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한국에서는 한차례씩 눈병이 돈다고 한다. 학교마다 유행성 눈병이 돌아서 결석생이 속출한다. 의학이 발달한 지금, 눈병 하나 잡지 못해서 아이들을 고생시키는 건가 … 부모들은 답답하겠지만 눈병은 절대로 가볍게 물러나는 법이 없다. 학교마다 수십명씩 환자를 내고 나서야 기세가 꺾인다.
얼마 전 이 고약한 유행성 눈병의 숨은 ‘바이러스’가 확인되었다. 전교조 서울지부 보건위원회가 설문조사를 실시해 분석한 보고서에 의하면 눈병 환자 중 1/3 이상은 애를 써서 병에 걸린 고의 감염자들이었다. 눈병에 걸리면 등교정지 조치가 내려지는 것이 그 이유. 학생들은 눈병 걸린 친구의 안대를 빌려쓰거나, 환자 만진 손으로 자기 눈을 비비고, 그도 안되면 눈에 먼지나 담뱃재를 넣기도 하며 공을 들여 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학교 가기 싫어’ 바이러스가 숨은 병원균이었다.
눈병은 드물지만 미국에서도 복통, 두통은 흔하다. 각급 학교가 새 학년을 맞은 9월이면 아침마다 ‘머리 아프다’‘배 아프다’는 아이들 때문에 골치를 앓는 부모들이 있다. 새 학년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제일 심하기는 난생 처음 엄마와 떨어져 프리스쿨이나 유치원에 입학한 아이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꾀병 아닌 진짜 병을 앓기도 한다.
몇해전 이민 온 한 후배는 취직과 동시에 3살된 딸을 너서리 스쿨에 보냈다. 미국에 온지 서너 달밖에 안된 세 살배기에게 낯선 백인 교사들, 생전 못 들어본 이상한 말, 엄마 없는 환경은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학교에 보냈더니 나중에는 병이 났어요. 고열에 시달리며 ‘학교 안 갈래’하고 잠꼬대를 하는 데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유년기에 누구나 한번씩 거치는 결별불안증이다. 아이는 눈물범벅이 되며 치맛자락에 매달리고, 그런 아이를 떼어놓고 나오자면 엄마도 눈물이 솟구치는 한바탕의 홍역이다. 외면적으로 요란스러운데 반해 대개 한두주면 적응이 되는 가벼운 통과의례이다.
반면 겉으로는 조용한데 속으로 스트레스가 심한 것이 중학교 진학이다. 신문사 후배의 딸이 이번에 중학교 신입생이 되었다.
“아이가 상당히 긴장돼 있어요. 시간마다 교사가 바뀌고 교실을 옮기는 것도 익숙지 않을 것이고, 숙제도 초등학교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많아요”
손바닥 같이 훤하던 초등학교 교정, 그 안에서 누리던 최고 고참의 지위가 사라지고 갑자기 몇배는 규모가 큰 교정에서 등치 큰 선배들 틈에 끼여 새내기 생활을 하려면 적응이 쉽지만은 않다. 게다가 차츰 뚜렷해지는 성징 - 사춘기의 시작이다.
문제는 이때부터 부모들은 마음을 놓아버린다는 것이다. 일일이 손이 가던 유년기가 지나고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마침내 부모들은 ‘휴 -’ 한숨을 돌린다. 이 방심의 틈을 비집고 종종 ‘금지된 장난’이 끼여든다.
일반 고등학교에서 제적돼 대안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보통 학생들보다 성장의 통증을 몇배 심하게 앓으며 험난한 청소년기를 보낸 문제아들인데 대부분 중학교 적응 실패가 발단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술, 담배, 마약에 손댔다는 한 남학생의 말.
“중학교에 들어가서 이 교실 저 교실 옮겨 다니며 수업을 받다 보면 갑자기 어른이 된 느낌이에요. 그러면서 더 자유롭고 더 어른 같아지기를 동경하게 되지요”
그에게 가장 어른 같아 보인 그룹은 학교 규칙 무시하고 수업 빼먹고 교정 모퉁이에서 담배 피워 물던 아이들. 하루종일 수업 쫓아다니다가 모든 것에 초연한 듯한 그들을 보면 멋져 보이고 그 그룹에 끼고 싶었다고 했다.
“담배, 마약 나쁘다는 것 초등학교 때 다 배웠지요. 그때는 그렇게 하면 죽는 줄만 알았어요. 중학교에 가니 두려움이 줄어들고 친구들 말이 다 괜찮다는 거 예요”
부모 보다 친구에게 더 의존하게 되고, 내 문제는 내가 직접 처리하고 싶은 마음에 부모에게 감추는 일도 생기는 시기가 중학교 때이다.
모든 병은 잠복기가 있다. 한국의 눈병 고의 감염학생들은 대부분 성적이 뒤쳐지는 등 학교생활 스트레스가 심한 아이들로 나타났다. 등교시간의 두통이나 복통도 잠복기를 거쳐서 나온 증상이다. 학교 생활 적응에 어려움이 있다는 신호이다. 부모가 신호를 제때제때 잘 읽어야 아이가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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