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계에 한국은 어떻게 비쳐질까.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한국관계 기사들을 볼 때마다 은연중 떠오르는 생각이다. 최근 LA타임스 기사도 새삼 같은 질문을 되뇌게 한다.
한국의 영문국호는 Korea가 아니라 Corea가 되어야 한다. 남북한의 행동주의자들은 이런 주장과 함께 남북한에서 영문국호 변경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Korea가 Corea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일제가 한국을 공식적으로 식민지화하기에 앞서 통치하던 때 열린 1908년 런던올림픽 당시 본래 Corea이던 한국 국호의 영문표기를 Korea로 바꿔 Japan 다음에 입장하도록 했다. 식민통치시절 한 일본인 관리는 한국인들이 국호의 영문표기에 K가 아닌, C를 고집해 독립국가임을 주장하려 하고 있다고 비망록에 기록했다. 이로 보면 Korea란 일제가 사용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대형 가십기사 같다. 정황적 증거밖에 없는데 그 주장은 괘나 심각해서다. 그리고 영어 알파벳의 순서가 마치 운명을 결정하기라도 하는 양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신문이 주목하는 부문은 그러나 정작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영문표기 변경 움직임의 배경이다.
북한은 Corea 표기에 특히 집착을 보이고 있다. 그 같은 움직임에 남한의 젊은 세대가 호응하고 있다. 붉은 악마로 대변되는 한국의 젊은 세대가 월드컵 축구 당시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로 된 한국 국호 표기(’Coree 등 ‘C’로 시작됨) 캐치프레이즈를 들고 나와 응원전을 펼쳤다.
우연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신문은 이 부문에 특히 주목한다. 한 온라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69.4%가 ‘C’자 표기에 지지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그들은 한국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통일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대구 유니버시아드 경기 관람기사 제목이다. 이 신문이 특히 관심을 보인 건 북한의 미녀응원단이다.
우리는 외세에 의해 분단된 한 민족이다. 북한 여성응원단은 우리가 하나임을 깨닫게 한다. 북한은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를 외치며 현란한 몸 동작을 펼치고 있는 북한의 미녀응원단을 바라보며 한 20대 남한 청년이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한국의 TV방송은 북한을 상당히 긍정적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한국의 미디아들은 온통 미녀응원단에만 초점을 맞춘다. 경기내용에는 관심이 없다. 다른 외국 손님은 아예 존재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반(反)핵, 반(反)김정일 시위는 가차없이 진압된다.
이런 내용들을 마침 북경에서 열리고 있는 북 핵 저지를 위한 6자 회담 전개과정과 대조해 가며 다루고 있다.
뭔가가 감촉된다. LA타임스에서도,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서도. 외세다. 미국과 일본이다. 반(反)일, 반(反)미가 숨겨진 주제다. 그 반(反)외세의 배후에는 ‘민족’이란 두 글자가 어른거린다.
한국은 바깥 세계에 어떻게 비쳐질까.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모순투성이다. 비(非)서구권 나라 중에서 가장 미국적 생활에 젖어 있으면서 반(反)미가 대중적 정서로 등장하고, 서울시청 앞 상점에 ‘미국인은 환영하지 않습니다’란 대자보가 붙어 있는, 그런 이해할 수 없는 나라다. 한 국내 언론인의 지적으로, 이 게 8, 9개월 전 이야기다.
이런 한국의 모습을 다루는 미국 언론의 펜 끝에는 신랄함이 묻어 있었다. 뭐랄까, ‘한국이 그럴 수가…’하는 경악 뒤에 오는 신랄함이다.
이제는 그런데 그다지 놀라지 않는 표정이다. 여전히 모순덩어리다. 그렇지만 왜 그런지 알 만하다는 여유마저 감지된다. 그리고 핵 공갈을 치고 있는 북한도 북한이지만 남한도 찬찬히 들여 보아야 한다는 냉랭함 같은 게 엿보인다.
뭔가 위험성이 감지된다는 신호 같다. 바깥에서 뭐라고 하든 우리는 하나다. 그 구호에 열광한다. 거기에는 남이 껴들 여지가 없다. 다양성은 찾을 수가 없다. 그 배타성에 미 언론은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배타성은 뭔가를 닮았다.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민족’이다.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은 이 민족 개념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종족, 혈연의 순수성, 역사 등 원초적 요소들만 강조된다. 그 뒤에는 그리고 ‘김일성 민족’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민족공조라는 주술(呪術)에 한국이, 특히 한국의 젊은 세대가 현혹되고 있는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적으로 간주되지 않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필요 없는 게 아닌가. 워싱턴 포스트의 지적으로, 바로 이런 의구심을 반영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다시 LA 타임스를 보자.한국이 통일되면 그 영문 표기는 Corea가 되어야 한다.
영문국호 변경 주창자의 주장이다. 맞는 말인가. 아니, 그게 그토록 중요한가.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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