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clear North Korea’(핵 북한)
빅터 차·데이빗 강/컬럼비아대 출판부, 2003
탐색전으로 끝난 제1차 북핵 6자회담과 달리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2차 회담이 내달 열릴 예정이다. 벌써부터 북한과 미국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지만 한반도 안보는 ‘기 싸움’을 벌일 대상이 아니다. 완승을 거두려고 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게 국제정치다. 북핵 문제에 대한 현실적 접근은 그래서 중요하다. 북한문제 전문가인 빅터 차와 데이빗 강이 올해 펴낸 ‘Nuclear North Korea: A Debate on Engagement Strategies’(핵 북한: 협상전략 논의)가 제시한 ‘해법’이 주목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빅터 차는 북한이 약하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라고 진단했다. 그 증거로 북한의 변화를 진작하려던 남한의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구조적 개혁이 제도화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리고 냉전체제 붕괴 후 체제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북한이 궁지에 몰렸다고 판단할 경우,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승리 가능성이 없는 무력도발을 감행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데이빗 강은 북한이 대군을 포진시키고 있지만 한국과의 경제력 격차와 주한 미군의 화력 등을 감안하면 대남 군사공격을 감행하거나 테러를 자행할 가능성은 미미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미국의 대북 억지정책이 여전히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위협을 과장해서는 안 되며 미국은 냉전적 사고에서 탈피해 북한과 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서 빅터 차와 데이빗 강은 북한의 위협의 정도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미군의 대북 억지력이 유효하며 협상이 올바른 정책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북한이 진정으로 개혁의지가 있고 국제사회에 동화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 빅터 차는 다소 비관적인 입장을, 데이빗 강은 낙관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어 빅터 차는 당근과 매서운 채찍을 겸비해 언제든지 혼내줄 수 있는 ‘강경 협상’(hawkish engagement), 즉 조건부 협상정책을 제시하면서 다섯 가지의 이유를 들었다. 첫째, 강경 협상은 추후 북한이 위험한 행동을 할 경우 국제연대를 통해 징계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둘째, 몰리고 있는 북한에게 채찍만을 휘두르면 성과가 없다. 셋째, 대북 적대정책은 북한 지도부의 응집력을 강화할 뿐이지만 조건부 협상정책은 북한 엘리트 사회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넷째, 조건부 협상은 북한 체제의 개혁 또는 아래로부터의 혁명 등을 통한 붕괴를 촉진할 수 있다. 다섯째, 남북한의 제도적 연계와 경제발전을 자극해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한편 데이빗 강은 북한이 냉전체제 붕괴 후 자의든 타의든 나름대로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여왔으므로 미국이 대북 협상을 꺼릴 이유가 없다며 ‘열린 협상’(open-minded engagement)이 최선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은 핵 문제에만 국한시켜서는 곤란하므로 경제적인 부문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제 개혁은 군사 및 핵 정책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데이빗 강은 세계 최대강국인 미국이 북한을 폐쇄사회라고 몰아붙이면서 협상을 거부한다면 북한이 개방개혁의 길을 걸으려고 해도 할 수 없다며 미국의 적극적인 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북한과의 교류 활성화는 결국 북한사회가 국제사회에 눈을 뜨게 함으로써 정보, 인식의 차이를 서서히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울러 미국의 대북 정치적 발언의 부정적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리고 빅터 차와 데이빗 강은 2003년 내내 지속되고 있는 북 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개괄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빅터 차는 북한이 핵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킨다는 전제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며 지금 공은 북한에 넘어갔다고 했다. 협상 외에 대안이 없음을 인정했지만 무조건적인 협상은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반면에 데이빗 강은 북한이 핵 개발을 공식 발표한 것은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전략이므로 정치 경제관계 정상화를 통해 핵 문제를 풀어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시각 차에도 불구하고 두 저자는 이념이나 정치적 레토릭이 아니라 협상으로 뒤얽힌 핵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며, 대북 협상과 관련한 공통분모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협상정책이 한미동맹의 약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미군 재배치가 한국 안보에 대한 공약을 다소 약화시킨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확고한 방위와 실질적인 군사력으로 버팀목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 한국, 미국, 일본 3국은 상호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셋째, 한국은 대북 햇볕정책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 상봉, 북한 기간산업 지원, 무역거래, 투자 등에 집중하되 과거 정권에서와 같이 ‘현금 지원’ 등은 자제해야 한다.
넷째, 한국, 미국, 일본은 세계식량기구 등을 통한 대 북한 식량지원을 계속해야 한다. 동시에 이 식량이 주민들에게 정확히 배분되는 지 여부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단서를 붙여야 한다. 다섯째, 중국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측면 지원하도록 대화를 해야 한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영향력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개입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불량한 행동을 할 경우 단호하게 응징할 것임을 천명해야 한다. 이상의 여섯 가지 요소를 잘 결부시켜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외교적 개입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빅터 차, 데이빗 강의 조언대로 북핵 문제는 일단 협상을 통해 가닥을 잡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핵 2차 회담을 놓고 갖가지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이번에 ‘끝장’을 보겠다는 자세는 비생산적이다. 사안의 중대함을 고려해 앞으로 필요하다면 3차, 4차 회담을 가질 수 있다는 유연한 자세가 북, 미 양국에 요구된다. 평화 구축이라는 목적을 위해 비평화적인 수단이 강구되는 상황은 어떻게든 피해야 할 것이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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