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대해 눈을 뜨게되면서 와인샵에서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사서 마신 와인이 이탈리아산 적포도주였다. 동부에서 대학을 다녔으므로 서부보다 유럽 와인을 쉽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프랑스 와인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했고, 시기상으로 이탈리아산 와인이 미국에서 굉장히 큰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와인에 대해 전혀 모르던 시절 선배들의 기숙사 방이나 아파트에서 짚으로 밑둥을 싼 호리병 모양의 와인병에 초를 꽂아놓고 촛대로 사용하는 것을 자주 보아왔던 터라 더 익숙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 때 많이 접하던 이탈이아 와인은 토스카나 지방에서 생산된 키안티와 베네토 지방의 피노 그리지오, 소아베 등이었다. 서부로 이사오기 전까지 내가 마셨던 와인의 약 50%가 이탈리아산 와인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이사오고 나서부터는 캘리포니아와인에 심취해서 이탈리아산 와인은 그리 많이 마실 기회가 없었다.
지난달 우연히 구하기 힘든 이탈리아의 베네토 지방 와인인 ‘아마로네’를 손에 넣게 되었다. 98년 빈티지였는데, 아마로네의 특성상 약 10년정도 숙성시켜야 제 맛을 낸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지난주에 한 병 마시고 말았다.
이탈리아는 전 국토가 포도밭이라고 할만큼 북부에서 남부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포도밭과 올리브나무가 성한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북서부의 피에몬테(Piedmont), 북동부의 베네토(Veneto), 서부의 토스카나(Tuscany) 세 지방이 유명하다. 아마로네를 생산하는 베네토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인 베로나가 속한 지방으로, 특히 발폴리첼라(Valpolicella), 바르돌리노(Bardolino), 소아베(Soave)로 유명하다.
이 세가지 와인은 모두 쉽게 마실 수 있으며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써, 가격에 상관없이 전체적으로 매우 품질이 고르다. 고급 와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언제 어디서나 편히 즐길 수 있는 와인이기도 하다. 특별히 이들 발폴리첼라, 바르돌리노, 소아베는 전세계적으로 많이 수출되는 와인들인데, 유명한 메이커로는 볼라(Bolla), 폴로나리(Folonari), 산타 소피아(Santa Sofia) 등이 꼽힌다.
이 중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적포도주로 유명한 발폴리첼라는 코르비나(40~70%), 몬디넬라(20~40%), 몰리나라(5~25%)의 포도품종으로 빚어진다. 발폴리첼라 와인 중 특별한 와인이 두가지 있는데, 바로 레치오토(Recioto)와 아마로네(Amarone)이다. 포도를 수확할 때부터 가장 위쪽에 위치한 포도송이 중에서도 최고로 잘 익은 포도만 골라서 짚으로 된 매트 위에 올려놓고 말린 후에 포도주를 빚는, 특별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와인들이 레치오토와 아마로네이다.
이렇게 말린 포도로 포도주를 빚는 과정을 아파시멘토(Appasimento)라고 하는데, 포도의 수분을 증발시킴으로써 당분 함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독일의 트로큰베렌아우스레제나 프랑스의 소테른처럼 당분의 함량을 높인 포도로는 달콤한 디저트 와인을 빚게 되는데, 레치오토의 경우가 그러하고, 당분이 다 사라질 때까지 발효시켜서 드라이하게 만든 와인이 아마로네이다.
포도주를 담글 때 포도알 속에 함유된 당분은 반 정도는 알콜로(55~60%) 그리고 나머지 반 정도는 이산화탄소로(40~45%)로 변하는데, 때문에 당도가 높은 포도의 당분을 모두 발효시켜버린 아마로네의 알콜 농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평균 알콜 농도가 15%, 심한 경우 17~18%도 발견할 수 있다.
아마로네는 레치오토를 만들다가 실수로 너무 오랫동안 발효를 시키는 바람에 당분이 모두 사라져버려서 탄생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1950년경에 새로이 탄생한 와인이다. 말려서 향과 맛이 더 강해진 포도로 빚은 와인이기 때문에 아마로네의 향과 맛은 매우 강하고 풍부하다. 보통 적포도주에서 느낄 수 있는 향이 모두 증폭된 와인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감초(licorice), 담배, 무화과, 체리, 코코아 등의 향을 맡을 수 있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하니발이 파바빈(fava bean)과 함께 아마로네를 마시는 장면이 있고, 자신이 예전에 살인을 하고 그의 간을 꺼내서 키안티와 함께 먹었다고 말하는 장면도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키안티, 아스티, 소아베의 뒤를 이어 네번째로 많이 팔리는 와인이 아마로네라고 하는데, 미국 특히 서부에서는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와인은 아니다.
농축된 강한 향과 맛,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서 강한 알콜 농도마저 느낄 수 없는 부드러움은 아마로네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양고기나 소고기 스테이크로 특별한 저녁 식사를 하는 날, 단골 와인샵에서 구입한 아마로네를 곁들인다면 더욱 만족스러운 시간이 될 것이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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