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직원에도 A급, B급, C급이 있다.
평가받는 사람은 기분이 나쁘겠지만(좋아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 등급제 평가는 기업 인사관리의 엄연한 현실이며 많은 기업들이 이런 평가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A급은 일 잘한다고 소문난 스타 플레이어. 두둑한 스탁옵션 등 많은 혜택을 누린다. B급은 회사 내 직원의 다수를 차지하며 업무량이 과도하나 맡은 바 소임을 다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회사의 혜택은 적다. C급은 성과 미달로 정리해고의 대상.
미국 기업들은 소수의 스타 플레이어들을 특별 우대해 왔으나 최근 B급으로 분류되는 다수의 보통 직원들이 기업의 장기적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기업문화에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기업들의 스타 플레이어 우대 문화는 80년대 초 대량 감원을 통한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본격화됐다.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수백만명이 길거리로 내 몰렸고 미국 노동인력의 다수를 차지해온 유능한 노동인력들은 설자리가 불안해졌다. 대신 기업 내 소수의 스타와 스타의 잠재력을 지닌 인물로 중심이 옮겨갔다.
기업 내 A급 스타 플레이어들은 현금과 스탁옵션, 호화 베니핏으로 샤워를 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기업 내 스타들은 1990년대 후반 전성기를 맞았고 이들이 잘못하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엔론과 월드컴, 그리고 수많은 닷컴 기업의 몰락을 통해 충격적 실패를 몰고 오는 장본인들이야말로 바로 A급 스타라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지금 미국 기업들은 B급 직원들을 과거 홀대해 왔던 사실을 후회하고 있다. 스타들만 우대하고 보통 직원들은 몰아쳐 왔는데 경기가 회복되고 인력 수요가 늘어나면 이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기업의 심장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B급 직원에 대해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토머스 디롱 교수는 기업의 장기적인 성과는 많은 기업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B급 플레이어들의 기여에 의존한다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최근호에서 지적하고 있다.
디롱 교수가 구분하는 B플레이어는 회사 인력의 중간 80%. 이들은 스타(A급)도 아니고 성과부진(C급) 부류도 아니다.
B급 직원들의 특징은 기업 내 분노가 가장 큰 집단이라는 점이다. 대기업 GE의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여기서는 사람을 어찌나 아래로 보는지, 우리는 마치 소나 돼지가 된 기분이라고 말한다. 이 엔지니어의 말에 미국 기업내 수백만명의 중간급 프로페셔널들은 공감한다.
오랜 시간을 일하도록 압력을 받아왔고 부서 목표 달성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도록 강요당해 왔다는 것. GE내 엘리트들도 물론 업무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들은 18개월 내지 2년만 지나면 더 높은 자리로 영전하지만 B급은 이동도 제한됐다.
이 직원은 GE는 베니핏이 대단히 좋은 직장이지만 2년 뒤 애들만 다 크고 나면 이 곳의 스트레스를 더 참을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디롱 교수에 따르면 B급 직원들은 회사에 큰 변화나 위기, 일례로 사장이 바뀌거나 기업합병, 갑작스런 기업 전략상의 수정이 있을 때 해당 기업을 지탱해 나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기업을 하나의 가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경험이 없는 직원을 키우고 훈련시키는데 시간을 쓰며, 프리 에이전트들보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기 때문에 감독 부실이나 비리로 빚어질 수 있는 회사의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엔론(이 회사는 스타들만 우글거렸다)이 파산한 이유 중 하나는 회사의 위기에 경종을 울려줄 쉐론 와킨스와 같은 확실하고 좋은 인력이 홀대받았기 때문이다.
B급 플레이어들은 행동방식이나 가치관에서 A급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들도 승진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어떤 대가라도 치르는 그런 식은 아니다. A급 플레이어들에게는 환영받는 행동방식은 결코 아니다.
전 엔론 CEO 제프리 스킬링이 옹호해온 강제 등급제도(forced ranking system)는 미국 기업에 깊이 스며들었다. 전 직원에 랭킹을 매겨서 정규 분포곡선으로 만들고 10%는 A, 가운데 80%는 B, 성과가 향상되지 않는 C로 분류하는 방식인데 1997년에 미국 기업의 13%가 이 방식을 사용했으나 90년대 붐을 이루면서 지금은 미국기업의 3분의1이 이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등급제는 직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지만 지속적인 분발을 유도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감원을 하거나 C급에 몰려 있는 나이 많은 직원들을 솎아내기 위한 연막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포드와 굿이어사는 잇따른 차별 소송으로 이 제도를 중단했고 1~4등급으로 나누는 비슷한 등급제를 사용하는 GE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최하위 평점을 받는 직원은 거의 없어 실제로는 무용지물이다.
B급 직원들의 진가를 이해하는 기업들이 서서히 늘고 있다.
실리콘 밸리의 로지텍의 사장 게리노 데 루카도 그런 사장 중 한명. 그는 우리 회사의 강점은 B플레이어들이 아주 많다는 점이라고 자랑한다. 루카도 사장이 규정하는 B급 직원들은 승진을 위해 자신을 떠벌리지 않는 사람, 하루 18시간씩 일하는 히어로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다. 튀지 않으나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군으로 치면 ‘보병’과 같은 존재이다.
그는 보석 같은 B플레이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직원간에 차별감을 조성하는 특혜는 절대 사절이며 말단 엔지니어나 자신이나 임원이나 모두 이코노미석을 탄다. 일전에 그는 한 직원과 내기를 걸었다가 져 다음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출근했다. 치기 어린 행동이었지만 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직원들 누구나 사장과 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로지텍으로 옮긴 한 직원은 닷컴 기업에 있을 때는 죽도록 일해도 돌아오는 것은 호통뿐이었다. 그 곳에서는 A급에만 초점이 맞춰졌다고 새 직장의 문화를 좋아한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스탁 옵션을 없애고 대신 5만명의 전 직원에게 주식을 무료 배분키로 결정했다.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두뇌 유출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다. 기업을 지탱하는 근간인 인력들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B팀을 지지하는 학자나 전문가들은 성과 향상 아니면 퇴출이라는 기존의 사고방식은 재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직원들을 항시 고무하기 위해서라면 수평이동도 한 대안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B팀 중심 경영이 되기 위해서는 비용절감을 위해 베니핏을 축소해야 할 때라도 가족과 관련 있는 신축적 근무시간과 직장 내 차일드케어 등의 서비스 축소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또 회사의 전체 전략이 하위 직원들에게도 충분히 전달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회사의 전략을 숙지함으로써 유대감과 소속감이 높아짐으로써 생산성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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