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반가운 뉴스로 말머리를 시작해 보자. 바로 미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방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3·4분기에 7.2% 성장했는데, 이는 84년이래 20년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7%대의 성장률은 한국과 같은 신흥 시장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고도성장이고 미국 경제가 벌겋게 달아올랐던 90년대 말에도 어려웠던 기록이다.
올 하반기 들어 미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이라크 전쟁통에 미뤄두었던 소비와 투자가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몰렸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회복은 진짜라는 여러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지난 3년간 미국 경제를 아래로 끌어내린 주범이었던 기업 투자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3·4분기에 기업 투자는 무려 11% 증가했다. 또 미국 경제의 ⅔를 차지하는 소비 부문도 6.6% 늘어났다. 지난 2·4분기에 이라크 전쟁에 따른 군비 증액으로 정부부문의 지출이 급증해 3.3%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것과는 달리 3·4분기의 높은 성장률은 미국 경제가 진정으로 회복되고 있음을 입증했다.
주식시장도 지난해 10월 저점이래 1년 이상 황소장세(bull market)를 이어가고, 2년 동안 200만명의 실업자를 쏟아냈던 고용시장도 최근 들어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4·4분기에는 3·4분기와 같이 7% 대의 고도성장을 달성하긴 어렵지만, 3~4%로 추정되는 잠재성장률 이상의 성장을 기록하고, 내년에도 4%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연방정부가 발표한 희소식은 미국 경제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준다. 미국 경제는 90년대 10년 장기 호황으로 거대한 거품이 형성됐고, 증권시장과 정보통신(IT) 산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완만한 경기침체 또는 저성장을 거쳤으나, 3년만에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80년대 말에 비슷한 거품 경제를 형성했다가 15년 가까이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이 일본과 달랐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지만,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중앙은행과 연방정부가 즉각적이고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채택했다는 사실이다.
2001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6.5%였던 단기금리를 1%대까지 인하했고,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재정적자가 불어나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적자예산을 편성, 과감하게 세금을 깎아주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정치적인 장벽에 부딪쳐 은행 구조조정을 미뤘고, 경제의 고름을 짜내는데 차일피일하다가 10여년의 긴 세월을 보내야 했다.
둘째로 미국 기업들이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는 점이다. 경기가 악화되자, 미국 기업들은 200만명 이상의 일터를 없애고, 설비를 감축해 재고를 줄였고, 그 덕분에 올 들어 수익이 회복됐다. 해고의 자유, 퇴출의 자유가 임금 노동자들에겐 죽을 맛의 조건이지만, 경제를 거시적으로 관찰할 때 빠른 시일에 경기를 회복시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이 미국식
노동시장이 갖는 강점이다.
문제는 미국 경제의 회복이 나 홀로 회복이라는 점이다. 94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경제는 전세계에서 창출된 부의 증가분 가운데 96%를 차지했다는 것이 모건 스탠리의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의 분석이다. 90년대 후반 미국 경제가 호황이었을 때 달러 강세를 통해 미국의 부가 다른 나라에 이동해 전 세계가 골고루 잘 살았는데, 지금은 달러 약세로 인해 미국은 자국에서 이뤄지는 경기 회복의 여력을 다른 나라에 나눠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올해 0.4%의 극히 저조한 성장이 전망되고, 한국 경제가 하반기에 바닥을 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은 이런 조건에서 나온 것이다.
미주 한인들은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는데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며 의아해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도 미국 경제의 회복은 아랫목에서 이뤄지고, 한인들의 주 업종인 소매판매업 등의 윗목까지 달아오르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윗목까지 경기 회복의 따스함이 전달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도 될 것 같다.
김인영/서울경제 뉴욕 특파원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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