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타임스의 베테런 기자 카니 강씨를 인터뷰하러 처음 만났을 때 기사는 원래 여성면에 실을 예정이었다. 여성이며 마이너리티라는 이중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계에 39년이나 몸담아 일해온 카니 강기자는 우리 모두의 자랑일 뿐 아니라, 언론인들에게는 선구자요, 대선배요, 롤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뷰는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강씨가 한시간반 내내 교회와 성경 이야기만 했기 때문. 지난 주 북 사인회를 가진 자서전 ‘내고향 고요한 아침의 나라’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강조한 그녀는 판매 수익금을 모두 선교기금으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매일 암송한다는 성경구절 카드들을 펼쳐 보이기도 하고, 온통 줄 쳐진 성경책을 꺼내 읽어보기도 하며,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논하기도 했던 이상한 인터뷰 시간. 기자를 인터뷰하는 건지, 전도사를 인터뷰하는 건지 헷갈리게 만든 강씨는 기회만 되면 예수를 알린다고 자랑했다. 삶의 현장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복음의 전령사 카니 강씨. 이보다 더 좋은 종교면 기사가 어디 있겠는가.
△39년전 미국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니 쉽지 않았겠습니다
▲그땐 참 힘들었죠. 언론계에 동양인이라고는 전혀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저널리즘에서 알아주는 미조리 대학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기자생활이 재미있어서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만, 기자생활은 직업이라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고 사역입니다. 종교에 대한 기사를 많이 쓴 것도 그러한 사역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한인 관련 기사를 많이 쓴 것은 알고 있지만, 종교 기사를 썼다니 금시초문입니다
▲기독교와 교회에 관해 많이 썼어요. 시편 23장, 십일조,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절망, 그런 것들을 소재로 삼았죠. 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 이상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원래 그렇게 신앙이 깊었나요
▲4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어요. 젊은 시절에는 일만 열심히 하느라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40이 넘어서 진지하게 신앙을 갖게 됐습니다. 특히 지난 4년 동안 부모님과 동생, 친구 네명이 모두 세상 떠나는 것을 보면서 많이 생각했지요. 하나님께 분노하고 원망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서 신앙이 더욱 강해졌고, 결국 깨달은 것은 우리의 삶이 모두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언론인으로서 종교와 신앙을 너무 내세우면 곤란하지 않나요.
▲신문사에서도 나 크리스천인거 다 알아요. 괜찮습니다. 아 뭐, 자를려면 자르라지요(웃음). 나이도 먹고 기자생활 오래 해서 그런지 마음도 편하고 무서운 것이 없답니다. 언론인으로서 나의 인생이 샘플이 되어 크리스천의 삶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기회만 오면 예수를 알리죠. 예를 들어 회사 동료가 어려운 문제로 고민하면 다가가 도와주며 복음을 전합니다. 사람들 손을 잡고 다니면서 기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서 만드시니까 우리는 언제나 기회를 이용해야해요.
△그렇게 전도한 효과를 봅니까
▲글을 읽은 사람들이 이메일, 편지, 전화로 변화된 마음을 전해옵니다. 아무리 바빠도 한사람에게 15분은 할애해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답해주지요. 특히 대학생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 상담을 많이 해요.
△한국 아이들입니까
▲주로 그래요. 만나고 싶다고 하면 교회(할리웃 프레스비테리언 처치)로 오라고 합니다.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밥을 사주고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일대일 상담이 아주 중요하거든요. 바울과 디모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교회일, 회사일에 치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시간을 커뮤니티를 위해 많이 쓰고 있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휴가 한번 못 갔을 정도예요.
△12년전 LA타임스에 왔을 때는 한국인 기자가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2세들이 몇 명 있지요. 앞으로 계속 늘어날텐데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한인 커뮤니티에 좀더 애착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우리를 돌아보지 않으면 백인기자들과 다를 바가 없지요. 나는 39년전 뉴욕에서 미국인들이 한국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던 시절에도 한국에 관한 기사를 썼습니다. 우리의 명절 문화를 알리며 호기심을 자극했지요. 미국인들은 재미없는 것은 알고 싶어하지 않아요. 무뚝뚝한 한국인에 대해서는 더욱 흥미가 없습니다. 한국인과 한국문화, 우리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소개하는 전령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페이퍼백이 나온 ‘내고향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어떤 책입니까.
▲휴먼 스토리, 패밀리 스토리, 한 여성이 열심히 살고 노력한 스토리입니다. 한국의 역사와 개인 스토리가 다 들어있죠. 4년 이상 리서치해서 썼어요. 이 책이 영어권 2세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면 좋겠습니다. 한국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역사를 안 가르쳐요. SAT 점수 올리는데만 신경 쓰지 말고 골고루 교육시키기를 바랍니다.
