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위에서 오리 떼가 한가히 헤엄치고 다니는 모습은 평화롭다. 그러나 이는 겉모양일 뿐 수중 카메라로 물밑을 찍어 보면 오리마다 제각기 분주히 발을 놀리며 먹이를 찾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물밑 경쟁’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지금 LA 한인 은행가는 이 물밑 경쟁이 한창이다. 한국의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 스타가 이 은행의 미주 현지법인은 퍼시픽 유니온 은행(PUB)을 팔기로 방침을 세워 구매자를 물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PUB의 새 주인이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국의 모 은행이나 LA의 한인 은행, 그 중에서도 한미 아니면 나라 은행 이외에는 현실적으로 다른 가능성은 없다는 게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론 스타가 내년 3월까지 매각 시한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당국의 승인 절차 등을 감안하면 올해 말까지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PUB가 팔릴 경우 그 가격은 장부 가의 2~3배선인 2억~3억달러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에 있는 대형 은행 입장에서 볼 때는 그다지 큰돈도 아니다. 해외 진출에 관심 있는 한국 은행이 여럿 있기 때문에 자금력이 풍부한 이들이 로컬 은행보다는 일단 유리하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요즘 한국 은행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크레딧 카드 부실 대출 등 국내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해외 은행 인수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으며 정부도 이를 쉽게 승인해 주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반면 지금까지 한인 금융계에서 선두주자 자리를 지켜온 한미나 파산 위기에서 일약 2위의 자리로 뛰어 오른 나라로서는 PUB는 놓칠 수 없는 사냥감이다. 나라가 인수할 경우 숙적 한미를 누르고 명실상부한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게 되며 한미는 2위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한미가 이를 접수할 경우 뉴욕과 샌호제 등 타지역 은행까지 인수해 가며 사세를 확장해 온 나라는 한인 금융권의 본바닥인 남가주에서는 선두 경쟁에서 미끄러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한미와 나라는 모두 최근 행장이 교체됐다. PUB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막 취임한 신임 행장의 능력을 재는 시험대로 떠오른 셈이어서 양측 모두 쉽사리 양보하지 못할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로컬 은행이 PUB를 인수한다 해도 반드시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론 스타 측이 매각 조건으로 현찰을 요구하고 있어 수억달러에 달하는 자금 마련이 부담으로 남게 된다. 섣불리 너무 큰 덩치를 집어 삼켰다 나중에 탈이 나는 게 아니냐는 신중론이 은행 내부에서도 일고 있다.
또 한미 등 나라든 PUB를 인수하면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PUB 기존 직원을 상당수 내 보낼 수밖에 없다. 그 파장은 상대적으로 남가주 영업망이 많이 겹치는 한미가 주인이 됐을 때 더 커지겠지만 나라가 인수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인원 감축은 불가피하다. 요즘 PUB 직원들은 한국 은행이 인수하기만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한인타운의 발전을 위해서는 PUB 합병은 로컬 한인 은행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PUB를 한국 은행에 넘기는 것은 과거 외환 은행의 재판일 뿐 한인 경제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지 불분명하다.
지금 남가주 한인사회에는 10개에 달하는 은행이 들어서 있으나 아직 규모로 볼 때는 미 주류 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 중국 커뮤니티에도 훨씬 못 미친다. 이번에 한미나 나라가 PUB를 인수할 경우 총 자산이 30억 달러에 근접, 명실상부한 중형 은행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지금 한인 사회 규모로 봐 그렇게 큰 은행이 꼭 필요한가라는 회의론도 있지만 타운 성장에 발맞춰, 혹은 한 걸음 더 앞질러 은행 규모도 커지는 것이 순리다. 지난 30년 간 한인 커뮤니티가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한인 사회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금융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로컬 은행이 PUB를 인수할 경우 타 경쟁 은행도 그에 걸맞는 규모를 이루기 위해 한인 은행가에 인수 합병 붐 등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 가능성도 있다. 이번 PUB 매각이 한인 금융권 도약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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