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혁/새크릿 하트대 교수
한국에서 야당들이 의결한 특검법을 대통령이 비토하였다고 원내 다수당의 대표가 ‘나라를 구하겠습니다’라는 구호를 벽에 걸고 단식투쟁을 하는 사진을 보면서 혼란을 느꼈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지 않았다는 것 외에는 한국의 노동투쟁 등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야당대표 한 사람이 국회의 기능을 실질적으로 볼모로 잡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것이다.
법을 제정하는 기관에서까지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런 식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국회가 결정한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할 수 있고 그럴 경우 국회는 재의를 통해 3분의2의 표결로 다시 결의하면 대통령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도록 법으로 명백히 규정되어 있다. 이 제도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권력의 분립과 견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고유권한인 거부권을 가끔 행사하며 이로 인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전혀 없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여당이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국회의 다수당이 되었기에 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법에 규정되어 있는 대로 권한을 행사하면 국회도 이에 따라 문제를 처리하면 될텐데 그렇게 상식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다.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규정과 절차를 통한 제도적 방법과 사람의 판단과 결정에 의존하는 인간적 방법이 있다. 인간적인 방법은 빨리 그리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융통성 있게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으로는 당사자의 주관적 판단에 영향을 받으며 정실에 흐르기 쉽고 감정적 대립으로 치달을 확률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제도적 방법의 장점은 체계적이고, 이성적 판단과 예측이 가능한 것이며 단점으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며 형식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될 때는 인간적 방법이 효율적이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양자가 원만한 합의를 볼 수 있다면 경찰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서로 삿대질하며 목청을 높이는 것보다는 경찰이 와서 사건 경위서를 작성하고 각자의 보험회사가 책임의 소재를 가려 해결하는 제도적 방법이 낫다.
물론 규정이 공정하여야 하며 투명하여야 한다는 전제가 제도적 방법을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필수조건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인간적 방법으로, 미국에서는 제도적 방법으로 일을 해결해 나간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인간적 해결을 위해 인화와 화해란 말이 자주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원만한 인간관계의 회복이 문제해결에 우선하므로 폭탄주가 위력을 발휘한다. 또한 기업들이 엄연히 불법인 줄 알지만 비자금을 조성하여 정치인들에게 제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에서는 제도적 처리를 위해 문서화하는 것과 제도화가 중요하다. 그리고 지속적 개선을 통해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며 발전시켜 나간다.
지난 99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절차를 거쳤던 일과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승패가 뒤바뀔 수 있는 절박한 상황 속에 벌어진 플로리다 재개표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던가 생각해 보자. 한번의 농성, 단식투쟁 혹은 장외 투쟁 없이 제도적으로 처리되었다. 9.11사태 이후 중앙정보국과 연방수사국 책임자를 포함하여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 고위공무원은 아무도 없다. 그보다는 그런 일이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지 제도적 보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런 일들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진행되었을 것인가는 자명하다. 내게 편리할 때는 법대로 혹은 원칙대로 라는 제도적 처리방법을 주장하다가 불리하다 싶으며 인간적 방법으로 선회하기에 문제의 해결이 힘들다.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 해당 장관 내지 국무총리가 도의적 책임이란 명분으로 책임추궁을 당하며 사임을 강요받는다. 그러니 제도적 개선은 뒷전이고 사람을 바꾸어 해결하고자 하다가 정작 사후대책은 미봉책으로 끝나고 만다.
한국에서는 안 되는 게 없으며 또한 되는 게 없는 역설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는 안 되는 것은 안되고 될 것은 되는 제도적 해결책을 조금씩이라도 도입하여 각계 각층의 상이한 이해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처리되어 가는 성숙한 사회로 발전하여야 한다. 미주 내 한인회, 교회, 그리고 각 단체들도 한국의 인간적 문제해결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마치 전통을 지켜나가는 양하는 모습에서 점차 벗어나 제도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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