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경향이 있다.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이나 그 후 불과 2년 뒤 소련 연방이 해체된 것이 대표적 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전문가들조차 공산주의가 이처럼 허무하게 쓰러질 것으로 내다보지 못했다.
이 극소수 중 대표적 인물들이 오스트리아 학파 사람들이다. 이들은 소련이 제2차 대전에서 승리하고 중국마저 공산화되면서 공산주의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부터 자원의 효과적인 이용에 필수적인 수단인 시장을 무시하는 체제는 오래 갈 수 없으며 모든 사회주의 정권의 종착역은 궁핍과 경제 파탄임을 예언했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기원은 멀리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5세기 스페인 살라망카 대학의 후기 스콜라 학파로 불리는 아퀴나스 추종자들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비롯, 인플레의 원인, 상품 가치의 주관주의 등 근대 오스트리아 학파의 이론적 디딤돌을 마련했다. 재산권 보장과 계약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과도한 세금과 가격 통제, 각종 규제에 반대한 것도 이들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칼 멩거는 이를 바탕으로 1871년 ‘경제 원론’을 펴냄으로써 오스트리아 학파의 창시자가 됐다. 한동안 케인즈 경제학에 눌려 빛을 보지 못하던 오스트리아 학파는 70년대 들어 스태그플레이션과 함께 케인즈 이론이 수그러들면서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 지난 30년간 가장 많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등 주요 학파로서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전 세계에 널리 퍼지는데 가장 큰공을 세운 인물로 시장 신봉자인 밀튼 프리드먼과 함께 오스트리아 학파의 대표격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들어 무리는 없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 건너와 두각을 나타낸 하이에크와 같이 맨손으로 대서양을 건너 온 오스트리아 출신 이민자가 가주 주지사가 된 지 1주일이 지났다. 그가 정치 베테런 데이비스를 물리치고 주지사에 당선된 것은 극심한 재정난과 고실업 등 가주민들의 경제적 불만이 주원인이었음은 물론이다.
가주 정부 예산은 지난 4년간 40%나 늘어났다. 2000년 하이텍 버블이 터지면서 세수는 급감했는데도 이에 상응하는 예산을 삭감하기는커녕 지출을 늘려 가주 채권은 신인도 추락과 함께 정크 본드 취급을 받게된 것이다. 미 50개 주중 최고 수준의 소득세와 법인세, 종업원 상해 보험, 과도한 규제 등은 직업 창출의 주역인 비즈니스를 타주로 쫓는 주범이다. 세계화와 함께 타국에까지 수주를 주는 것이 보편화하고 있고 판매세가 없는 오리건과 소득세 없는 워싱턴이 이웃에서 부르고 있는데 굳이 가주를 고집할 기업은 많지 않다.
’배우 출신이 뭘 알랴’는 빈정거림에도 불구, 슈워제네거는 경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소신이 있다. 1980년 프리드먼은 자신이 쓴 책 ‘선택의 자유’(Free to Choose)를 PBS TV 시리즈로 내보낸 적이 있다.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이 이를 보고 시장 경제 지지자가 됐다. 그 중의 한 명이 슈워제네거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는 사람들이 언제 연금을 받게 되나를 걱정하지만 미국에서는 자신의 포텐셜을 충분히 실현하지 못할까를 걱정한다. 프리드먼의 책은 역동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사람들이 꿈을 실현하는 것을 돕는지 내게 설명해 줬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장 경제의 원리를 충실히 이행하면 흥하고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은 지난 100년간 인류가 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운 교훈이다. 남미에서 가장 탄탄한 경제력을 갖춘 칠레나 동구권 중 가장 빠른 도약을 하고 있는 체코와 에스토니아, 그리고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의 공통점은 경제 정책에 관한 한 프리드먼과 하이에크 추종자라는 점이다.
가주가 처한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은 분명히 나와 있다. 문제는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리더십이다. 앞으로 3년은 과연 슈워제네거가 가주를 살릴 지도자 감이었는지 할리웃의 후광으로 운 좋게 고위직에 오른 뜨내기에 불과했는지 판가름해 줄 것이다.
민 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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