△95년 장정본이 나온 이후 얼마나 팔렸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책이 나오고 2년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또 1년후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책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죠. 페이퍼백으로 나온게 올 2월이라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얼마전 아시안언론인모임에서 누가 들고와 사인해달라고 하는데 보니까 페이퍼백이지 뭡니까. 놀라서 여러 책방에 전화해 물어보니까 정말 나와있지 뭐예요.
△아니, 출판사가 작가에게 알리지도 않았단 말입니까
▲다른 출판사와 합병되는 과정에서 내게 연락이 안 됐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건 내가 한 일이 아니고, 내것도 아니죠.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하나님의 선물이예요. 그래서 판매수익금을 모두 헌금하기로 한 것입니다. 참 재밌죠, 하나님?
△요즘 쓰고 있는 한인관계 기사가 있습니까
▲이민 100주년에 관한 기사를 준비중인데 좀더 흥미있게 만들기 위해 다시 쓰고 있어요. 미국인들은 한인 커뮤니티를 너무 모르고 한인들과 기사를 대하는 관점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을 끌도록 기사를 써야해요. 한인을 잘 모르니까 잘못된 기사가 자주 나오는 것이고,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문화를 소개해야 합니다. 우리도 한인 커뮤니티를 찾는 미국인들이 마음을 열고 즐길 수 있도록 언어와 문화장벽을 넘어서 스스로 계몽하는 태도를 가져야겠습니다.
카니 강씨는 한국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영어를 가르치고 11개국어에 능통했던 서울대 강주한 교수의 딸로 함경남도 단천에서 출생했다. 학구적인 가정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글쓰고 책 읽는 일이 일상이었다는 강씨의 첫 작품은 돌 조금 지난 무렵 지었다는 동시 한구절 ‘짹짹 오너라 보두보두(모두모두) 오너라’였다고 그녀의 어머니는 기억한다.
해방과 월남,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9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18세까지 미국인 고등학교를 다녔고 미국으로 건너와 미조리대학과 노스웨스턴 매딜 대학원에서 신문학 학사, 석사, 매스커뮤니케이션, 정치학, 사회학 박사과정을 공부했으며 기자생활은 1964년 뉴욕 로체스터의 Democrat & Chronicle 지에서 시작했다. 한때 한국서 코리아타임스 기자와 외국어대학 조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녀는 UPI 통신, LA 헤럴드 익재미너,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샌프란시스코 익재미너에서 활동했으며 92년 이후 LA타임스 메트로섹션 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정확한 보도와 냉철한 분석으로 수많은 사건 및 추적기사를 써온 그녀는 가주 대법원 비리를 파헤친 기사로 가주변호사협회 등 여러 기관에서 법조계 개혁 최우수 언론인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20여개의 유수 언론상을 수상했다.
95년 강씨가 한국역사를 배경으로 자신의 가정 이야기를 저술한 자서전 ‘내고향 고요한 아침의 나라’(Home Was the Land of Morning Calm)는 코리안 아메리칸 패밀리의 대하전기로서 미국에서 자란 한인 2세들이 정체성에 눈뜨게 해주는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씨는 현재 또다른 영문소설 ‘팔자’(Destiny)를 집필하고 있으며 아버지가 남긴 60년간의 일기를 정리한 책 ‘통일의 기도’와 수필집 ‘Book of Essay’를 출판할 예정이다.
카니 강씨와 30년 친분을 가져온 임갑손씨(전 한국일보 영문지 편집장)는 제2의 두순자 사건이 될 수 있었던 ‘모자가게 사건’(96년)이 터졌을 때 끓어오르던 흑인들의 분노와 시위를 잠재운 것은 전적으로 강기자의 공명정대한 기사 덕분이었다고 전하고 또한 이명섭씨 사건도 강기자가 아니었으면 힘없는 미망인이 거대한 니폰 익스프레스사를 상대로 싸움을 벌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기자는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 주는 일’을 사명으로 뛰어온 언론인이라고 치하한 임씨는 한국과 한인 커뮤니티를 미국에 바르게 알리기 위한 기사를 수도 없이 썼지만 전혀 공을 내세우지 않고, 언론상도 많이 탔지만 자랑은커녕 겸손하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자서전의 페이퍼백 출간 북사이닝회도 친구들이 나서서 개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고향 고요한 아침의 나라’(22.50달러)는 고려원서점 (213) 388-0914에서 구입할 수 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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