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현 편집위원
생포된 사담 후세인은 부시의 재선에 결정적인 ‘원군’이 될 수 있다. 후세인 생포는 ‘역사의 종언’까지는 아니더라도 ‘암흑기의 종식’으로 불릴 만하다. 당장 밝은 세상이 펼쳐져서가 아니라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의혹과 불신, 갈등, 알력을 씻어낼 수 있는 기회란 점에서 그렇다.
부시가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귀가 따갑게 반복하던 대량살상무기 보유 주장에 대해 지금껏 미국민과 국제사회가 훌훌 털어 내지 못한 의구심을 풀 수 있는 호기다. 미군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 저항세력에 대한 정보도 파악해 딸, 아들, 아내, 남편, 아빠, 엄마를 ‘사지’로 보낸 가족들에 위안을 줄 수 있다. 후세인의 협조가 관건이지만 잘만 되면 표가 넝쿨째 굴러 들어올 지 모른다.
여론 악화를 우려해 전사자 장례식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부시에게 후세인 생포는 낭보 중 낭보다. 지난 대선 때 거액의 선거자금을 대준 ‘큰 손’들에게는 일일이 감사의 친필서한을 보내면서도 이라크에서 사망한 전사자 가족에게는 동일한 인쇄문구가 적힌 엽서를 보내 몰인정하다는 핀잔을 듣고 있는 부시에겐 후세인 생포보다 더 좋은 국면전환 카드는 없을 게다.
또한 후세인 생포는 이라크를 독재에서 구한다는 부시의 구호가 이라크 지배 속셈을 위장한 것이라는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다. 당분간 자살테러가 지속되겠지만 점차 수그러들면서 치안이 확보되면 철군을 시작해야 한다. 상당수 이라크 주민들에게 점령군으로 비쳐졌던 미군이 ‘사심 없는’ 해방군으로 인식되도록 할 수 있다. 미군이 외국에 나가서 좋은 평판을 듣는다면 미국 유권자들도 덩달아 흡족해할 것이다.
후세인 생포는 제보의 결정력을 입증했다. 후세인의 복귀와 보복을 두려워해 몸조심 입조심 하던 이라크 주민들이 반미 저항세력이나 테러조직에 대한 제보자 역할을 할 수 있다. 폭력이 감소하고 사회가 안정되면 이라크에서 부시의 인기가 올라갈 것이다. 이라크에서 ‘잘 나가는’ 부시를 미국민이 홀대할 리 만무다.
대세가 기울었다는 판단에선지 시아파 종교 지도자가 이라크 주민들에 의한 총선을 고수하다가 유엔 관리아래 치러지는 선거라면 간선이라도 용인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후세인 생포를 ‘독재자에 대한 국민의 심판’으로 연결해 이라크 민심을 다독이고 종파간 갈등을 봉합하며 이라크 민주화의 걸음마를 돕는다면,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켜 중동불안을 조장했다는 ‘반 부시’의 공세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후세인에 대한 전범재판은 국제적 이슈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라크 전범재판소가 최근 구성됐지만 제 기능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렇다고 미국이 전담하거나 깊숙이 개입한다면 정치적 목적에 악용한다는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유엔이 주선하고 국제사회와 이라크가 공동 참여하는 재판이 돼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공개적으로 해 이라크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재판 진행과정과 내용을 소상히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시는 정의를 구현한 인물로 부각되면서 한결 유리한 대선 고지에 서게 된다.
후세인 생포는 일방주의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아온 부시가 미국의 국력에 걸맞는 ‘대형’의 이미지를 되찾을 계제다. 후세인 없는 이라크는 재건의 삽질을 기다리고 있다. 전쟁을 전후해서는 그 명분을 둘러싼 논란 때문에 서방세계에 분열이 일었지만 이라크 재건에서까지 ‘내 편’ ‘네 편’을 가려 유익할 게 없다.
인명 피해를 감수하지 않은 파병 반대 국가들은 떡고물 남는 재건사업에 끼일 자격이 없다고 하지만, 이들은 인명 피해가 두려워서 전쟁에 불참한 게 아니라 부시의 명분에 동의하지 않아서 그렇게 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앞으로 여러 사안에서 공조해야 할 독일,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 등 강대국이다. 공과 따지기보다 이들을 아우르는 리더십이 재선에 플러스가 될 것이다. 그래도 불편한 심기가 풀리지 않으면 이들에게 ‘치안 위험지역 파병’을 조건으로 참여를 허용할 수 있다.
부시가 국제사회에서 진정으로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면 국내에서 지도자 자리를 굳히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일 것이다. 하지만 후세인 생포를 재선 밑거름으로 활용할 지 여부는 전적으로 부시 자신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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