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의 부패지수는 세계 50위로 나타났다. 지난해 49위에서 한 자리 밀려난 꼴이다. 세계 130여개 국 가운데 중간 안쪽에 들었으니 그나마 낫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국가 경제력 15위권을 마크한 나라치고는 부패지수가 최상위에 들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국에 붙여진 ‘부패 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우리는 굳건히(?) 지켜냈다.
지금 나라를 온통 시끄럽게 하고 있는 정계의 검은 돈 파문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 부패지수를 끌어올린 장본인들이 다름 아닌 정치인들이니 말이다.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정당과 국회 주변에 진을 치고 있는 패거리들에 이르기까지 ‘정치인’이라 붙여진 직업꾼들 다수가 부패지수를 올리는데 기여했다. 그들 정치권력의 눈치를 봐가며 해먹는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도 한 몫하고 있다.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오늘도 ‘급행료’와 ‘뒷돈’을 챙기는데 여념이 없다. 큰 권력은 크게 해먹고, 쥐꼬리만한 권한을 가진 자들조차 뒤질세라 야금야금 해먹는 판이니 ‘부패 공화국’이란 말은 괜한 헐뜯기가 아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라고 했다. 당연한 이치다. 한데 한국의 윗물은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아랫물만 벽계수가 되라고 닦달한다. 대통령 선거에 나선 자들 치고 ‘부정부패 발본색원’을 떠들지 않은 자들이 있었던가. 권좌에 앉아서는 또 어떠했던가. 공직 기강을 바로 잡겠다느니, 추상같은 사정을 통해 부패를 척결하겠다느니, 호령호령하면서 뒤로는 현찰뭉치를 잘도 챙기지 않았던가. 절대 권력을 향유한 대통령 중 이승만과 박정희만이 집 한 채만 남겼을 뿐, 나머지는 자신이 아니면 가족들이 나서 검은 돈을 바리바리 쌓았다.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YS나 DJ가 전두환-노태우처럼 쇠고랑을 차는 험한 꼴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에 온갖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음은 그들 자신들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특히 대북 송금과 관련해 DJ와 그 측근들의 부정부패 의혹을 둘러싸고 항간에 나도는 이야기는 기절초풍할 정도다. 한 때 DJ와 같은 배를 탔던 사람들조차 ‘그 많은 돈을 죽어서 가져 갈 것도 아닌데 장차 어떻게 하려는지 궁금하다’느니, ‘스위스 은행 계좌를 뒤질 수만 있다면 그 탐욕의 정도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라느니, 근거가 있는 주장인지, 그저 해보는 소리인지 떠들고 다니는 판이다.
그렇다면 현직 대통령은 어떤가. 노무현씨로 말하면 대권에 앉은 시간이 짧아서인지 의혹설의 내용은 전직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생수회사와 대선을 전후해서 이 곳 저 곳에서 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측근 비리, 부산 지역 건설업자들이 건넸다는 300억 수수설, 액수 미상의 대통령 당선 사례비 수수설 등 야당이 제기한 의혹이 제법 많다. 문제는 취임 반년만에 그런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사실 노무현씨가 전직보다는 훨씬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믿어 왔다. 출신과 성장 과정이 가장 서민적이고 또 정계에 입문한 뒤에도 이렇다할 금전 스캔들이 없었다는 기록이, 그의 지도자적 능력과 자질에 대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대권을 거머쥐게 했던 것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지난 대선 때, ‘돼지 저금통’을 높이 들고 저는 돈 달라고 할 재벌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정성껏 모아 주신 이 돼지 저금통만으로 선거를 치르겠습니다고 외치던 노무현 후보의 순진한 듯, 처연한 듯, 어수룩한 듯한 표정을 기억할 것이다.
전직들에 비해 그의 의혹 내용이 작지만 많은 이들을 허탈하게, 혹은 분노케 하는 대목이 바로 그렇게 외쳤던 그로부터 받은 배신감 때문이다. 이제 와서 보니, 노무현 캠프도 재벌기업에 손을 내밀어 수백억원을 거둬갔고,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측근들 비리-많은 이들은 대통령과 무관치 않다고 보는-그런 비리들이, 연일 터져 나오자 ‘눈앞이 캄캄했다’면서 재신임을 묻겠다고 나설 때야 뭔가 심상치 않은 속내가 있는 모양이라고들 짐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와 사회 구석구석에 박힌 저 부패의 고름주머니를 어떻게 도려낼 수 있을까,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다. 노무현 정권이나 수백억을 불법으로 뜯어간 야당의 장래를 걱정할 것은 추호도 없다. 나라가 혼란해지고 경제가 망가진다고 우려도 한다. 하지만 국가의 명운을 건지려면 피고름을 걷어내고 팔다리를 잘라내서라도 부패라는 고질병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부패의 고름이 전신을 덮치기 전에 말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번 기회에 현 집권 세력, 전임 정권, 한나라당 등 정치권의 중심에 선 모든 조직과 핵심 인사들에 대해 전면적인 부정부패 수사가 단행돼야 한다고 믿는다. 누가 그 수사를 맡을 것인가. 현실적으로 검찰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국 검찰이 권력의 종속기관이라는 점이다. 야당이 노무현씨와 그 주변 비리를 독립적인 특별검사에 맡기자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노무현씨로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국회의 특검 결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반대로 야당 비리는 현 검찰에 맡기는 것으로써 충분할 것이다. 오죽 잘 파헤치겠는가. 이렇게 두 갈래로 ‘부패 대 수술’을 단행하는 길만이 나라를 건지는 유일한 길이다. 썩고 뭉개진 지금의 텃밭을 갈아엎지 않고서는 내일의 싱싱한 곡식을 거둘 수는 없다. 지금이 바로 밭을 갈아엎을 절호의 시간이다. 결과에 따라선 정권이 물러나야 하고, 야당이 뿌리째 뽑히는 대 변이가 일어난다 한들 우리는 그것을 감내해야 한다. 정도를 밟으라는 것, 그것이 한국민에게 던져진 역사적 명제요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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