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치몬트 빌리지는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한 작은 유럽. 불과 2블록도 되지 않는 거리에 레스토랑, 카페, 부티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참 예쁘장하다. 불현듯 유럽의 하늘 아래가 그리워질 때면 라치몬트 빌리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이드워크 카페에 앉아 쓰디쓴 커피를 홀짝이다 보면 가슴이 울컹 하던 회색 하늘에 대한 그리움도 어느덧 달래지기 때문이다.
그 라치몬트 빌리지의 여러 레스토랑 가운데 유난히 친근하고 부담 없는 곳이 바로 라 보테가 마리노(La Bottega Marino)이다. 이 레스토랑이 라치몬트 빌리지에 출현한 것은 2년 반 전이지만 마리노 가(家)가 LA의 레스토랑 업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멜로즈 길의 마리노(Marino) 레스토랑을 비롯해 웨스트 LA 지역의 라 보테가를 운영했던 그들은 라치몬트 빌리지의 요 코딱지만 한 레스토랑에서 보다 친근하게 이 지역 이웃들을 만나게 된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살바토레, 마리오 등 전형적인 이태리 남자의 이름을 가진 마리노 가의 아들들은 서글서글한 눈매가 매력적인 나폴리탄들. 전주 하면 비빔밥인 것처럼 나폴리 하면 파스타다. 나폴리에서 파스타 요리가 발달하게 된 원인이 뭐 그리 자랑스러울 건 없다. 지지리도 가난해서 고기나 생선 요리를 해 먹을 만큼 생활에 여유가 없던 남부 이태리인들은 값싸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파스타 요리를 발전시키게 된 것. 다시 말해 파스타는 쌀 팔을 돈이 없던 시대에 국물 잔뜩 넣고 감자 송송 썰어 넣어 끓인 수제비처럼 일종의 구황식품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이태리 식당에서 파스타를 먹으며 누가 이런 아픈 역사를 짐작이나 할까.
라치몬트 라 보테가 마리노의 경영을 맡고 있는 살바토레는 마리노 식 파스타에 대한 자부가 대단하다. 우리가 나폴리 출신 아닙니까? 어린 시절부터 김치를 먹으며 살아온 우리는 쉰 김치, 갓 익은 김치의 맛을 구별할 줄 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포크에 돌돌 말아 파스타를 먹으며 자라온 그들인지라 파스타 하나만은 자신 있다는 얘기다.
야채 전채요리(Antipasto Vegetariano)는 라 보테가의 자랑거리.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비니거, 약간의 허브와 소금, 후추만으로 볶거나 굽고 양념에 재어놓은 가지, 피망, 당근 등 색깔도 고운 야채들은 담백하면서도 야채 본연의 향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건강식. 야채 요리도 이쯤 되면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모두 내려놓고 포크가 자주 갈 텐데. 어떻게 볶았기에 이렇게 입에서 살살 녹나 오래 씹고 혀에 한참을 올려놔 봐도 영 짐작할 수가 없다. 다른 집에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메뉴로 적극 추천한다.
파스타 종류는 다른 이태리 식당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다. 단 국수가 이태리에서처럼 약간 설익은 알 덴테(Al Dente)는 아닌데 그렇다고 풀어진 정도는 아니다. 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 가운데 하나인 해물 파스타(Linguine Pescatore)에는 새우와 꼴뚜기, 조개, 홍합이 골고루 들어갔다.
계란과 양파, 베이컨으로 맛을 낸 스파게티 카보나라(Spaghetti Carbonara)는 조금 느끼한 것도 마다하지 않는 당신이라면 주문해 볼 만 하다. 포치니 버섯을 썰어 넣은 리조또(Risotto Al Funghi Porcini)는 버섯의 담백한 맛이 은은하게 전해져 온다. 가장 심플한 마리나라 소스에 무친 라비올리(Raviloi Marinara)는 직접 빚은 만두 반죽과 안을 채운 치즈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유럽 사대주의일까. 샌드위치라는 이름이 ‘상드위치’ 또는 ‘파니니’라는 이름으로 바뀌면 맛도 달라지는 느낌이니. 아니 이름 때문만은 아닐 터이다. 직접 구운 고소한 빵에 디종 머스터드와 올리브 오일을 바른 후 잘 익어 달콤한 맛이 나는 토마토, 프로슈또, 모짜렐라 치즈 등 그냥 먹어도 맛있는 재료들을 끼워 넣으니 맛이 없을 수가 있나. 차가운 야채 샌드위치(Panini Vegetariano)와 뜨거운 가지 샌드위치(Panini Eggplant Parmigiana)는 부담 없는 점심 메뉴로 그만이다.
이태리에서 직수입한 올리브오일, 파스타, 소스를 진열하고 있는 식료품점도 겸하고 있는 라 보테가에는 유난히 이태리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이태리어에 귀를 쫑긋 세운다. 영화, ‘대부’의 주인공들처럼 손끝을 모아 위로 치켜들며 몰또 부오노(Molto buono)라는 표현을 반복하는 걸 보니 이 집 음식이 여간 맘에 든 게 아닌 것 같다. 여러 가지 전채 요리와 일부 파스타는 미리 만들어 반찬 가게처럼 진열해 놓고 판매도 하고 있어 퇴근 길 이태리 주부들이 자주 찾고 있다.
<박지윤 객원기자>
종류: 나폴리 지방의 이태리 음식. 오픈 시간: 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10시30분. 일요일은 오전 9시-오후 9시. 가격: 전채는 2달러50-10달러. 메인 디쉬와 파스타는 8-13달러. 샌드위치(파니니)는 8-9달러. 주차: 스트릿 파킹. 주소: 203 N. Larchmont Bl. Los Angeles CA 90004. 한인 타운에서 3rd St.을 타고 서쪽으로 가다가 Larchmont Bl.를 만나 우회전해 올라가다 보면 Starbucks Coffee 건너편에 있다. 전화, (323) 962-1325. 웨스트 LA 지점 11363 Santa Monica Bl. Los Angeles CA 90025. 전화, (310) 477-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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