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셋째 목요일 0시를 기해서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출시되는 보졸레 누보를 올해는 11월20일, 목요일에 맛 볼 수 있다.
그 해 가을 수확한 포도로 빚은 첫 와인을 맛 볼 수 있다는 마케팅 구호 아래 와인 애호가들이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이 날은, 이미 세계 최대의 와인 축제 행사로 자리잡았다. 마치 새해 첫 날처럼 그 날 하루로 끝나는 행사인데다가 그 날을 놓치면 의미가 절감되는 축제라 그 날을 맞이하는 마음들이 더욱 설레이는 듯 하다.
한인타운에서도 작년에 보졸레 누보가 불티나게 판매되어서 미 주류 유통업체들을 놀라게 했는데, 한국에서도 보졸레 누보의 인기는 해마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올해는 보졸레 누보의 운송을 위해서 한국의 아시아나항공에서 보잉 747 전세 항공기를 총 6편을 동원해 약 300만병을 한국과 일본에 운송할 계획이고, 대한항공에서는 5대의 전세 항공기로 50만병의 보졸레 누보를 역시 한국과 일본에 운송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게 11월 20일 0시전에 각국으로 운송된 보졸레 누보는 정해진 창고 속에서 봉인되어 보관되다가 자정을 기해 각 소매상과 식당, 바로 옮겨지게된다.
그 해 수확된 포도로 빚은 첫 와인을 마시자는게 보졸레 누보 출시의 큰 의미이지만, ‘햇술’이라는 것 외에 사실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남반구에 위치한 남아공, 남미, 호주, 뉴질랜드의 포도주는 프랑스보다 수개월 전인 2월에 포도를 수확하기 때문에 보졸레 누보가 첫 와인이라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졸레 누보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그러므로, 프랑스에서 그해 첫 출시된 와인을 지구촌 방방곡곡에서 축하하는 행사를 가짐으로써 프랑스가 와인 종주국임을 세계 만방에 알린다는 점에서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적포도주 중 가장 태닌이 적고 백포도주에 가까운 맛을 지녔으면서, 떫은 맛과 신맛이 약하고 과일 향이 강하며 알콜 농도가 낮아서 와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보졸레 누보를 통해서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은 와인 애호가를 창출해낸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부르고뉴지방 남쪽에 위치한 보졸레 지방에서 100% 가메이(Gamay) 포도 품종으로만 만든 적포도주를 보졸레라고 부르는데, 보졸레 외에도 보졸레 빌라주(Village), 보졸레 크루(Cru) 등의 등급으로 나뉜다.
보졸레 전체 포도 생산량 중 약 1/3이 보졸레 누보를 만드는데 사용되고, 보졸레 누보는 가장 급이 낮은 보졸레급에 속한다. 보졸레 누보의 유래는 세계 제 2차대전 직후, 와인에 굶주린 보졸레 지방 사람들이 그 해에 생산된 포도로 즉석에서 만든데서 시작했다는데, 일반 와인과 달리 향기를 잘 보존하기 위해 포도를 일일이 손으로 수확하여 포도송이째 탱크에 넣고 봉인하여 만들기 때문에 과일향이 강하고 태닌이 적다.
4~5일간 재빨리 ‘탄산개스 침용’(Carbonic Maceration)을 거쳐 짧게 숙성시킨 보졸레 누보는 포도를 수확한지 8~10주 내에 포도주로 만들어져 출시되는데, 탄산개스 때문에 많이 마실 경우 두통을 유발할 수도 있다. 올 2003년 보졸레 누보는 지난 여름 유럽 전역을 강타한 무더위와 가뭄으로 인해 1893년 이후 110년만에 가장 이른 수확일을 기록하며 공식 수확일보다 15일이나 앞당겨져서 포도를 수확하였다.
또한 포도 넝쿨 하나에서 평년 수확되는 포도송이가 8~10송이인데 비하여, 올해는 가뭄으로 3~4개의 포도송이만 수확된 경우도 있으며 평균 6송이를 넘지 못하는 등 전체 수확량이 약 40%나 감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도송이의 수가 적은 만큼 각 포도알이 함유하고 있는 맛과 향은 예년보다 훨씬 농축된 깊은 맛을 지녔고, 따라서 2003년 보졸레 누보는 최고의 해로 치는 1929년과 1947년산에 버금가는 환상의 빈티지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보졸레 누보는 약 화씨 55도의 온도에서 마시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하는데, 차게 해서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인만큼 샐러드, 과일, 생선, 닭고기, 돼지고기 등 여러가지 여러가지 요리와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돼지고기 삼겹살을 먹을 때 소주만큼 잘 어울리는 반주가 보졸레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만큼 식생활 문화가 각기 다른 여러 문화권에서 보졸레가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보졸레 누보를 전세계적으로 알리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조르주 뒤베프(Georges Duboeuf)가 제일 잘 알려진 상표이지만, 조르주 뒤베프 외에도 루이 자도(Louis Jadot), 몽마생(Mommessin), 조세프 드루앵(Joseph Drouhin), 미셸 피카드(Michel Picard) 등 여러 메이커가 있으니 골고루 여러 병을 구입해서 마셔보며 맛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단 보졸레 누보는 빨리 마셔야되는 와인으로, 출시된 지 6개월 안에 마시는 것이 가장 좋으므로 무리해서 많이 구입하여 1년 이상 묵히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혹시 가까운 마켓에서 1.99 달러 짜리 보졸레를 지금 판매하는 곳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2002년 보졸레 누보 팔다 남은 것을 2003년 출시될 때를 맞춰서 옆에다 쌓아놓고 팔기 때문이므로 반드시 수확년도를 확인하고 사야 한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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