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열정이 차고도 넘칠 때가 분명 있었다. 세월이라는 희한한 존재는 빨갛게 타오르던 그 열정의 색을 바래게 한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한상우(58, 사진작가)씨처럼 뜨거운 가슴은 세월에 의해 퇴색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지난 2월부터 10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샌디에고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650마일을 몇 차례씩 오가며 캘리포니아의 21개 미션 전부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내셔널 지오그래피에 사진을 기고하지 않으면서도 촬영하고 싶은 대상을 찾아 열정을 불사르는 로버트 킨케이드였다. 한 번만의 촬영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같은 장소를 3-4차례 찾기도 했다. 가능하면 다른 계절, 다른 시간의 햇살에 비친 다양한 미션의 이미지를 담고자 노력했다. 그간 그가 찍은 이미지는 슬라이드 필름으로 2,000 커트, 700MB 사이즈 CD 120장을 넘는 방대한 양이다.
지난주에는 샌프란시스코 미션의 보충 촬영을 위해 또 길을 나섰다. 낯선 곳에서 맞는 밤이 이제 오히려 익숙하다. 가끔씩 동료 사진작가들과 동행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밤하늘의 별들이 유일하게 대화를 나누는 대상이다. 미션을 카메라에 담으며 그는 철저히 혼자가 돼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남들 다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나이에 웬 바람이 분걸까. 동아통신 미주 특파원으로 1977년에 도미한 그는 주부생활 사진 기자, New Life 편집장으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렸다. 지난 해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며 그에게는 시간이 마냥 남아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평생 꼭 한 번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캘리포니아 미션 촬영은 그렇게 시작됐다.
역사가 살아 숨쉬는 미션으로의 오디세이를 통해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 원주민들의 아픈 역사와 초창기 신부들의 힘겨웠던 삶의 흔적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미션의 건립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원주민들. 벽돌과 기와를 굽고 실내의 문양을 그려 넣은 그들은 자신들의 이미지와 꼭 같은 예수 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들을 꼭 빼다 박은 예수와 마리아 상은 투박하고 원시적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실한 아름다움을 안고 있다.
때로 마을과 외딴 곳에 위치한 미션을 찾아가느라 애를 먹기도 했지만 대개는 Mission Bl. 또는 Mission Rd.만 찾아가면 돼 큰 문제는 없었다.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빛이 인색한 것이 미션. 이런 열악한 환경에 플래시라이트와 삼각대를 금지한 곳이 많아 촬영은 많은 애를 먹었다. 같은 장면을 수없이 반복해 셔터를 누르며 그의 수도는 이미 미션을 설립했던 수도사의 경지에 이른다.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위해 샌디에고 미션의 교우들이 밝힌 촛불의 영롱한 빛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불빛에 비춰진 벽화, 아들의 주검을 안은 마리아의 처절한 표정, 길다란 주랑과 수줍게 나무에 가려진 동상을 추억하는 그의 가슴은 비가 내리지 않아도 촉촉이 젖어든다. 샌안토니오 미션의 정원에 익어있던 터질 것 같은 석류, 샌타클라라 미션 뜰에 핀 화사한 빛깔의 장미, 라 푸리즈마 미션을 따라 펼쳐지는 낮은 담벼락, 화려한 색깔의 나비가 살포시 내려앉은 카피스트라노 미션의 수련. 사랑이라는 필터를 통해 바라본 그의 미션은 실제보다 훨씬 화사하고 따뜻하게 인화되었다.
그 많은 이미지를 담았는데 왜 책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 없겠는가. 조만간 전시회도 책 출판도 할 계획이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10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캘리포니아 미션을 찍는 과정은 있는 그대로 기쁨이었다. 이담에 행복한 가정의 벽에 걸릴 수 있는 작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것이 그의 소박한 소망일 뿐이다.
