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권이라고 밝힌 독자분이 친구자랑 편지를 보내주셨다.
결코 예사롭지 않은 풀타임 주부인 제 친구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17년전 유학시절부터 알뜰한 살림솜씨와 요리실력으로 다른 유학생 아내들의 기를 죽였던 미시즈 박인데요, 신참내기 주부였을 때도 여러번 놀랐지만 지난 주말 이사한 집으로 초대받아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갈비찜에 갖은 반찬, 아구찜에 돼지족발까지 준비했습니다. 한술 더 떠서 하는 말, ‘이건 패스트푸드 수준입니다’ 하는게 아니겠어요.
이만 해도 기가 팍 죽는데 얼마전엔 손님을 150명도 넘게 치르면서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그 많은 음식을 다 준비했다니 대단한 주부가 아닌지요. 오늘 저의 점심은 미시즈 박이 바리바리 싸준 음식을 가지고 와서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렇게 친구들의 기를 자꾸 죽이는 ‘나쁜’ 사람은 꼭 밝혀내어 신문지상에 대문짝만하게 발표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 벼르고 별러 그녀를 찾아갔다.
풀러튼의 박현숙씨(41).
새로 이사가서 인테리어와 조경까지 직접 다 했다는 널찍한 집에 들어가니 벌써 식탁 가득히 요리가 한 상 차려져 있다. 김치와 오이소박이 빼고도 14가지 요리를 차려냈으니,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말을 이런 때 안 쓰면 언제 쓰겠나.
아구찜, 돼지편육, 갈비찜, 게장, 어리굴젓, 잡채, 명태코다리, 취나물, 오징어채볶음, 멸치꽈리고추볶음, 깐풍돼지고기, 오징어초무침, 버섯볶음, 홍합찜...
김치와 오이소박이는 기본이고 어리굴젓, 게장까지 모든 요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단다. 이러니 친구들의 부러움과 원망을 동시에 살만도 하지.
왜 그렇게 열심히 요리를 하는걸까?
사람 만나길 좋아해서요. 남편도, 저도,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 갖는걸 워낙 좋아해요. 불러다 놓고 그냥 보낼 순 없잖아요. 자꾸 뭐해서 먹고, 때 되면 또 불러모으고, 그렇게 됐죠 뭐
그러다보니 손님 잘 치르기로 소문이 자자해 주위 친지들 사이에 아주 맡아놓고 모이는 집이 됐다고 한다. 동창들, 교회 교우들, 이곳 저곳에서 사귀는 사람들이 모일 일만 있으면 으레 박씨네 집을 찾는다는 것.
가볍게 차릴 때 열두어가지 요리를 낸다는데, 이렇게 손님상 차리는 일이 한달에 적으면 한두번, 지난 11월중순 취재 갔을 때는 네 번째라고 했다.
이렇게 저렇게 손님 청할 일이 잦은 연말연시. 베테런 파티플래너 박현숙씨의 상차림 노하우를 들어보자.
<글·사진 정숙희 기자>
우선 손님을 청하여 날짜가 정해지면 박현숙씨는 메뉴 짜기에 들어간다. 일정에 맞춰 요리계획을 세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메뉴 선정은 순전히 박씨 마음. 요즘 내가 뭐가 먹고 싶은가를 생각해보고 거기에 따라 음식을 정한다.
그 다음에는 날짜를 적어놓고 체크업하면서 미리 해놓을 것들을 준비한다.
준비는 보통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다. 미리 준비만 잘 해놓으면 실제 당일날 요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장 힘든 부분은 장보러 다니는 일. 한번 손님상 차릴 때 적게는 세 번, 많을 때는 4~5회도 다녀오곤 한다. 미국마켓(주로 코스코Costco를 간다),
한국마켓 따로 가는 일은 당연하지만 그 외에도 야채는 미리 사다 놓으면 안 되기 때문에 바로 전날이나 당일날 가야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손님상 차릴 때는 미나리가 좋지 않아 세군데나 돌아다녀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상차림에 사용되는 모든 음식 재료를 매번 그때마다 사는 것은 아니다.
생선이나 굴, 게 같은 것은 신선하고 물 좋은 것이 나올 때 많이 사다 냉동고에 넣어두곤 한다. 이외에도 자주 해먹는 음식은 좋은 재료가 나왔을 때 미리 사둔다고 박씨는 귀뜸했다.
재료가 왠만큼 준비됐으면 사흘전부터 요리를 시작한다. 굴젓과 게장이 가장 먼저 하는 음식. 간이 배고 삭혀야하기 때문이다. 굴은 씻어서 체에 받쳐 물기를 뺀 다음 채 썬 양파, 매운 청·홍 고추, 맛술, 마늘, 소금,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둔다. 참기름과 통깨는 꺼내서 먹을 때 뿌려낸다.
게장도 같은 원리로 담그는데 굴젓 양념과 다른 것은 물엿과 설탕을 더 넣고 간는 소금이 아닌 간장으로 한다.
이틀 전에 하는 것은 돼지편육과 북어(명태코다리)찜. 돼지편육은 냉장고에서 굳혀야하기 때문이고 북어는 미리 양념에 재우기 때문이다.
오징어초무침도 하루이틀전 준비한다. 오징어는 씻어 물기를 빼고 소금에 절였다가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섞은 초장에 무친다.
D 데이 하루전 갈비를 양념에 재우고, 돼지고기도 생강즙 조금 넣고 마늘가루, 간장, 후추에 재워 밑간하여 재워둔다.
손님초대 날. 나머지 요리들을 모두 차근차근 준비한다. 볶음과 나물, 깐풍돼지고기, 아구찜, 잡채, 홍합찜을 이날 다 하는 것이다.
우선 미리 해놓아도 괜찮은 멸치고추볶음, 버섯볶음, 오징어채볶음, 취나물을 요리하고 갈비찜, 깐풍돼지고기, 홍합찜을 한 다음 맨 나중에 아구찜을 한다. 아구찜은 미리 하면 콩나물이 숨이 죽기 때문이다.
갈비찜은 양념해놓은 것을 무, 당근, 표고버섯, 밤을 넣고 찜한다. 밑간한 돼지고기는 달걀 푼 것과 감자가루룰 묻혀 기름에 튀긴 다음 소스(간장, 식초, 설탕 끓인 것)에 버무린다.
홍합찜은 먼저 홍합 삶은 것을 똥 빼고 꼭 짜서 프로세서에 간 다음 아주 곱게 다진 양파, 셀러리, 오이(야채는 프로세서에 갈면 물이 생기므로 손으로 다진다)와 섞어 소금 후추 간 하고 마요네즈에 버무린다.
마사고 알을 믹스하여 색을 낸 다음 홍합 껍질에 채워넣고 위에 파를 썰어 올리고 350도 오븐에서 5분 정도 구워낸다.
아구찜은 미더덕은 소금에 하루 재워놨다가 콩나물, 미나리, 파를 넣고 멸치다시국물에서 고춧가루로 간하여 요리한다.
자, 다 됐네. 그러니까 이 모든 과정이 박씨는 어렵거나 귀찮지 않고 오히려 즐겁고 신난다는 말이지. 사람 좋아해서 요리도 좋아한다는 그녀의 짧은 한마디는 사랑이 있으면 요리도 즐겁다는, 요리뿐 아니라 무엇을 해도 신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담고 있었다.
이렇게 차리는데 얼마나 들까? 이날 함께 식사한 사람은 어른 10명, 아이들 8명. 박씨는 어림잡아 300달러는 잡아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음식이 많이 남았다. 잔치집에는 가는 사람 싸주는 인정도 있어야하니까.
<정숙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