 그 게 큰놈이든 작은놈이든 몽땅 잘라내자는 게 나의 주장이다.
한데,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은 4당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상한 소리를 던졌다. 만약 (검찰수사에서) 나의 불법 선거자금이 한나라당의 ‘십분의 일’ 이상 드러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속내를 헤아리느라 정치권은 이것저것 짚어보고들 있는 모양이지만 어렵게 생각할 게 뭐가 있겠는가. ‘작은 암 덩어리’는 봐 달라는 소리 아닌가. 수하의 법무장관, 미모와 담력까지 갖춘 여성 법무장관 보고대로라면 한나라당이 10개를 해 먹었다면, 자신(노 캠프)은 그 10분의1보다 적은 액수만 나오게 돼 있으므로 배수진을 친 것은 아닐까. 어차피 이쪽 저쪽 다 해먹은 판에 그래도 덜 먹은 쪽이 욕을 덜 먹지 않겠느냐는 계산을 한 건 아닌지.
아닌 게 아니라 지금 한국민들은 검찰이 들춰낸 한나라당의 불법 선거자금 진상을 전해 듣고 분노에 떨고 있다. 액수도 이만 저만이 아닌데다 모금 수법이 범죄조직인 마피아 뺨칠 정도라는 데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돈 상자를 가득 실은 트럭을 몰고 갔다니 이 게 도대체 가당한 짓인가. 입이 열 개인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불법이요 파렴치가 아닌가. 그런고로 그 짓거리에 관계된 한나라당의 책임자들은 모두 쇠고랑을 차야 마땅하다는데 누가 이의를 제기할 건가.
아마도 노무현 캠프 쪽은 그 점을 노렸을 것이다. 하면, 그 쪽은 백로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야당 쪽이 씨근대며 주장하는 검찰의 편파수사는 일단 뒤로 제쳐놓자. 검찰이 허튼 수작을 할 때면 측근비리 특검 말고 노무현 캠프 선거자금 특검을 실시할 공산이 큰 만큼 검찰 손가락질은 일단 뒤로 미루자. 문제는 지금 검찰이 찔끔찔끔 흘리는 내용만으로도 사태는 보통 심각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노무현 후보를 청와대로 보낸 공신중 공신인 최측근 5명이 비리로 쇠고랑을 차고 또 민주당이 선거 때 챙겨간 돈도 만만한 액수가 아니라는 혐의가 짙다. 노무현식 계산법대로 야당의 10분의1이 채 못된다 치더라도, 자기들은 그냥 넘어갈 것으로 기대한다면 그건 대 착오다.
사실 더 큰 문제가 노무현 대통령 쪽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성의 잣대다. 국가의 최고 통치자라는 그의 입지는 비록 야당보다는 덜 돈을 긁어갔다 하더라도 책임은 몇 배 더 혹독할 수밖에 없다. 액수의 과다가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뿐더러 노 대통령에게 던져진 의혹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천신만고 끝에 정상을 거머쥔 직후 ‘당선 사례비’로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을 받았다는 야당의 의혹 제기가 그것이다.
이미 검찰이 밝혀낸 SK의 11억원이 노 대통령 아들 결혼 축의금조로 건넨 당선 사례금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지 않았던가. 부산지역 상공인들이 300억을 건넸다는 의혹은 또 무언가. 만약 이 가운데 어느 한 케이스라도 사실로 드러날 경우 설혹 야당이 긁어모은 불법 정치자금의 10분의1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책임의 두께는 그 몇 백배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통치자의 윤리성은 그처럼 엄격한 법이다. ‘대통령 못해먹겠다’느니, ‘여차하면 물러나겠다’는 그의 잦은 발설이 말의 씨앗이 되는 건 아닌 지, 신중치 못한 대통령의 말이 나라를 들썩이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