캘리포니아의 역사는 미션과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캘리포니아 주의 El Camino Real (왕의 도로)을 따라 21개의 미션이 세워진 이후 원주민들의 삶은 극적으로 변화됐다. 미션은 기독교의 전파 외에도 가축과 과일, 곡식 등 농산업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캘리포니아의 모든 미션은 초기 정착할 때 원주민들의 화살 세례를 받았고 원주민들을 교화해 정착할 무렵(1830-40년대)에 이르러서는 멕시코 정부의 침입으로 세속화되었으며 그 후 미국 군인들의 침략을 받는 등 수난을 거듭했지만 이제는 모두 복원돼 평화로운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San Diego de Alcala 후니페로 세라 신부에 의해 건립된 캘리포니아 최초의 미션. ▲San Carlos Borromeo de Carmelo 두 번째 미션. 캘리포니아 미션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칭송을 얻고 있다. 1784년 세상을 떠난 후니페라 세라 신부의 묘가 안치돼 있다. ▲San Antonio de Padua 세 번째 미션. 북가주의 가장 넓고 아름다운 미션 가운데 하나. ▲San Gabriel Arcangel 네 번째 미션. 역사적으로 많은 여행자들이 쉬어 가던 곳으로 미션의 여왕이라 불린다. 스페인의 코르도바 성당을 모델로 한 이슬람 사원 스타일이 독특하다. ▲San Luis Obispo de Tolosa 다섯 번째 미션. 원주민들의 불화살을 견뎌내기 위해 최초로 붉은 기와를 구워 지붕을 얹었다. ▲San Francisco de Asis 여섯 번째 미션. 캘리포니아 골드 러쉬 때는 도박사와 술주정꾼들이 득실거리기도 했다. ▲San Juan Capistrano 일곱 번째 미션. 미션 중의 보석이라 불리며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정원과 봄이면 아르헨티나에서 날아오는 제비로 유명하다. ▲Santa Clara de Asis 여덟 번째 미션.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미션 내에 설립한 캘리포니아 최초의 대학, University of Santa Clara에서 1851년 첫 강의가 시작된 것으로 유명하다. ▲San Buenaventura 아홉 번째 미션. 벤추라 강의 물줄기로 희귀 작물의 농사가 잘 돼 미션은 번영을 거듭했다. ▲Santa Barbara 열 번째 미션. 1833년 미션 세속화 작업 이후 다른 캘리포니아 미션의 문서를 잘 간직하고 있다는 이유로 캘리포니아 미션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La Purisima Concepcion 11번째 미션. 966에이커의 대지에 둘러싸인 유적지에 옛 생활상이 잘 보존돼 있다. ▲Santa Cruz 12번째 미션 태평양의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경관이 아름답지만 신부가 살해되기도 했던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곳이다. ▲Nuestra Senora de la Soledad 13번 째 미션. 원주민의 인구 밀도가 낮아 건축이 느리게 진행된 이곳은 짧은 기간 동안 30여 명의 신부가 거쳐 가기도 했다. ▲San Jose 14번 째 미션. 음악에 뛰어난 재주를 지녔던 Turan 신부는 30명의 원주민로 구성된 악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San Juan Bautista 15번째 미션. 보스턴에서 건너온 뱃사람 Thomas Doak가 그린 성화는 아직도 그 색채가 그대로 남아 광채를 발한다. ▲San Miguel Arcangel 16번째 미션. 외부는 단순하지만 스페인에서 온 화가들의 그림으로 아름답게 치장된 실내가 아직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San Fernando Rey de Espana 17번 째 미션. 캘리포니아 최대 규모의 아도베 건물을 자랑하는 이 미션에는 한때 금이 발견됐다는 소문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들의 발걸음이 계속 됐었다. ▲San Luis Rey de Francia 18번째 미션. 6에이커의 대지에 들어선 가장 넓은 미션으로 34년간 머물렀던 Antonio Peyri 신부에 의해 더욱 발전됐다. 영화 쾌걸 조로의 촬영 장소. ▲Santa Ines 19번 째 미션.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는 캘리포니아 최초의 신학교, College of our Lady를 이곳에 열었다. ▲San Rafael Arcangel 20번 째 미션. 병든 원주민들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으로 출발했다. 훌륭한 와이너리가 딸려 있다. ▲San Francisco Solano 21번째 미션.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지어진 유일한 미션. 알티미라 신부는 교화 과정에 있어 원주민들을 감옥에 넣는 등 과격한 방법으로 원주민들의 높은 원성을 사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미션에 관한 정보는 http://mymission.org, http://missions.bgmm.com, www.ca-missions.org, www.missionsofcalifornia.org, www.newhall.k12.ca.us 등의 웹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글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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