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너무 거창한가. 투표도 끝났고 이제는 왜 그랬을까 분석만 분분한 상황이다. 그래서 한번 해보는 거지만 말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그레이 데이비스. 누가 훗날 더 기억될까.
데이비스 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역사의 판단이니, 어쩌니 어려운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앞으로 미국 역사과목 시험에 이런 문제가 혹시 자주 출제되지 않을까 해서다.
캘리포니아주 사상 최초로 소환투표 결과 쫓겨난 주지사는 누구인가. 좋은 성적을 올리려면 정답인 데이비스의 이름은 반드시 외어야 한다. 그러므로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다는 게다.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설레브리티 폴리틱스(Celebrity Politics)시대의 본격 도래를 알리는 인물’ 하면 반드시 슈워제네거가 거론될 것이다. 뭐 이런 자못 거창해 보이는 시대사적 분석도 가능하지 않나 싶어서다.
언제부터 였더라. 미국 정치에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결코 빼놓을 수 없게 된 게. 아마도 설레브리티 라면 깜박 죽는 미국적 풍조 확산과 무관하지 않지 않을까 싶다.
정치는 유명세를 필요로 한다. 함수관계로 설명하면 본래 이런 식이다. 정치인으로 입신해 출세를 하라. 그러면 명성은 따른다. 말하자면 설레브리티라는 건 정치적 성공의 부산물이었던 것.
언제부터 그 관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 크고 싶은가. 그러면 먼저 설레브리티가 되어라’ -.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무조건 확 뜨고 보라는 이야기다.
워싱턴이 할리웃화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게다. 해서 역으로 이런 말도 나온다. 정치에 왜 뛰어드는가. 설레브리티가 되기 위해서다. 알쏭달쏭한 이야기인데, 이게 설레브리티 정치의 시대 정신이라 하던가. 하여튼 그렇다.
이 시대의 총아는 단연 할리웃 스타다. 게다가 신화가 형성돼 있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터미네이터’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터다. 게다가 미국적 설레브리티 신화의 원조, 케네디가의 일원이다.
그 스타 파워로 미국 내 최대주의 주지사가 됐다. 이런 의미에서 슈워제네거는 새 시대 도래를 알리는 인물이다. 뭐 이런 발상도 가능하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이상해졌다.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현실과 영화도 분간 못하는 사람들로 보여서다. 여간 실례가 아니다. 이만저만의 모독이 아닐 테니 말이다.
왜 슈워제네거를 선택했나. 미국 정치, 캘리포니아 정치에 정통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무래도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LA타임스는 슈워제네거 주지사 탄생의 원인을 오히려 데이비스에서 찾는다.
그 보도에 따르면 데이비스는 대략 이렇게 평가된다. 우선 ‘정치 머신’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정치라는 비즈니스와 관련해 움직여왔다. 직업 정치인으로 오직 주지사직 하나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다. 전성기는 지난 2000년 무렵으로, 그 때에는 언젠가 대권을 쥘 수 있는 인물로까지 평가됐다는 이야기다.
이후는 내리막길이다. 에너지 위기, 재정적자 등 잇단 위기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데이비스가 유권자에게 비친 인상은 정치기금 모금에만 관심을 보이는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무능한데 돈만 챙기는 정치인의 전형으로 비친 것.
요약하면 이렇다. 인간미는 전혀 없는 정치인, 오만과 독선으로 똘똘 뭉친 인상의 정치인이 데이비스였다는 거다. 모임에는 으레 늦게 나타나고, 전화를 해도 결코 리턴 콜이 없는 사람이다. 이건 동료 정치인들의 평가다.
이처럼 관계의 중요성을 무시한 그이므로 소환이라는 정치적 위기를 만났을 때 정치적 우군을 찾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한 때 가장 준비가 잘 된 주지사란 평가를 받던 데이비스는 결국 ‘쫓겨난 주지사’란 오명을 남기게 됐다는 이야기다.
또 이런 이야기도 들린다. 유권자의 분노는 데이비스에게만 쏠린 게 아니다. 한마디로 무능한 정치권 전체에 대한 유권자의 분노가 폭발해 터미네이터 시대를 열게 했다는 거다..
그런데 한국 정치가 갑자기 연상된다. 당선 직후 지지도는 60%에 가까웠다. 40%, 30%선으로 떨어지더니, 이제는 10%선이라는 보도다. 노무현 대통령 인기도다. 이와 함께 1/4 정치, 1/4 대통령 소리도 나온다.
What the hell is going on? 되지도 않는 영어가 불쑥 튀어나온다. ‘혹시…’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그건 그렇고 정치를 차라리 스타들에게 맡기면 어떨까. 무능한데다가 거드름이나 빼는 직업 정치인보다는 훨씬 잘 생겼으니 우선 눈이 시원할 것이고…. 또 스스로 아마추어임을 알아 최소한 머리는 빌릴 줄 알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한국의 터미네이터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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