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유럽 대륙에서 떨어져 나가 섬나라가 된 것은 지금부터 7,000년 전이다. 빙하 시대가 끝나고 녹은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 해면이 높아지면서 강물이 흐르던 계곡이던 이곳은 지금 ‘도버해협’이라고 불리는 바다로 변했다.
관광지로 유명한 도버의 ‘흰 절벽’(White Cliff)에서 프랑스 칼레까지의 거리는 21마일에 불과하지만 이 짤막한 물의 띠가 영국 역사를 대륙과 다르게 만드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럽 대륙을 제패했던 스페인도, 프랑스도, 독일도 쾌속정으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짧은 거리의 이 해협을 건너지 못하고 유럽 통일의 꿈을 접어야 했다.
1803년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은 영국 침략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대륙 봉쇄령을 내렸다. 영국에게는 물건을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함으로써 영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작전이었다. 영국은 이에 대해 수입 농산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곡물법’으로 맞섰다.
1815년 전쟁이 끝나고 대륙의 값싼 농산품이 쏟아져 들어오자 지주 세력은 의회에 압력을 가해 곡물 값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때는 높은 관세를 매기는 새 ‘곡물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노동자들의 분노를 사 이 법 통과 기간 동안 중무장한 군인들이 의회를 지켜야 했다. 이 법에 반대한 것은 노동자만이 아니었다. 공장주들도 이를 시행할 경우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이 불가피하고 이에 따라 영국 상품이 해외에서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곡물법’에 반대한 수많은 인물 중 대표격은 리처드 캅든이다. 극빈 가정 11명의 자녀 중 하나로 태어난 그는 직물 공장 서기로 출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비즈니스를 하며 ‘곡물법’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는 1839년 ‘반 곡물법 동맹’을 결성, 법 폐지를 위한 전국적인 캠페인에 들어갔다. 로버트 필이 이끄는 보수당 정부는 7년 만에 이에 굴복, 1846년 결국 이 법을 폐지하게 된다.
’곡물법’ 폐지는 영국이 농경사회를 벗어나 산업 혁명의 선두주자로 자리를 굳혔음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다. 만약 이 때 영국이 지주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끌려 다니며 이를 고수했더라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영화를 누리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경제 발전의 원동력은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며 이를 이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분업이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첫마디에 분업의 힘을 알리는 사례로 핀 공장 이야기가 나온다. 혼자서 핀을 만들라면 하루 하나도 힘들지만 여러 공정으로 나누면 10사람이 하루 4만8,000개의 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려면 넓은 시장이 필요하다. 작은 마을에서는 이처럼 쏟아져 나오는 물량을 소화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유 무역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분업의 촉진과 함께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다. ‘보호무역보다 자유무역이 경제 발전에 득이 된다’는 명제는 지난 200년 간 이론과 실례로 명백히 입증돼 있다. 의견이 다르기로 유명한 미국 경제학자들도 ‘자유 무역이 국부 창출에 도움을 준다’는 데는 95%가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의 대부분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오히려 자유 무역에 반대하는 사람이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추석 연휴 기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회의 중 할복 자살한 농민의 추모제가 대대적으로 열린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자동차와 반도체를 파는 것은 괜찮고 남이 쌀과 보리를 파는 것은 안 된다’는 주장은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는 도둑놈 심보와 다를 바 없다. A와 B가 자유 의사에 의해 물건을 사고 팔려는데 제3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공권력을 동원해 막겠다는 발상은 경제적으로 해로울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일이다.
그 와중에 한국의 정치인과 사회 운동가들은 자유 무역의 당위성을 설득하기는커녕 지키지 못할 공약 남발과 한 점의 논리도 없는 선전선동으로 국민 속이기에 여념이 없다. 허구성이 검증된 낡은 이론의 희생자가 아니라 캅든과 같이 용기 있는 선각자가 추앙 받는 날 한국은 경제 선진국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다.
민 경훈<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