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이 체포되었다는 뉴스는 참으로 뜻밖의 낭보였다.
이라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미국은 물론이고 세상사가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잘 되는 일이라곤 없는 요즘같은 때에 어딘가 막힌 곳이 확 뚫린 듯한 시원함을 느끼게 한 뉴스였다. 마치 모든 일이 안되는 책임을 뒤집어 쓰고 있는 사람이 잡혔다는 기분 마저 들었다. 보통사람의 마음이 이러하니 미국과 부시대통령에게는 얼마나 큰 호재였을까.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 치고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잡힌 사담 후세인의 모습은 너무도 참담했다. 혼자의 몸을 가누기도 힘들 만큼 좁은 토굴 속에 숨어있다가 풀려나온 그는 사람의 형상을 닮은 짐승 같았다. 쭈글쭈글하게 늙은 얼굴에 수염이 길고 머리가 헝클어진 초췌한 모습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홈리스를 연상케 했다.
그가 동물처럼 신체검사를 받는 화면을 TV에서 본 사람은 그가 어떻게 저렇게까지 추락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대통령 시절 군복 차림으로 군중을 향해 미소짓고 손짓하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담만이 이렇게 비참하게 된 것이 아니다. 그가 이끌던 이라크는 미군의 점령 아래 들어갔고 그를 떠받들고 충성하던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몰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도 저주와 핍박의 대상이 되어 뿔뿔히 흩어졌다. 그로 인한 전쟁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고 불행하게 됐다.
이런 사태의 책임이 모두 사담에게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사담도 억울한 점이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테러 위험국, 전쟁 위험국으로 지목하여 전쟁을 일으켰으나 이라크가 제대로 전쟁다운 전쟁도 못 해보고 패전했고, 전쟁중 테러나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아직까지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지 못한 점으로 볼 때 이라크는 애초부터 전쟁을 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미국의 공격을 받아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사담 후세인이 오래동안 미국의 눈밖에 나서 쌓이고 쌓인 불신과 불만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담의 죄가 있다면 미국의 이러한 불신과 불만을 해소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미국의 불신을 해소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미국에 사사건건 맞서 더욱 불신을 크게 키웠다. 미국에 대항하여 큰소리를 치는 것이 이라크의 위신을 살리고 자신을 아랍세계의 지도자로 부각시킨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사찰하겠다고 하자 그는 큰소리를 치면서 맞서서 오히여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
오랜기간 동안 미국과 실랑이를 하는 동안 그는 자신과 이라크를 위기에서 구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리석게도 이라크와 자신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사람이 한평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어떤 이는 부자로 사는 것을 최고로 치고, 어떤 이는 권력을 누리며 사는 것을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부나 권력을 평생동안 누리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그래서 생겨났다. 그렇다면 인생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살 수 있을 때 인생을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기와 함께 인생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때 그 인생이 잘 살고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삶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에 보탬이 되는 삶이야말로 정말로 잘 살고 있는 인생이라는 말이다.
사담 후세인이 역사에 독재자나 전범으로 기록될 수도 있고 아랍세계의 영웅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후세에 어떤 인물로 평가를 받든 간에 그의 인생은 철저하게 실패한 인생일 뿐이다. 그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나라를 파멸시켰고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권력과 부를 한손에 주물러 왔던 그의 인생을 지금 그 누가 부러워 하겠는가. 그의 체포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상념을 떨칠 수 없다.
이기영(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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