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느 동네에 불한당들이 자주 출몰 해 생명과 재산을 약탈해 가는 통에 이웃 동네에 구조를 요청하게 됐고 힘센 장정들이 건너와 밤마다 야경을 돌자 평온이 찾아왔다고 치자. 한데 그 동네에 있는 망나니들이 불한당들과 한통속이 돼 은인인 이웃 동네 장정들에게 돌팔매질을 하면서 썩 꺼지라고 작당을 했다고 치자.
과연 그 동네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대노한 동네 원로들이 사랑에 모여 배은망덕한 자들에 불호령을 내리고 주민들도 ‘은혜를 주먹으로 갚은 말썽꾼들’을 멍석에 말아 볼기를 쳐도 단단히 쳤을 것이다.
다른 경우도 생각해 보자. 동 티모르에 파견된 우리 국군에 대해 그 곳 주민들이 부대 안으로 밀려들어 탱크를 점거하고 심지어 태극기를 불태우는 소동을 벌였다 치자. 과연 한국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당장 현지로부터 철수하라고 여론이 들끓었을 것이다.
‘한총련 아이들’이 제 나라 안전보장을 위해 이역만리 타향에 와 도와주고 있는 미군을, 그것도 작전 중인 훈련장을 기습 습격하는 실제 사건이 발생했다. 중무장한 장갑차를 점거하고 ‘미군 물러가라’고 외치면서 성조기에 불을 붙이고 짓밟았다.
이는 흔들리는 한국 안보와 삐꺽대는 한-미 관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표출한 심각한 사건이다. 사실 사건 현장에 동원된 ‘아이들’은 일개 행동대원에 불과하다. 그 아이들 뒤에는 리모콘을 움켜쥐고 행동을 지시하는 핵심세력이 숨어 있다. 한총련 핵심들은 좌파가 아니라 바로 친북세력이다. 그들은 북한 노동당으로부터 행동지침을 직접 내려 받고 있다.”
대한민국 대법원이 한총련을 명백한 불법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소속원들을 지명 수배해 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한데 노무현 정권이 들어 선 뒤 대법원 판결은 휴지가 됐다.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이 단체의 합법화를 약속한 때문이다.
이제 한총련의 ‘아이들’은 노무현정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군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들’ 뒤에 숨은 핵심들은 하나의 분명한 전술전략을 갖고 있다. 핵 개발로 궁지에 빠진 ‘김정일 구하기’가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다. 주한 미군과 분쟁을 야기, 미국 내에 반한 무드를 조성해 김정일을 거들고 결국 미군철수로 이어지게 하자는 고도의 전술이다.
한 정보 관계자는 한총련 핵심부가 “어떤 방법이라도 동원해 미군을 화나게 해 발포를 유도하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시위대가 희생되면 이를 빌미로 대 규모 ‘반미 촛불시위’를 벌여 일반 국민과 세계 여론을 반미분위기로 확산시킨다는 시나리오를 이미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게 사실이라면 정말 끔직한 일이다. 지난 해 여중생 두 명의 죽음을 놓고 촛불 시위를 벌여 여론을 들끓게 한 게 1막이라면, 이번 사건은 제 2막을 위한 도입부인 셈이다.
미군 장갑차 위로 올라가 시위를 한 한총련과 이를 막아보려는 미군의 모습을 주의 깊게 지켜 본 이들은 미군이 왜 저렇게 무기력하게 밀리기만 할까 하고 의아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 놓고 보면 미군의 소극적 대응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 때 미군이 작전 교본(필드 매뉴얼)대로 공격자들을 물리쳤다면 필시 ‘피’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 됐다면 어찌 됐을까.
저들의 전술에 영락없이 말려들었을 터이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섬뜩해진다. “실탄이 장전된 장갑차여서 사고가 났다면 큰 일 날 뻔했다”는 주한 미군사령관의 말이 머리를 친다.
이번 사태는 한마디로 외교상의 무례는 물론, 군사적 적대행위가 분명하다. 한미 공동의 적(김정일 정권)을 전제한다면 군 작전을 방해한 이적행위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초청국(호스트 국가)으로서 무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한미 군사 조약은 물론이고 국제법으로 볼 때도 그렇다. 당연히 배후를 색출하고 정보기관도 문책해야한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의 대응 은 솜방망이다. 한총련 아이들은 이번 미 특수부대가 훈련 차 한국에 들어 올 때부터 기습시위를 계획했다. 자신들의 ‘영웅적 시위’를 세간에 알리기 위해 각종 장비를 준비하고 인터넷 언론도 동원하는 치밀성을 보였다.
하지만 우리 정보기관이나 군기관 그리고 경찰 등 어느 곳도 저들의 움직임을 살피지 않았다. 경찰은 한총련이 낸 시위계획서에 쾅 도장을 찍어 허가까지 내 줬다.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한총련의 합법화를 약속한 마당에 신경 쓸게 없다는 안이한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노무현 정권이 보인 태도에 미국 정부는 내심 괘씸하게 여기고 있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사안의 중대성으로 보아 당연히 대통령이 나서 무언가 한마디 해야할 것임에도 그는 참모들 뒤에 몸을 감추고 ‘간접 유감’만 전했다. 들리기로는 한총련 합법화를 민 청와대의 강경 좌파들이 대통령의 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라의 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이 그렇게 나와서야 무슨 기강이 서며 또 미국 정부를 무슨 낯으로 대하겠는가. 은혜를 주먹으로 갚은 망나니들을 멍석에 말아 볼기를 치듯, 추상같은 기강을 세워야 함에도 입으로만 엄벌을 떠들 뿐이다. 워싱턴에서 다시 고개를 든 미군 철수론을 보면서 좌파적 아마추어 정권이 몰아 오는 폐해가 언제 끝날까 걱정하는 것은 필자만의 공연한 기우가 아니다.
안영모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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