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봉급쟁이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봉인가 싶다. 미국의 대다수 직장인들은 은퇴 후 편안한 노후를 즐기기 위해 봉급의 일정 금액을 떼어 뮤추얼 펀드에 붓는다. 연방정부는 401(k)라는 규정을 두어 연금성 투자에 대해 세금을 면제 해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직장인들이 회사를 그만두면 퇴직금을 받아 그 돈으로 노후생활을 하지만, 미국에서는 퇴직금제도가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 직장인들은 401(k)에 가입해 그 돈을 불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미국 샐러리맨들이 한푼 두푼 모아 적립한 자산이 전체적으로 7조달러에 이르고, 이는 뉴욕 증시의 시가 총액의 절반을 넘는다. 거대한 개미군단이 뉴욕 증권시장을 형성했고, 이 돈이 다시 산업자본으로 흘러 들어가는 메커니즘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봉급쟁이의 돈을 모아서 운영하는 펀드 매니저들이다. 샐러리맨들은 주식시장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증권 전문가들에게 거래를 맡겨 돈을 불려주길 기대한다. 이때 가입자(봉급쟁이)와 증권 전문가(펀드 매니저) 사이에는 강한 신뢰감이 존재한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돈을 맡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90년대에 뉴욕 증시가 장기 호황을 누릴 땐 401(k) 가입자들이 돈을 많이 불렸다. 30대의 새파란 젊은 펀드 매니저들은 수억달러의 남의 돈을 굴려 백만장자가 돼 요트를 사고, 호화저택에 살았다. 어쨌든 펀드 가입자나 매니저들이 돈을 벌어들일 땐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형성돼 있었다.
그런데 2000년 이후 주식시장이 하락하면서 뮤추얼 펀드 가입자들의 재산이 줄어들었고, 은퇴 후 삶의 계획 자체를 수정하게 되었다. 이상한 것은 가입자들이 손해를 보는데, 펀드 매니저들은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의 재산을 굴려 손해를 보게 했으면서도 그들만이 잘 사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뉴욕 증권시장의 감시자인 증권거래소(SEC)와 뉴욕주 검찰은 최근에 대형 뮤추얼 펀드 10여 개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퍼트남, 스트롱, 제이너스 등 유명 뮤추얼 펀드의 회장, 사장이 그 동안의 잘못된 거래관행을 시인하고 줄줄이 사표를 냈다.
감독기관과 수사기관에 의해 문제로 되고 있는 뮤추얼 펀드의 거래관행은 장 마감 후 거래(late trading)와 단타 거래(market timing)이다. 문제를 일으킨 펀드 매니저들은 투자자들에게 뉴욕 증시가 폐장한 오후 4시 이후에 종가를 기준으로 주식을 거래하도록 했다.
내일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를 아는 프로들이 아마추어에게 주가 상승의 이득을 보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경마장에서 경기가 끝난 후 이긴 말에 내기를 거는 것과 다름없다. 단타거래가 문제로 된 것은 장기 투자자들을 고객으로 하는 뮤추얼 펀드로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펀드가 단기거래를 자주 함으로써 많은 거래비용을 지출,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쳤으며, 탈세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펀드 매니저들은 남의 돈을 굴리면서 개인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챙겼다. 탈법 거래를 통해 이득을 남긴 것 이외에도 주가가 높을 때 회사(펀드)를 팔아 목돈을 만들었고, 거래 수수료를 받았다.
현재 검찰과 SEC의 조사를 받고 있는 10여개 뮤추얼 펀드가 운영하는 자금은 1조달러에 이른다. 가입자 7명중 1명이 사기혐의를 받고 있는 펀드에 돈을 꼬박꼬박 낸 셈이다. 펀드와 가입자간에 신뢰가 무너지면서 돈을 돌려달라는 요구가 거세 퍼트남의 경우 지난달에 무려 100억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갔다는 보도다. 사기사건이 빈발하면서 요즘 유명한 펀드보다는 이름이 없어도 사고를 내지 않는 펀드로 옮기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더 이상 맡길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국 뮤추얼 펀드의 연쇄 사기사건은 보다 투명한 자금 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미 하원은 뮤추얼 펀드 부패방지법을 압도적인 표 차로 통과시켰고, SEC도 감독 규정을 강화할 방침이다. 중요한 것은 법이 아니라, 펀드와 가입자 사이의 실추된 신뢰를 다시 쌓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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