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 같은 혼란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길이 어디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은 우리의 역사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개화와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받쳤던 미국인 H.B. 허버트 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사’(History of Korea)에서 한국이 봉건주의 시대의 완고한 배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일본은 누에고치에서 나방처럼 날개를 펴고 밖으로 나왔는데 한국과 중국은 달걀처럼 부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했다. 이 부화과정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바깥 세상을 모르고 감투싸움, 정파싸움, 이권싸움 등에 몰두하다가 외부세력에 의해, 즉 열강으로부터 간섭, 강압, 침략 등의 수난과정을 겪고 밖으로 나왔다는 타율성을 지적하고 있다.
2차대전 전후 처리의 일환으로 1943년 12월1일 공표된 카이로 회담의 성명에서 “미, 영, 중 3국은 한국 민중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자유 독립시키기로 결의하였다”고 밝혔다. 이 ‘적당한 시기’란 표현에 대해서 우리는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을 40년 동안 민주정치 수습기간을 둔다는, 소위 신탁통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한반도 점령정책에 있어서 미국은 38선을 일본군의 항복과 무장해제를 위해 잠정적인 군사작전 선으로 구상했는가 하면, 소련은 정치적으로 북한을 소비에트 화하려는 음모였다. 또한 미국은 소련이 북한에서 단독 공산정권 수립의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한국을 일제의 일부로 간주하고 총독부와 협력하여 치안 유지를 하면서 신탁통치나 통일 정부의 수립을 소련과 협의해서 결정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미군정 당국은 망명정부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총독에게 위임하여 일본이나 일제에 협력한 한인들을 기용해서 행정 업무를 집행케 하는 우를 범했다. 이러한 미군정 당국의 사려 없는 정책으로 친일세력이 민족세력을 분열시켰고 남로당의 활동을 활성화시켜 정치적 사회적 일대 혼란을 야기했다. 허버트 교수는 “한국은 일본의 심한 무력적 압력을 받으면서도 중국에 대한 충성은 변함이 없었다”고 했다.
망명정부를 중국 상하이가 아니라 LA에 세워, 그 힘을 바탕으로 교포들이 합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더라면 미국은 한국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리라 생각되며, 우리 독립군과 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싸워 태국처럼 전승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분단의 고통도 없었으리라 사려된다.
해방된 지도 58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서독은 국민적 합의 하에 서방정책과 동방정책을 펴 다시는 침략하지 않겠다며 영국과 프랑스를 달래고, 동독과 무력 불사용 협정을 체결하는 한편 소련군을 철수시켜 분단 45년만인 1990년 10월3일 통일을 이룩했다. 이 두 가지 정책이 성공하는 데는 미국(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절대적인 역할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우리 정치체계가 모든 체계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한국적 정치문화 속에서 정치인들이 비합리적 권위주의에 젖어 바깥 세상을 직시 못하고 이전투구하는 동안 북한 정권은 핵무기를 만들어 위협하게 되었다.
그뿐인가 독선적인 ‘햇볕정책’을 국시와 가치관을 혼돈하게 하고 북한정권의 ‘반사정책’으로 인해 우리가 역으로 엄청난 화상을 입고 있다. 올해 초 특사자격으로 소위 거물급 정치인들이 방미해 럼스펠드 국방장관 면담 후 한 사람은 “미군이 철수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다른 한 사람은 “절대로 철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라며 상반된 주장을 했다.
이는 마치 임진왜란 발발 직전 일본의 침략 야욕을 눈치 채지 못하고 당파싸움에만 정신을 팔고 있을 때, 조정이 일본의 저의를 정탐하기 위해 일본에 보냈던 두 사신의 상반된 역할을 400여년이 지난 지금에 다시 보는 듯하다.
진실로 우리나라 정치력의 수준과 도의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현재 당면하고 있는 북핵 문제의 해결에도 외세와 북한 정권의 권모술수에 끌려 다니다가 함정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오늘날 조국이 처한 난국을 극복함에 어느 재외 동포보다 재미 동포의 역할과 영향력이 크다. 따라서 재미 한인사회의 내부적 갈등을 하루 속히 해소하여 인화단결하고 지혜를 모아 주류사회, 특히 사회지도층과 활발한 교류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8.15해방 58주년을 맞이하여 조국을 위한 길이며 교훈이라고 사려된다.
박종식/예비역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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