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공평하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부자 집에서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극빈자 가정의 정박아로 태어난다. 또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더라도 때를 잘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일반 시민도 그렇지만 공직에 몸담고 있는 경우는 명암이 더욱 분명하다.
허버트 후버는 비운의 시기에 대통령직을 맡는 바람에 쌓아놓은 업적이 물거품이 된 대표적 인물이다. 아이오와 대장간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6살 때 아버지를, 9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고아가 된 그는 삼촌 집에서 고학을 하며 어렵게 스탠포드 공대에 진학한다. 호주의 금광에서 일하며 상당한 재산을 모은 그는 중국 정부로부터 수석 광산 엔지니어로 초빙돼 천진에 있을 때 의화단의 난이 터지자 자기 생명을 걸고 중국 아동을 구하는 의협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도주의자로서의 그의 면모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1차 대전이 터지고 나서였다. 그는 전쟁으로 유럽에서 발이 묶인 미국인 12만 명의 무사 귀환을 진두 지휘했을 뿐 아니라 1,000만에 달하는 벨기에와 프랑스 주민의 식량 원조 책임을 맡아 완수했다. 전쟁이 끝난 후 윌슨 대통령으로부터 유럽 구호 행정 책임자로 임명된 그는 빈틈없는 일 처리로 2억 명에 달하는 유럽 난민들의 생명을 구했다.
1920년대 초 러시아 내전으로 수천 만 명이 아사할 위기에 빠지자 “공산주의자까지 도울 필요가 있느냐”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과감한 식량 원조를 했고 7년 간 상무장관으로 일하며 행정관으로서도 뛰어난 수완을 보여줬다. “천재 엔지니어”부터 “위대한 인도주의자”, “최고의 행정가”, “살아 있는 아메리컨 드림” 등 온갖 찬사 속에 1928년 대통령 후보로 나온 그는 선거인단 수에서 444대 87이라는 당시로서는 전대미문의 표 차로 백악관에 입성했다.
10년 가까운 장기 호황과 함께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던 그의 명성은 취임 7개월 후 몰아 닥친 증시 파동과 함께 급전직하하기 시작했다. 그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계 지도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근로자들을 해고하지 말 것과 임금을 깎지 말 것을 부탁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상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농가 보조금제를 신설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후버의 정책은 사태를 호전시키기보다는 악화시켰다. 장사는 안 되는데 인건비를 줄일 수 없던 업체들은 무더기 도산을 했고 높은 관세는 무역 전쟁을 불러 수출 길을 막았다.
주가 폭락과 대공황의 도래는 엄격히 따져 후버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국민들은 그에게 책임을 물어 1932년 선거에서는 루즈벨트에게 472대 59라는 어마어마한 표 차로 백악관을 내줘야 했다. 후버는 그 후 1964년 9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트루만과 아이젠하워 정권 하에서 정부 개혁과 빈곤 퇴치 등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이를 기억해주는 사람은 없고 ‘대공황으로 미국을 망친 대통령’의 이미지만 미 국민들 뇌리에 각인돼 있다.
2001년 불황이 끝난 지 2년이 돼 가지만 미국 내 일자리는 계속 줄고 있다. 실업률은 경기보다 호전 속도가 늦다고는 하나 불경기가 끝났는데도 35개월 연속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드문 일이다. 미국에서 사라진 일자리는 지난 3년 간 270만, 부시 취임 후 250만개에 달한다. ‘일자리 창출에 관한 한 후버 이래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부시는 지난 노동절 “일자리를 보호하 기 위한 총책임자를 임명하겠다”고 밝 혔다.
빠른 시일 내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라크도 이라크지만 나날이 사라져 가는 일자리는 부시의 재선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다. 향후 10년 간 매년 5,000억 달러로 추산되는 예산 적자 때문에 더 이상의 감세도 어렵고 금리도 바닥까지 온 지금 경기 활성화를 위한 실탄은 거의 다 쓴 셈이다. 일자리 보호 총 책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지난 3년 간의 일자리 감소는 부시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대형 하이텍 버블이 터진 후유증이라 보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2000년 선거에서 간신히 당선됐고 국민적 합의 없이 이라크 전을 치른 부시는 일이 잘못될 경우 후버나 아버지 부시보다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 내년 선거전까지 실업자 문제를 잡지 못한다면 탈레반과 후세인을 축출한 공에도 불구, 부시는 후버가 겪은 아픔을 되씹어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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