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이따금씩 신문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공통점이나 그럴 듯한 이유가 있음직하다. 우선 조금은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고, 내가 살아온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하며 비슷한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동심원 속의 사람들을 상상 속에서나마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게 얼굴도 모르는 독자와 연결이 된다는 기대감이 글을 쓰는 변과 힘이 되기도 한다. 요즈음 같이 인터넷상에서 채팅으로 쉽게 만나서 잘못된 만남으로까지 발전되기도 하는 것과는 달리 순수하고 고전적인, 따뜻한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라 건강하고 바람직하다고 말해도 좋다.
며칠 전 밤 11시에 직장에서 귀가하는 집사람을 집 앞마당에서 마중(?)했다. 이런 일은 극히 드문 사건이며 보통은 잠들어 있거나, 비디오를 본다거나 인터넷 바둑에 매달려 있기가 십상이다. 웬일이냐고 묻고 있는 얼굴인 아내의 손목을 잡고 뒤뜰 조그만 텃밭 앞으로 끌고 가서 동남쪽 방향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보름달을 가리켰다.
의아한 얼굴로 여전히 내게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아내에게 보름달의 오른쪽에 보이는 작고 붉은 별을 가리키며 저별이 화성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번처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도록 화성이 지구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우리들 평생에 한번뿐인 일로 지구와 화성이 이렇게 근접하기는 6만년만의 일이라는 그 날 낮의 TV 아나운서의 해설이 이를 웅변해 준다.
며칠 전에는 새벽 2시에 시작한다던 소낙비처럼 떨어지는 별똥별의 잔치를 보려다 깜박 잠이 들어 놓치고 말았었다. 인적이 거의 끊어진 여름밤 하늘아래 보름달과 화성과 지구와 그리고 우리 두 부부만이 고즈넉이 몇 십 년만의 혹은 몇 만년만의 만남을 조용히 축하하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에게 불교에서 말하는 내생이 있어 지금부터 6만년이 흐른 후에 부부로 다시 만나 저 보름달과 화성을 같이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전쟁과 테러와 핵무장 등으로 얼룩진 지구도 달이나 화성에서 바라보면 지극히 평화롭고 아름답게 빛나는 별일뿐 다른 그 무엇도 아닐 것이다. 말복을 지난 절후는 어느덧 가을이 문턱에 다가와 있음을 시원한 밤바람으로 알려준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하였던가? 그런 남자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친구들은 언제나 노랗고 빨간 단풍 같은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나에게는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한 절친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정말 자주 우리 집에 와서 밤을 지새웠는데 한잔하고 나서 자기 집으로 가는 것보다 우리 집으로 오는 것이 가깝다고 생각되면 언제나 우리 집으로 오곤 했다. 자정에 통금이 있을 시절에는 더 더욱 그런 일이 자주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집에는 어려운 어른이 안 계셔서 출입이 마음 편했던 것이 첫째가는 이유였다. 그런 내 집은 일년 열두 달 항상 열려 있었고 친구들의 방문이 당연히 잦았었다.
이 친구가 학창시절부터 대학신문의 편집국장을 지내더니 졸업 후에도 전문지의 편집국장직에 30년이나 종사하였다. 그 친구가 대학신문의 편집국장을 하던 1960년대 후반쯤인가 그는 열정적으로 내게 신문에 대한 강의(?)를 하곤 하였었다. “기사는 발로 쓰는 것이다.”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 되고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된다.” 지금처럼 컴퓨터 마우스를 클릭해서 기사들을 이리저리 움직여 편집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 당시의 신문편집은 식자공들이 한자 한자 식자해서 조판을 하고 초벌구이가 나오면 오자, 탈자들을 골라 고치고, 어느 기사를 머릿기사로 올리느냐가 결정되면 나머지 기사들은 기사의 무게에 따라 몇단 기사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내용을 함축하여 기사에 제목을 붙이는 일은 언제나 제일 어려운 난제로 제목의 글자 수를 맞추느라 손가락으로 셈을 하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마감시간에 쫓기며 쩔쩔매던 모습과 함께 얼마 전 기사를 현장에 찾아가 (발로)쓰지 않고 컴퓨터 등에서 타인의 기사를 3년간이나 베껴 쓰던 뉴욕타임스의 기자가 목이 잘린 것은 물론 편집장 마저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을 보도를 통하여 우리는 들었다.
사람이 개를 물지 않고 개가 사람을 물어도 뉴스가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얼마 전 8세 난 소녀의 엄지손가락을 물어 꿀꺽 삼켜버린 개가 있었고 출동한 경찰은 개를 사살하여 뱃속에서 잘린 엄지를 꺼내(그때 이미 두 시간이 경과했지만) 봉합수술을 시도하였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던 일이 있었다.
며칠 전 일리노이 주지사는 ‘암스트롱 법’이라는 새로운 법안에 서명하여 효력을 발생시켰는데 개에 물렸던 소년 ‘암스트롱’의 이름을 딴 이 새로운 법안은 위험한 개를 묶어놓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개의 주인에게 1~3년간의 감옥살이나 2,500~2만5,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법 조항을 만들었다 한다.
가까이 살아도 자주 만나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사는 모습이지만 보고싶은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더 더욱 보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당신도 이 가을에 보고싶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고운 단풍 색깔로 물들여 보기 바란다.
윤효중/시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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