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각축을 벌이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선거와 70세를 넘나드는 노인들이 보여준 한국노인회장 선거가 비슷한 궤적을 그려내고 있다. 스타덤에 오르기 전에 어느 정도의 정치수업을 한 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나 프로 레슬러 출신 제시 벤추라 전 미네소타 주지사와 달리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정치 경험이 전무한데도 주지사 당선 ‘0순위’에 올라 있다.
유권자들은 신출내기 슈워제네거의 경험 부족에 불안해 하는 한편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의 잦은 말 바꾸기에 강한 불신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갈등하는 표심은 ‘불신’과 ‘불안’ 중에서 차선으로 ‘불안’을 선택할 기세다.
지난주 한국노인회 이사회도 소환선거에 임하는 유권자처럼 고민에 빠졌음직하다. 노인회는 그 동안 회장이 신임을 잃어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라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이 형성됐으나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날 이사회 참석자들은 결국 노인회에 향한 ‘불신’을 털어내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회장 교체 외엔 대안이 없다는 현실 인식을 한 것이다. 회장을 교체한다고 해서 노인회 문제가 말끔히 해소된다는 보장이 없고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불신’보다는 ‘불안’을 택했다.
전 회장과 일부 회장 후보가 불참한 가운데 새 회장이 선출돼 향후 총회 인준 과정에서 잡음이 일 소지는 있다. 하지만 신임회장이 못마땅하다고 해서 인준 과정을 혼탁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타운 어른들이 감투를 놓고 싸운다면 스타일 구기는 일이다. 회장 자리를 탐낸 게 아니라 노인회 정상화를 위해서 분주하게 뛰었다면 새 회장단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손을 맞잡아야 할 것이다.
새 회장단이 짊어진 짐은 꽤나 무겁다. 당장 은행 대출금 8만달러와 공조회 부채 5만달러 상환 문제가 다가온다. 노인회원들의 푼돈 성금을 통한 자력 해결은 기대난망이다. 커뮤니티의 관심이 절실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노인회 운영자금 지출내역 공개가 선행돼야 한다. 잘못된 부분을 분명히 밝혀야 책임자에게 상응한 조치를 취하고 동일한 불상사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새 회장단은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책임자의 과오를 지적해야 한다. ‘과거청산’ 없이 새 사회건설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역사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다. 노인회도 다르지 않다. 한 점 의혹 없이 모조리 들추어 대수술을 요하는 것과 작은 치료를 요하는 것을 분류한 뒤 엄중히 처리해야 한다. 혹 전 회장과의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대의’를 저버린다면 우여곡절 끝에 출범하는 새 회장단도 ‘한통속’이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수십년 간 장기집권을 해온 전 회장은 분해할 것이 아니라 새 회장단의 ‘갱생 작업’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노인회 운영과 관련된 자료는 모두 제출하고 자료에 없는 부분은 구두로도 소상히 밝혀야 한다. 이 것만이 한인사회에 의해 ‘소환’된 불명예를 씻는 길이다. 한국 정권교체시기에 행해져 온 자료폐기나 은폐가 되풀이된다면 스스로 구린데가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외로운 노인들의 사랑방이 돼야 할 노인회가 노인들의 기피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다. 철썩 같이 믿고 공조회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본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기꾼’이라고 질책해도 노인회는 유구무언이다. 이들의 마음을 잡는 것이 노인회의 숙제다. 노인들을 가슴아프게 하는 단체라면 오늘이라도 당장 문을 닫는 게 낫다. 회장자리 하나 만들기 위해 이름만 걸어놓은 단체가 적지 않다. 노인회가 이 부류에 속한다면 간판을 내리는 게 현명하다. 차량국(DMV) 앞에 언제나 장사진이 이뤄지듯, 노인회가 아침에 문을 열기도 전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몰리는 모습이 보고 싶다.
새 회장 선출로 감정대립이 불거지거나 발목 잡는 행위가 노골화하면 여기저기서 손가락질 할 것이다. 노인회 이사회는 ‘불신’보다는 ‘불안’을 택했다. 새 회장단의 리더십이 부족하고 추진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당기고 밀어주는 게 어른의 모습이다. 노인회 문제는 노인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한인사회 전체의 이슈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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