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세철 논설실장
America is at war(미국은 전쟁 중이다)-. 마치 표어라도 대하는 느낌이다. 하도 많이 들어와서다.
몇 년 전이었던가. 일본 언론이 한해를 정리하는 한자어로 ‘전’(戰)자를 선정했던 게. 2003년 미국을 정리하는 한자어를 선정한다면 그 답은 역시 ‘戰’자가 아닐까 싶다. 매일같이 들리는 단어가 ‘war’이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 매일같이 미군병사들이 죽어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상황도 어려워지고 있다. 분명히 미국은 전쟁 중이다. 테러전쟁이다.
미국은 40-40-20의 나라였다. 이제는 45-45-10의 나라다. 양극화 된 미국을 타임지가 숫자로 표시한 것이다. 미국의 유권층을 공화-민주-무소속으로 나눈 비율이다.
무엇이 이 같은 양극화를 가져왔을까. 문화전쟁(culture war)이다. 가치관을 둘러 싼 싸움, 보수와 진보, 진보와 보수간의 전쟁 말이다.
미국은 전쟁 중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여전히 테러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문화전쟁의 와중에 있다. 그리고 또 한차례의 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전쟁은 대권전쟁(presidential war)이다. 이 전쟁을 앞두고 미국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 정확히 반반씩 나뉘어 첨예한 대립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는 거다.
문화전쟁은 사실 해묵은 전쟁이다.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전쟁으로, 한 세대전의 문화전쟁은 진보 측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그 결과 진보 측은 모든 문제에서 도덕적 우위를 점하게 됐다.
마침내 보수 측이 롤백 작전에 나섰다. 전쟁이 재발된 것. 그 싸움은 기성언론과 사회 아젠다를 장악한 진보에 대한 보수의 도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00년 현재 그 싸움은 한마디로 백중세였다. 사실상 무승부로 끝난 부시-고어의 대회전이 바로 그 결과다. 그리고 3년. 문화전쟁은 백중세 속에 다소나마 보수 우위로 기울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온라인을 장악한 보수 측의 대 반격이 주효하고 있어서다. 상황은 이제 ‘보수 측의 집요한 공격에, 진보 측의 힘든 수성’의 형국이다. 동성애자 결혼권 등 주요 사회 아젠다가 미해결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문화전쟁의 궁극 귀착점은 대권전쟁이다. 가치관 싸움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러므로 대권전쟁의 대세는 아무래도 보수 쪽이다. 게다가 주요 경제지표가 일제히 청신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부시의 재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미국은 양극화 돼 있다. 그러나 해외정책에 있어서는 양극화의 극점(極點)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다. 신보수주의 논객으로 유명한 로버트 케이건의 지적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논점은 뭘까. 2004년의 대권전쟁을 결정지을지 모를 요소가 해외정책이다. 이 부문에 있어서는 그렇지만 문화전쟁과 같은 양극화의 대립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선두주자는 하워드 딘이다. 그는 선명한 진보파다. 그렇지만 그를 과거 월남전을 반대한 맥거번과 비교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아이젠하워의 미온적 대소련 정책을 공격한 케네디와 비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해외정책의 목표와 프레임은 긴 숙성기간을 통해 짜여진다. 미사일방어체제, 대이라크, 대북한 강경정책. 그리고 선제공격론. 부시 해외정책의 골자다. 이게 하루 아침 이루어진 게 아니다.
재야시절이라는 8년의 광야기에 공화당계 브레인들이 총동원 돼 집중 연구검토를 한 결과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달리 보면 공화당 유권자의 무게 중심의 이동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케이건 등의 지적은 바로 이 점을 유념한 것이다. 민주당은 부시의 테러전쟁을 비판하고 있지만 포괄적 정책대안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해외정책 대결에 있어 양극화 현상은 없다는 것.
결론은 이렇다. 2004년 대권전쟁의 대 변수는 해외정책이다. 그렇지만 현 미국의 해외정책은 선거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큰 변화가 없다. 이는 다시 말하면 아무래도 부시가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관련해 한 관측통은 이런 지적을 하고 있다.칼 로브가 노리고 있는 건 지난번 대선에서 얻지 못한 것이다. 국민적 위임(mandate)이다.
왜 국민적 위임을 노리는 걸까. 오랜 문화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다. 또 있다. 테러전쟁 승리다. 그런데 그 연장선상에는 북한 핵으로 대변되는 한반도 문제도 가로 놓여 있는 것이다.
전쟁 중인 미국을 주목해 보아야 할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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