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쿠킹
나는 식사준비가 번개처럼 빠르다. 그야말로 초고속이라, 스피드 쿠킹이라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집에 문 따고 들어선 시각으로부터 보통 30분, 길어야 40분이면 새로 지은 밥과 국, 요리 두어가지를 식탁에 차려낸다. 언젠가 굉장히 빨리 한 날 남편이 시계로 재었다는데 25분만에 상차림이 끝났다고 해서 나도 놀랐다.
워낙 성격이 급하고 손이 빠른 편이긴 하지만 처음 밥을 하기 시작한 신혼시절부터 빨리빨리 하는 습관이 몸에 붙어버린 것 같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배고픈 사람이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느긋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른 주부들도 대개 그런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으면 놀라곤 하니, 나의 스피드 쿠킹 요령을 조금 소개하면 어떨까 싶다.
밥상을 빨리 차리자면 미리 준비돼있는 기본 재료가 있어야 하고, 요리하는 짧은 동안 상당한 집중력을 발휘해야 동선과 시간이 최대한 절약된다. 저녁메뉴로 밥과 된장찌개, 생선구이와 오뎅볶음을 한다치고, 내가 어떻게 하는지를 한번 설명해보자.
집에 들어오면 백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먼저 쌀을 씻어 전기밥통에 앉힌다. 밥솥 버튼을 누르고 나면 얼른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냉장고를 열고 모든 재료를 한번에 죄다 꺼낸다. 그때 요리에 들어갈 재료들이 무엇인지 미리 머릿속으로 재빨리 파악해야 함은 물론이다.
된장찌개에 넣을 육수, 된장, 고추장, 다진 마늘, 파, 감자, 양파, 호박, 버섯, 두부, 그리고 오뎅을 내놓는다. 냉동칸에서는 생선과 멸치를 꺼내고 찌개에 넣을 굴이나 새우 같은게 있으면 그런 것도 꺼내놓는다. 이쯤 되면 싱크대 주변이 매우 복잡하고 정신 사나워지는데, 그런 것을 상관하지 말고 요리를 시작한다.(쓰고 남은 재료들과 고추장, 된장 등은 틈틈이 냉장고를 열 때마다 제자리에 넣으면서 일하면 나중에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냄비에 육수와 물을 반반씩 붓고 굵은 멸치 대여섯마리, 다시마 한조각을 넣고 불에 올리면서 고추장 한 숟가락, 된장 적당량을 체에 풀어넣는다. 그와 동시에 전자레인지에서 생선을 녹인 다음 그릴에 넣어 굽기 시작하고, 오뎅은 뜨거운 물에 담가둔다. 기름을 빼기 위한 것이다.
찌개국물이 끓을 동안 야채를 씻고 다듬어 자르는데 거기에도 순서가 있다. 찌개에 먼저 들어갈 순서대로 감자-양파-호박-버섯-두부-파 순으로 썰어야 시간낭비가 없는 것이다. 감자를 다 썰 때쯤 찌개국물이 끓기 시작하므로 감자와 다진 마늘 한숟갈을 넣는다. 감자와 찌개가 다시 끓어오를 동안 나머지 재료를 썰면서 끓는 정도를 봐가며 양파와 호박을 넣는다.
그 틈새에 오뎅을 썰어 다른 냄비에 담고 다진 마늘, 간장과 육수를 조금씩 넣고 뚜껑을 덮어 끓인다. 이때쯤 그릴에 있는 생선을 한번 뒤집어준다. 오뎅이 한번 푹 끓으면 뚜껑을 연 채 설탕과 고춧가루를 넣어 뒤적이고 불을 줄여 졸도록 놔둔다.
찌개가 거의 다 됐다. 버섯, 두부, 파를 넣고 마지막 한번 더 끓어오르면 불을 끈다. 나는 찌개를 처음부터 계속 높은 온도에서 팔팔 끓여 완성한다.
이제 밥도 다 되었다. 밥이 뜸드는 동안 수저와 냅킨, 물병과 물컵을 갖다 놓고 김이나 밑반찬, 김치를 담아낸다. 찌개를 퍼서 담아내고, 약한 불에 조리고 있는 오뎅에 참기름과 파를 넣고 센불에 화들짝 볶아내어 접시에 내간다. 생선도 알맞게 구워졌으니 레몬 한조각 올려 내간다. 그리고 기름이 차르르 도는 밥을 퍼서 내가면 끝.
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리 끓여놓은 육수와 소금에 절여둔 생선이 있어야한다는 것, 그리고 요리의 전과정을 미리 생각하면서 한번에 여러 가지를 동시다발적으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찌개 끓이기만 열중하다보면 생선을 뒤집지 않아 한쪽만 타버리고, 오뎅은 나중에 따로 볶아야하므로 다시 육수를 꺼내고, 파를 썰고...시간이 이중으로 걸리게 된다.
꼭 된장찌개와 생선, 오뎅이 아니더라도 무슨 국이건 찌개건 나물이건 고기건 비슷하게 이해하면 된다. 오늘 저녁에 불고기를 해먹겠다면서 그날 저녁 꽁꽁 언 고기를 꺼내 녹여서 양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아무 것도 안 해놓고 빨리 식탁 차릴 생각만 한다면 매우 곤란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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