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히틀러, 슈워제네거. 공통점은 무엇인가. ‘분노의 정치’의 산물이다. 한 정치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그렇다. 화난 대중, 기존의 정치에 절망한 대중의 선택이라는 말이다.
’분노의 정치’란 말이 유행이다. 미국의 정치, 2004년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이 분노라는 변수에 초점을 맞추고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골수 공화당에, 원조 보수임을 자처하는 사람이면 클린턴이란 말만 들어도 여전히 앨러지 반응이다. 정통 진보에, 민주당원임을 자랑하는 사람은 부시라고 하면 혈압부터 오른다.
무조건 싫다. 걷는 모양도, 말하는 스타일도 보기 싫다는 게다. 한마디로 ‘싫은 걸 어떻게 해’다.
대선의 흐름도 그렇다. 부시를 공격한다. 골수 민주당원들이 열광한다. 민주당 대선 출마자 중 하워드 딘이 뜬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라크전 승리 후광에 눌려 다른 출마자들이 부시 때리기에 주저하고 있을 때 거침없이 쏘아대 스타덤에 올랐던 것.
민주당은 공화당을, 보수파는 진보파를 싫어한다. 그것도 아주 극도로. 그 증오감은 의정에도 나타난다. 극심한 파당적 대립이다. 한 세기만의 가장 심각한 대립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정치권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시선은 불신으로 꽉 차 있다. 유권자가 원하는 건 외면하면서 오직 파당적 싸움에만 열을 올리고 있어서다. 그 불신이 증오로 변한다. 그러다가 폭발한다. 터미네이터 주지사 탄생은 그 증오감의 표출이라는 거다.
뭐든지 앞서 간다는 캘리포니아다. 이 골든 스테이트에서 벌어진 해프닝에 기존 정치권은 새삼 주목한다. 2004년 대선가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전전긍긍 속에 분석에 여념이 없다는 소식이다.
앞서 인용한 정치학자의 주장은 이렇다. 슈워제네거의 당선은 나폴레옹의 출현, 나치 히틀러의 대두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거다. 기존 정치에 화가 난 대중이 포퓰리스트의 감성적 어필에 놀아난 결과라는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인과 20세기 독일인들은 분노의 표시로 카리스마적인 독재자를 선택했다. 21세기 캘리포니아 주민은 설레브리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기존 정치의 틀밖에 있는 대안으로서. 상당히 그럴 듯이 들린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제는 피(彼)와 아(我)의 구별도 잘 안돼서다. 본래 한 뿌리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입만 벌렸다면 서로를 죽이는 독설이다. 진작부터 헷갈렸다. 그렇지만 그 지향점이 더욱 애매모호해졌다. 한국 정치의 방향 말이다.
총리가 나서서 대통령 탓을 한다. 장관은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합의한 사항을 뒤집는다. 청와대 참모라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이라크 추가 파병결정에 앙앙불락이다. 사퇴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정권핵심부에서 들리는 불협화음이다. 갈데 까지 간 모습이다.
정권 핵심부뿐 아니다. 집단마다 갈등이다. 그 양상이 자못 엉뚱하기까지 하다. 전직과 현직이 한판 붙는다.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 KBS 사태가 그렇다. 집단 내 상부와 하부가 영 딴 소리다.동서(東西)갈등은 이제 옛 이야기다. 세대간 갈등만으로 볼 수도 없다. 바야흐로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빚어지는 갈등의 양상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더욱 혼선을 빚게 한다. 자신이 재신임 받겠다고 했을 때 정치권이 반성할 줄 알았는데 그 게 아니라는 일갈이다. 재신임 발언의 본심이 과연 무엇이었는지가 은연중 드러난다.
시민단체들도 빠질 수 없다.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불신임하겠다는 으름짱이다. 그 요구라는 게 각양각색이다. 교육개혁을 해라, 이라크파병을 철회하라 등.
’DJ를 북한 특사로 보내자’- 이 와중에 튀어나온 제의다. 정신적 여당을 자임하는 정당 대표의 발언이다. 아찔한 순간이고, 완전히 헷갈리게 하는 대목이다. 너무 절묘해서다.
’거대’ 자가 붙는 야당도 꿀 먹은 벙어리다. 100억이란 돈이 흘러간 탓인지….
그만. 이쯤에서 정돈해보자. 한국의 정치, 재신임 정국을 제대로 읽어내는 데 중심적 단어는 무엇일까. 분노라고. 그 단계는 이미 지난 것 같고. 그 다음에 오는 게 뭘까.
혹시 정체성 상실서 오는 분열증세가 아닐까. 내란 직전의 사회가 아닌 다음에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분노의 끝, 그 다음 단계에 오는 건 도대체 뭘까.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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