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 송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저’란 원숭이란 뜻으로 워낙 원숭이를 좋아해 많은 원숭이를 길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게 됐다. 그는 가족의 양식까지 퍼다 줄 정도로 원숭이를 사랑했으나 수가 많다 보니 먹이 대기가 날로 어려워졌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결국 먹이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먹이를 줄이면 원숭이들의 반발이 예상돼 그는 우선 원숭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나누어주는 도토리를 앞으로는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조삼모사: 朝三暮四)’씩 줄 생각인데 어떠냐? 그러자 원숭이들은 하나같이 펄펄뛰며 난동을 부렸다. 아침에 도토리 세 개로는 배가 고파 살 수가 없다는 것이 그들 이야기였다. 그러자 저공은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마고 말했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뛸 뜻이 기뻐하며 만세를 불렀다. ‘조삼모사’의 어원이다.
’조삼모사’는 사기술의 전형으로 지탄받기도 하지만 군주가 백성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귀감으로도 인용된다. 한비자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이르기까지 통치 교본의 한결같은 가르침은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본 군주는 흥하고 그렇지 못한 군주는 망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본 인간의 참모습은 그다지 밝지 않다. ‘의사가 환자의 고름을 빠는 것은 환자를 사랑해서가 아니다’는 한비자나 ‘인간은 아버지를 살해한 자는 용서해도 자기 돈을 떼어먹은 사람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그 증거다.
일본말로 ‘고맙다’는 뜻의 ‘아리가도오’의 원래 의미는 ‘있기 어렵다’다. 학자들 가운데는 이를 ‘도움을 받았으니 언젠가는 신세를 갚아야 할텐데 그러자니 마음이 불편하다’는 일본인의 심리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도움을 받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은 일본인만은 아니다. ‘먹이를 준 손을 무는 것’은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한 때나마 누구에게 신세를 졌다는 것은 자기가 남보다 열등한 적이 있었다는 증거고 따라서 형편이 나아진 후에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갓 이민 와 어려웠던 시절 도움 받은 것을 오랫동안 잊지 않고 감사의 표시를 한다는 이야기보다는 어려울 때 도와줬더니 좀 피니까 모른 채 한다는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에서 일고 있는 반미 감정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한때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되던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가 가주 사상 처음으로 소환 당하고 강제로 정계를 은퇴 당하는 치욕을 맛본 지 1주일이 지났다. 데이비스가 쫓겨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로 자동차 등록세의 3배 인상을 빼놓을 수 없다. 항상 민주당에 표를 던지던 한인들 가운데도 취임 첫날 등록세 인상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에 넘어가 슈워제네거에 표를 준 사람도 적지 않다.
지금 와서 보면 어리석은 결정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데이비스에게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현재의 차량 등록세는 5년 전 윌슨 지사 말년에 하이텍 붐으로 세수가 남아돌자 유권자들에게 선심을 쓰기 위해 원래의 ⅓ 수준으로 대폭 인하한 것이다. 데이비스 입장에서는 볼 때는 ‘호황 때 내린 것을 불황 때 올리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단순히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이는 인간 심리를 근본적으로 잘못 읽은 것이다. 남에게 받은 것은 잘 잊어 버려도 빼앗긴 것은 절대 잊지 않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다. 어느 해 얼마 봉급이 올랐는지는 잘 모르지만 언제 봉급이 깎였는지는 10년이 지난 후에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데이비스는 그렇다 치고 그럼 슈워제네거는 인상을 철폐할 수 있을까. 할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의회와 합의해 40억달러라는 부족분을 메워야 한다. 데이비스 축출로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 주도의 의회가 쉽게 이에 응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되면 슈워제네거는 나는 내리려 했는데 의회가 반대해서…라며 발을 뺄지도 모른다. 또 자동차세를 내린다 하더라도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예산 삭감이나 다른 방식의 증세가 불가피하다. 과연 가주민이 슈워제네거라는 저공에 놀아난 원숭이 꼴이 되는 것은 아닌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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