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과 군장성, 누가 더 센가. 써놓고 보니 꽤나 유치하다. 하여튼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5, 6공 시절 한국이라면 그 답은 뻔하다. 군장성이다. 회식 장소에서 군장성들이 국회의원의 뺨을 때릴 정도였으니까. 요즘 정답은 국회의원 같다. 386세대가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군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지경이 된 게 한국이란 느낌 마저 들어서다.
미국에서는 그 답이 어떻게 나올까. 되지도 않는 소리다. 굳건한 문민전통의 미국에서 될 법한 질문인가. 질타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렇지만 굳이 같은 질문을 또 던져본다. 뭐라고. 군장성이라고. 그럴 듯하다. 지루하기만 하던 민주당 대선 레이스가 4성 장군 출신이 뛰어들면서 아연 활기를 띠게 돼 하는 말이다.
최초에는 밥 케리가 있었다. 곧이어 하워드 딘이 뛰어들었다. 그러자 언론은 일제히 딘을 주목했다. 9명의 출마자가 난립하기까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의 흐름을 압축한 표현이다.
왜 딘인가. 여러 말이 나온다. 그 중 하나는 딘은 주지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케리는 상원의원 출신이고.
’대통령직에 가장 접근해 있는 사람들은 연방상원의원이다’- 미국 정치의 상식이다. 그 상식이 언제부터인가 무너졌다. 정치가 혐오대상이 된 탓이다.
이 분위기에서 워싱턴 인사이더들은 기피 대상이 됐다. 대신 각광을 받은 게 주지사다. 그러므로 오늘날 상식은 이렇다. ‘주지사, 워싱턴의 때가 묻지 않은 주지사가 대권 후보로 가장 바람직하다’.
그리고 보니 최근의 미 대통령들은 거의 다 주지사 출신이다. 레이건도, 클린턴도, 또 부시도. 상원의원 출신이 주를 이루었던 전 세대와 확연히 대조된다.
지극히 미국적인 상식으로 짜여진 민주당 대선 레이스다. 주지사, 전 현직 상원의원 등의 경연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상식이 깨졌다. 예기치 않은 돌풍에 휩싸여서다.
그 주역은 10번 째 출마자 웨슬리 클라크다. 정치 경험은 전무다. 나토사령관을 지낸 4성 장군 출신이라는 게 경력의 전부다. 출사표를 던지자마자 인기가 치솟는다. 부시와 본선에서 붙어도 밀리지 않을 것 같다. 주지사도, 상원의원도 아닌 군 출신인 그가 왜 이처럼 뜨고 있을까.
대세론이 그 설명의 하나다.
그 동안의 선두주자는 단연 딘 주지사였다. 선명한 민주당 내 좌파다. 확실한 반전주의자다. 이런 그가 대권 후보가 될 때 안보가 이슈인 본선에서 패배는 보나마나다.
당내 좌파를 아우르면서 본선에서 중도성향의 표를 흡수 할 수 있는 후보가 필요하다. 그 적격의 인물이 바로 클라크라는 것이다. 그는 안보 이슈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코소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런 대세론과 함께 나도는 게 클린턴 커플의 음모론이다.
한국형 정치방정식에 대입하면 클라크는 지난 한국의 대선 때 노무현 후보 격이다. 그 배후가 빌과 힐러리 클린턴이다. 이 음모론은 ‘힐러리 출마’를 전제로 하고 있다. 말하자면 부시가 이라크 문제로 진짜 곤경에 빠질 때 힐러리가 전격 출마해 결국에는 힐러리-클라크 티켓으로 간다는 설이다.
또 이런 복선도 깔려 있다는 거다. 민주당 당권은 클린턴 계열의 중도파가 장악하고 있다. 딘이 부상할 경우 당권은 좌파로 넘어간다. 이를 저지해야만 한다. 2008년에 힐러리 출마도 걸려 있으니까. 그래서 클라크를 내보냈다는 말이다.
조직도, 돈도 없는 클라크의 인기가 갑자기 치솟은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클린턴 진영이 백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무명이던 노 후보가 갑자기 뜨던 상황을 방불케 한다고 할까.
설(說)은 어디까지나 설이다. 또 클라크 돌풍은 스치는 바람으로 끝날 공산도 크다. 이라크전쟁을 둘러싼 명분 싸움이 반드시 민주당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리라는 보장도 없어서다.
클라크 돌풍은 그러나 뭔가 한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인들은 상당히 불안한 시선으로 정치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비상시기를 맞아 2차 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와 같은 인물을 대망 하면서.
상원의원도, 주지사도 아닌, 그러므로 정치와 행정의 경험이 전무한 군 출신 클라크가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는 게 바로 그 증거가 아닐까.
문제는 클라크는 과연 그 대망의 영웅인가 하는 점이다. 두고 볼일이지만 왠지 ‘아니다’란 생각이 앞선다. 코소보 전쟁과 2차 대전을 비교하는 게 한 마디로 ‘조크’이기 때문이다.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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