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중순 이후 농민, 노동자의 반(反)정부 시위가 계속돼온 볼리비아의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사임했다고 대통령궁 소식통이 밝혔다. 산체스 대통령의 사임 소식은 신공화세력당이 연정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지 수시간만에 나왔다.
산체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사임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고 익명을 요구한 대통령궁 소식통은 전했다. 볼리비아 헌법에 따라 카를로스 메사 부통령이 임시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TV 방송 기자 출신인 메사 부통령은무소속이며 역사학자로도 유명하다.
산체스 대통령은 이날 사임서를 제출한 이후 헬기편으로 대통령 관저를 떠나 서부 산타 크루스시(市)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라디오 방송은 산체스 대통령이 향후 미국으로 간다고 보도했다. 한편 연방의회 의원들은 라파스 중심가의 의사당에 모여 긴급 회의를 열고 향후 대선 일정 등 정국안정 방안을 논의했다.
산체스 대통령의 사임은 수도 라파스에서 수 만명의 시민들이 연 5일째 대규모반(反)정부 시위를 벌이는 상황에서 발표됐다. 앞서 산체스 대통령의 친구로 막역한사이인 하이메 파스 사모라 전(前) 대통령은 산체스 대통령이 이날 오후 사임한다면서 산체스 대통령의 사임 결정이 “애국적”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계엄령 발효 6일째를 맞은 이날도 라파스에서는 시민 수만명이 산체스 대통령의하야를 촉구하며 가두행진 시위를 벌였다. 산체스 대통령의 사임 소식이 급속도로퍼져 나가는 가운데 광부와 학생, 원주민, 농민 등은 대통령궁 인근 산 프란시스코중앙광장을 향해 나아갔다. 일부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계속해서 국가(國歌)가 연주됐으며 거리 시위대는 횃불을 피우고 축하 분위기를 연출했다.
군병력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는 정부청사 인근까지 진출한 시위대는 “물러가라, 물러가라”고 외쳤다. 일부 시민들은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성당에서는 약 1천명이 단식투쟁을 벌이며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고 있다고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전했다.
도로 장애물로 차량 이동이 며칠째 불가능해진 라파스는 가스, 식료품 등의 공급 중단이 계속되면서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됐다. 중산층이 사는 지역에서는 약 4천명이 밤새 가스를 기다렸으나 끝내 가스 공급차량은 도착하지 않았다. 또한 식사를하지 못한 시민들이 빵을 사려는 행렬이 길게 펼쳐진 모습이 시내 곳곳에서 목격됐다.
이날 연정탈퇴를 발표한 만프레드 레예스 비야 신공화세력당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정부를) 떠날 수밖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서 “대통령에게 우리는 현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며, 희생도 더 방관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신공화세력당 소속 각료 3명도 소속당의 연정탈퇴에 따라 사임했다. 전날에는마우리시오 아테사나 정부 대변인이 사임했다. 앞서 메사 부통령도 산체스 대통령의시위대 강제 진압을 비난했으나 사임하지는 않았다.
한달여간 이어진 시위에서 74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미국 및 영국정부가 자국민들에게 볼리비아로 여행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등 국제사회도 사태추이를 주시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특히 마이애미 소재 미군 남부사령부는 볼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관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 지 그리고 현지 요원들에 대한 소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소규모 병력을파견했다고 남부사령부 대변인이 전했다.
중남미를 관할하는 남부사령부는 미국 국무부나 볼리비아 정부의 공식 요청 없이 자체 판단에 따라 신속한 사태 파악을 위해 병력을 급파하기로 했다고 이 대변인은 덧붙였다. 평상시 미국은 볼리비아에 30명 미만의 군병력을 상주시키며 대사관업무 등을 돕도록 하고 있다.
또한 브라질 공군기 1대가 라파스에서 108명을 소개했으며, 페루 정부도 수십명의 자국민과 이스라엘인 92명을 항공편으로 볼리비아를 떠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지난 12일부터 계속된 반정부 시위로 라파스와 엘 알토 국제공항간 주요 도로가 봉쇄됨으로 인해 엘 알토 국제공항은 수일간 정상운항을 하지 못했으며 관광객들과 외국인들은 라파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고립상태에 빠졌다.
이번 반정부 시위는 국민 대다수가 가난에 시달리는 삶이 계속돼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이 고조한 상황에서 산체스 대통령이 미국과 멕시코로 천연가스를 수출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광산업계의 백만장자 기업인 출신으로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산체스 대통령은베네수엘라 다음으로 남미에서 매장량이 많은 천연가스를 외국에 수출하면 연간 15억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과 가난한 원주민들은 국영기업의 과거 매각 사례처럼 이번에도 경제적 혜택은 자신들에게 미치지못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집권한 산체스 대통령이 미국 정부의 마약퇴치 정책을 돕기 위해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잎 재배를 주로하는 원주민들의 반감을 산 것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됐다. 올해 73세인 산체스 대통령은 지난 93∼97년에도 대통령을 지냈으며, 미국 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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